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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배 Jun 08. 2021

나의 이름은 느린 거북. 나는 인디언이다.

랄프 알버트 블레이크록의 <달빛, 인디언 야영지>

나의 이름은 느린 거북. 나는 인디언이다. 동료들은 나를 일컬어 후퇴를 모르는 용맹한 전사라고 부른다. 느리게 앞으로 나아갈지언정, 절대로 뒷걸음은 하지 않는 거북의 고집을 닮았다고 한다.


나는 달이 뜰 무렵이면 이렇게 강가에 서서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듣곤 한다. 달 빛 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는 강은 늘 한결같아 보인다. 하지만 5분 전의 강물과 지금의 강물은 엄연히 다른 존재일 것이다. 저 강물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서 결국에는 어느 곳으로 가는 것일까.  나는 주변의 사소한 것을 관찰하고 그것에 새로운 의미들을 부여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저기 모닥불 앞에서 불을 쬐고 있는 커다란 입과 살찐 황소, 까마귀 발톱은 이런 나를 보고 잡생각이 너무 많아서 탈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들 말이 틀리지는 않은 것 같다. 사냥을 함에 있어, 갑자기 떠 오르는 잡생각은 집중력을 흩트려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강가 앞에 서면 잡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 이 곳에서는 해가 지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지 않은가. 기껏해야 동이 틀 때까지 잠을 청하거나, 모닥불에서 불을 쬐는 일뿐이니까 말이다. 그도 아니면 야영지 주위를 배회하는 동물들이나 멀뚱멀뚱 구경하는 일인데, 그럼에도 밤은 충분히 길고 지루할 따름이다.


저 멀리서 살찐 황소와 커다란 입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린다. 또 분명 내 이야기를 하고 있을 테지. 저 친구들이 내 흉을 더 보기 전에 얼른 그들에게로 돌아가서 오늘 낮에 있었던 사냥 이야기나 떠들어 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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