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에고 리베라의 <병아리와 함께 있는 소년>
시모노세키 항구에서 시모노세키 기차역으로 이동하는 길이었다. 내 앞에서 걷던 꼬마 아이가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일본은 왜 이렇게 매미가 시끄러워?"
나는 내심, 할머니께서 어떤 대답을 하실까 기대되었다.
"응, 일본은 나무가 많아서, 매미가 많아서 그래."
딱히 일본 매미가 한국 매미보다 더 시끄럽다는 느낌은 받지 못하였다. 저 놈의 발정 난 매미들 때문에 수업을 못하겠다고 윽박지르시던 고등학교 은사님 한 분이 떠 올랐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어린아이가 왜 이런 질문을 하였을까 가만 생각해보니 이 아이의 마음이 이해될 만도 싶은 게, 나 역시 서울에 살면서 매미소리를 별로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할머니의 말씀처럼이나 나무가 많아야 매미도 많을 터인데, 서울에서 매미소리를 자주 접하지 못하였던 아이에게는 일본에서의 매미소리가 유난히 더 시끄럽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여행을 와서 얼마나 감성이 풍부해졌는지, 이제는 서울에 있는 매미의 번식활동까지 걱정하고 있다. 고작 일주일 남짓, 목청껏 구애 활동을 하려고 7,8년이라는 긴 세월을 땅 속에서 보냈었을 매미! 그러나 서울에서 태어났을 어느 매미를 생각하니, 그의 인생이 그렇게도 딱할 수가 없었다. 7년을 버텨 세상에 나왔는데, 서울에는 자신의 짝이 없다. 서울에는 나무가 없어서 매미가 없단다. 참 가련한 레디 메이드 인생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 매미는 자신에게 주어진 그 가혹한 일주일을 어떻게 보내야, 그래도 자신은 인생을 알차게 살았다고 위로할 수 있을까? 듣는 이 하나 없는, 도심의 아파트 숲에서라도 슬픈 구애의 노래를 외로이 불러야 하나? 아니면 자신의 노래를 들어줄 단 한 마리의 매미를 찾기 위해서라도 숨 가쁜 날갯짓으로 온 세상을 떠돌아야 하나.
나무가 많아서 매미도 많다는, 무심한 듯한 그 말 한마디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잠시 스쳐가는 생각뿐이었지만, 나는 일본의 매미가 그처럼 부러울 수가 없었다. (일본에는 나무가 많아서 매미도 많다는데, 일본 경제도 일자리가 많아서 청년들이 많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