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의 <물고기와 노는 세 아이>
나의 자취방에 새로이 어항을 들여왔다. 수컷 두 마리, 암컷 네 마리의 구피(열대어의 한 종류) 가족은 3주 사이에 어느덧 7마리의 치어를 출산하였다. 이 작은 물고기들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 지를 모르겠다.
이 어항에는 구피들 뿐만 아니라 다른 두 마리의 <시아미스 알지이터>도 함께 산다. 흔히 청소 물고기로 알려진, 이 물고기는 주로 어항의 밑바닥에서 활동하며 다른 물고기들이 남긴 사료 찌꺼기나 이끼 등을 먹으며 생활한다고 한다. 젓가락같이 가냘픈 몸매로 어항의 이곳, 저곳을 헤집으며 바닥 청소를 하는 그 모습이 제법 귀엽다.
어항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구피는 주로 어항의 중상층 부분에서, 알지이터는 주로 어항의 하층 부분에서 생활한다. 두 물고기는 서로 노는 물이 다른 셈이다. 그래서일까? 이 두 종의 물고기가 서로 다투는 일은 거의 없다. <테트라>와 같이 자기 영역에 대한 집착이 심한 물고기들은 어항 속 다른 물고기들을 종종 물어뜯는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물고기와의 공동생활이 어렵다고 한다. 어항에 구피만 키웠다면, 어항 물이 쉽게 더러워졌을 것이고, 만약 알지이터만 키웠다면 어항이 제법 밋밋했을지도 모르겠다.
문득, 인간 사회도 어항 속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의 밥그릇을 빼앗기 위해 치고, 박고, 싸우는 이해 관계자들을 한 곳에 몰아넣기보다는, 어쩌면 서로 노는 물이 전혀 다른 두 집단을 함께 의지하며 생활하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경상도가 최고니, 전라도가 최고니 한국사람들끼리 서로가 서로를 헐뜯고, 물어 뜯게 하느니, 차라리 공통 관심사라고는 하나도 없는 아프리카 사람들과, (예를 들자면, <코트디부아르>나 <세네갈> 같은 나라는 축구라는 매개체로 관심사가 수렴할 수 있으니, <기니> 라거나 <스와질란드>처럼 우리나라와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전혀 연관성이 없는 나라의 사람들과) 공동생활을 영위하게 하는 것이다. 서로의 문화는 서로의 문화대로 존중하고, 서로의 가치는 서로의 가치대로 공유하되, 어느 누가 복종하거나, 혹은 어느 누구를 복종시키지 않고, 함께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서로의 공간을 존중하며, 어느 누구 하나 상처 받지 않고, 서로 상생하며 살아가는 어항 속의 구피와 알지이터처럼 말이다.
물고기들 마다 서로 노는 물이 다른 것처럼, 사람들도 각자의 분수에 맞게 놀아야 한다는 논리로 계급론을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구성원들이 서로 싸우고, 헐뜯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면, 적어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그 구조만큼은 우리 스스로 바꾸려고 노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논지의 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