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아폴론과 다프네>
구피(열대어의 일종)를 키우고 있다 보면, 유독 구피의 눈동자를 신경 써서 보게 된다. 구피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눈동자가 까매진다고 한다. (엄밀히 말하면, 동공의 까만 부분이 순간적으로 팽창하여, 눈의 흰자 부분을 뒤덮는다고 해야겠다.) 수질이 오염되었다거나, 수중에 산소가 부족하다거나, 다른 물고기가 자신을 괴롭히는 경우에 구피의 눈동자가 주로 까매진다고 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면역력이 떨어지게 되고, 면역력이 떨어진 구피는 다른 건강한 물고기들보다 질병에 걸려 죽을 확률이 높다고 하니, 구피의 검은 눈동자와 구피의 죽음 사이에는 일련의 상관관계가 성립한다고 보겠다. 구피의 눈동자에 어둠이 드리울수록, 그 생명에도 죽음이 드리운다고 해야 할까. 그러한 점에서 구피의 눈동자는 구피 건강의 신호등인 셈이다.
사람도 구피처럼, 그 사람의 눈동자만 보고도, 그 사람의 건강상태를 알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건강 신호등에 적 신호가 켜진 이들을 나의 주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회사를 다니고 나서부터 살이 찌기 시작했다는 사람, 이와 반대로 회사를 다니고 나서 섭식장애로 고생한다는 사람, 그리고 역류성 식도염으로 고생한다는 사람, 언제부터인가 낯빛이 까매졌다는 사람 등등. 어쩌면 인간의 몸은 구피의 신체보다도 더 다양하게,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 건강의 이상 여부를 알려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건강 악화에 둔감한 우리 현대사회인들만이 자신의 스트레스 관리에 실패하여,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시름시름 앓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득,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다프네라는 님프가 생각났다. 아폴론의 구애를 거절하며, 도망 다니던 다프네는 자신의 아버지, 강의 신, 페네이오스에게 부탁한다. 아폴론이 자신의 몸에 손을 닿게 하느니, 차라리 자신의 지금 모습을 다른 모습으로 바꾸어 달라고 말이다. 그러자 그녀의 손과 발은, 줄기와 뿌리로 변하며, 다프네는 결국 월계수 나무로 변하고 말았다고 한다.
어항 속, 구피는 눈으로 말한다. "더 이상 나를 스트레스받게 하지 말아 주세요. 한번 더 나를 힘들게 만들면, 나는 차라리 지금과는 다른 새까만 눈동자로 변해버리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