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상기의 <자라지 않는 나무>
물고기 어항에 고구마를 넣어 기르고 있다. 언제 다 자랄까 싶던 고구마는 백발 같은 하얀 뿌리를 흩어 내리고, 자줏빛 굵은 줄기를 곧게 뻗어 올렸다.
상처 난 고구마는 물속에서 살아남지 못한다고 한다. 상처 난 고구마는 어항 속에서 곪고 곪아, 어항 물을 썩게 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 고구마가 상처가 나고, 안 나고의 여부는 고구마에게 달려있지 않다. 전적으로 고구마의 외부 환경에 의해 좌우되는 일이다. 고구마가 아무리 곱상하게 자랐다고 할 지라도, 그 수확과정에서 호미에 한번 찍히기 라도 한다면, 그 고구마는 평생 그 상처를 안고 가야 한다. 그 맛에는 별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외관상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상품성이 떨어진다고 낙인찍어 버린다. 고구마에 발이 달려서, 자신에게 달려드는 호미를 피할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어떤 고구마는 강한 호미질을 맨가슴으로 장렬히 받아야 하는 운명을 갖고 태어나는 것 같다.
그리하여 나는 상처 난 고구마를 어항 속에 넣지 않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 대신, 상처 없는 곱상한 고구마 하나를 넣었다. 상처 난 고구마와 어항 속 물고기, 모두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어떠한 연유로, 상처난 고구마가 어항 속에 빠지게 된다면, 상처난 고구마 자신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어항 밖으로 빠져 나올 수 없는 고구마는 본인의 의지로 능력껏 상처를 치유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상처난 부위가 이내 곪아서 고구마 몸통 전체가 썩어 버리고 말 테니까 말이다.
상처를 받고, 안 받고의 문제도 고구마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늘, 어항에 빠지고, 빠져나오는 일 역시도 고구마 스스로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에, 냉장고 야채칸 속 상처 입은 고구마들이 괜스레 슬퍼 보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고구마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느닷없이
고구마들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거봐, 너도 고구마지, 너도 고구마지, 너도 고구마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