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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진 Nov 10. 2023

까임은 일상이요, 수정은 생활이다

어느 작곡가의 멘탈 관리

    “영상 음악 작곡가에게 까임은 일상이요, 수정은 생활이다.”


    작곡가로 일하며 습관처럼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말 그대로이다. 애써 작업한 곡이 까이는 일은 빈번하다. 편곡을 수정하는 일은 일상적이고 가벼운 축에 속한다. 실제 녹음과 믹싱까지 끝내놓고 드라마에 쓰이지 않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다. 한 곡 한 곡에 영혼을 갈아 넣었지만 결과물은 그저 그랬던 초보 작곡가 시절의 나는 ‘내 자식 같은’ 곡이 까이면 내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것과 같은 쓰림이 있었다. 욕심인 건 알지만 밤샘하며 만든 곡이 한 번에 오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은 인지상정 아닌가?


    내가 만든 곡이 영상에 백발백중한다면 행복하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이 분야에서 오래 일한 작곡가라고 해도 피해갈 수는 없다. 영상 음악은 대부분 단독작업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여러 명의 작곡가가 한 프로젝트를 위해 일하는 구성원의 측면에서도 그렇고 내가 만든 곡이 우선 음악감독의 오케이 사인을 받아야 하고 최종적으로는 연출의 오케이를 받아야 하는 과정의 측면에서도 그렇다. 어쨌거나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만든 곡이 최종 편집 영상에 어울려야 하는데 이 판단은 전적으로 편집 현장의 결정에 따른다. 그래서 부분 수정으로 그 곡을 살리는 때도 있지만 아예 다른 곡으로 교체되는 경우도 많다.


    이 분야에서 막 일하기 시작했을 때는 수정해야 하거나 곡을 다시 써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내 실력이 이렇게나 부족한가?’라는 생각으로 잠 못 이룰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러다가 곡이 생각보다 잘 나와 좋은 호응을 얻거나 내가 만든 곡이 영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그 영상을 빛나게 해줄 때면 그 순간의 기쁨은 무엇보다 컸다. 나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경험 없는 초보이니 당장에 실력이 부족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듣는 귀의 수준은 높은데 내가 만든 결과물의 완성도가 떨어지니 자괴감도 들었다. 한 번 한 번의 프로젝트 참여가 소중했는데 결과가 참담할 때가 많아 속상했지만 그럴 때마다 내게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찾고 보완하려고 애썼다. 편곡의 구성이나 완성도, 악기 소스에 대한 고민, 작품의 이해도 등등 공부할 것이 참 많았다. 기회가 많지 않던 시절이었지만 프로젝트 참여는 배우고 성장하기에 가장 좋은 기회였기 때문에 나는 그때마다 부족한 부분에 대한 복기와 공부를 반복했다. 내 분석이 정확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내 나름의 방식으로 분석했고 그 분석을 바탕으로 공부했다. 그렇게 몇 년간 안간힘을 썼고 어느 순간 내가 성장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어떨까? 안타깝지만 수정과 까임은 경력 10년 이상인 나에게도 여전히 있는 일이다. 솔직히 말해 오래 일하고 많은 작품에 참여했으니 까인 횟수도 그만큼 많을 것이다. 지금은 까인다고 하면 잠시 기분은 상할 수 있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 대신 놓친 부분이 있는지 따져 보기도 하고 견해 차이가 있는지도 생각해 본다. 초보 시절과 비교해 어느 정도 객관적인 판단이 가능해졌다는 뜻이다. 내가 쓴 곡을 타인이 판단할 때, 내가 납득한 부분에 대해서는 기꺼이 수정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대화로 이해하거나 이견을 좁히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니까 이제는 그 판단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나의 부족함이나 잘못이라고 일방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영상의 이해는 사람마다 미묘한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작곡가는 음악감독과 연출이 정한 전체적인 방향성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나름의 이해를 바탕으로 창작하기 때문에 최종 편집 영상과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개별 장면이나 이야기의 흐름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음악으로 납득시키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지만 편집 과정에서 다른 결정이 내려진다고 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적인 성장만큼이나 현장 업무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


    까이고 수정하는 만큼 작곡가로서의 캐릭터가 성장한다고 생각하면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도움 될까? 작품 하나가 게임 스테이지 하나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원래 수정과 까임이 일상적인 분야라고 생각하고 마음의 상처는 많이 받지 말자! 작품 경험이 쌓이다 보면 수정하는 횟수도 줄어들고 작품에 의미 있는 곡을 쓰게 되는 날도 있다. 때론 잘했고 잘 됐던 곡의 성공 경험이 계속 작곡을 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그러니 수정, 까임, 실수, 실패 등등을 지나치게 곱씹으며 우울의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대지 말자. 어떻게 하면 부족한 실력을 키울 수 있을지, 나의 강점을 어떻게 해야 더 성장시킬지에 집중하자.


    모든 예술이 그렇듯 영상을 위한 음악도 완성된 후에는 개별적인 존재와 같아서 내 손을 떠난 곡은 어떤 의미에서 내 것이 아니게 된다. 나는 처음 의도에 맞게 영상과 잘 어울릴지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다. 내가 결과물을 마음에 들어 해도 편집단계에서 맞지 않을 수 있고 내가 흡족하지 않아도 영상과 잘 어울릴 때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영상을 고려하되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최선을 다한 작편곡에 대해서는 나의 부족한 실력도, 작품 운이 없는 것도 오히려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대박 드라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면 좋겠지만 영상 음악을 직업으로 삼은 이상 작품 한두 편으로 내 커리어를 끝낼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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