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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진 Dec 01. 2023

나는 영상음악가입니다

    영상 음악이란 드라마, 애니메이션, 영화, 다큐멘터리, 교양, 예능, 광고, 게임 등 다양한 영상 매체를 위해 만들어지는 음악이다. 내가 주로 일하는 분야는 방송 프로그램으로 그중 시청률이 가장 중시되는 드라마와 애니메이션을 위한 음악을 만드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영상 음악은 특정 작품을 위해서만 존재하고 단독으로는 쓰임이 없는 음악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간혹 평소 가볍게 들을 만한 음악도 있지만 대부분 감상용으로 듣기에 적합하지 않고 OST 앨범이 나오더라도 대중은 음악에서 특정 장면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아하는 정도이다. 이런 이유로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와 녹음을 했더라도 작품이 흥행하지 못하면 음악은 찬밥 신세가 되기도 한다.


    영상 음악은 만드는 과정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 오히려 자유보다는 ‘제약’이라는 단어에 더 가깝다. 영상에 나의 분석과 표현방식을 반영하고 싶어도 연출자는 대부분 자신이 원하는 바가 이미 마음속에 있다. 나의 역할은 그들이 만들지 못하는 음악을 대신 만들어주는 것이다. 때론 그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기발한 음악을 만들거나 애초에 특별히 원하는 음악이 없는 경우에는 내가 제시한 음악을 단번에 좋다고 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들의 마음에 흡족한 음악을 만드는 것이 영상음악가가 하는 일이다.


    영상음악가는 영상의 톤과 분위기, 씬의 길이와 프레임의 속도 등 기술적인 부분을 고려하며 작곡하는데 이런 정해진 틀 안에 ‘어떻게든’ 음악을 끼워 맞춰야 한다. 그래서 나는 클라이언트의 요구사항과 영상이 만들어놓은 아주 작은 공간만이 내 음악성이 숨 쉴 수 있는 ‘에어포켓’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맞춤형' 음악을 만드는 일을 13년째 해오고 있는 작곡가이다. 내가 참여한 작품 중에는 <더 글로리>, <비밀의 숲>, <뽀로로 극장판> 처럼 대중이 다 알 만한 것도 있지만 잘 모르는 작품이 더 많다. 특히 나는 애니메이션을 많이 작업했는데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을 만나면 나를 굉장히 좋아해 주기도 하지만 그 외는 대부분 별 반응이 없다.


    이런 나는 영상 음악을 ‘세상의 모든 음악’이라고 표현한다. 작품의 종류나 장면마다 필요한 음악의 스타일과 장르가 달라서 클래식 음악부터 펑크, 락, 재즈, 라틴, EDM 등 만들지 않는 음악이 없을 정도이다. 얕잡아 얘기하면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은 없지만 웬만큼 흉내는 낼 줄 안다고 할 수 있다. 나의 고민은 이제는 영상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음악을 만들려고 하면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마치 동물원 울타리 안에 있는 사자 같다. 어떤 음악이든 만들 수 있지만 영상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어야 자유롭고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영상 음악뿐 아니라 다른 대중음악을 하고 싶은 욕심도 있어서 요즘에는 울타리 밖으로 나가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껏 내가 하는 일을 다소 부정적으로 느낄 만한 내용을 얘기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 나는 이 일을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용을 다 그리고 마지막에 눈동자를 그려 넣는 순간 진짜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했다는 이야기처럼 영상음악가는 메마른 영상에 음악으로 생명을 불어넣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나는 이 일을 무척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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