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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진 Dec 02. 2023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음악’을 해야 행복하다

    나는 내가 만든 곡이 영상에 잘 어울려서 많이 노출되길 바란다. 노출 빈도가 높을수록 곡을 잘 썼다는 뜻이고 돈도 더 벌 수 있으니까. 그러니 내 음악이 음악감독과 연출의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고 더 나아가 시청자들의 뇌리에 콕콕 박혀 두고두고 기억되길 바란다. 이런 식으로 내가 만족시켜야 할 대상은 다양하다. 하지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다.


    ‘이게 정말 내 음악이 맞나?’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의뢰받은 곡에서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해당 영상에서의 역할, 그리고 주어진 장르 등을 제외하면 내게 주어진 ‘공간’은 얼마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거기에 수정이라도 여러 번 하게 되면 처음 나의 의도와 많이 달라지기도 해 답답할 때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영상음악가는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영화 <가을의 전설>, <타이타닉>, <아바타>의 음악감독 제임스 호너는 자신을 감독이 만들고 싶은 음악을 대신 써주는 ‘fancy pencil’이라고 말했다. 직역하면 ‘화려한 연필’이다. 그 연필을 쥐는 사람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려주는 역할이라고 자신을 겸손하게 표현했다. 이 말에서 나는 동질감과 위로를 느꼈다. ‘나만 그렇지 않구나. 나는 영상음악가가 느껴야 할 감정을 제대로 느끼며 이 길을 잘 가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나를 안도시켰다.


    하지만 나의 역할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나는 더더욱 스스로 먼저 만족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야 행복한 작곡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얼마 되지 않는 내 공간에서 나의 색깔과 개성을 표현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내가 만든 곡의 첫 번째 청취자인 나를 만족시킨 다음에 감독을 넘어 시청자까지 만족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음악적인 욕심은 일이 몰려 몸이 지치거나 일이 없어 마음이 불안할 때 나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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