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정안 Mar 11. 2024

심장의 시한폭탄

희귀 난치병 환자의 마음의 상처 

 


 하루는 검색창에 ‘마르판증후군’을 검색해 보았다. 약 십 년 전쯤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마르판증후군은 많이 알려진 질환이 아니었다. 의료진이 작성한 믿을만한 콘텐츠가 별로 없어 당연히 검색결과가 빈약했다. 그중 말판증후군을 소개하는 어느 블로그의 포스팅이 있길래 클릭해 보았다.


  안녕하세요. 세상에는 참 끔찍한 병이 많습니다. 오늘은 말판 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을 소개합니다. 심장이 점점 커지다가 결국엔 자기 심장이 터져 죽는 끔찍한 병입니다. 몸속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들어 있는 셈입니다. 심장이 터져 죽는다니 너무 끔찍하고 불쌍한 병입니다.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


  대충 이런 글이었다. 마르판 증후군은 심장의 혈관인 대동맥이 늘어나고 심장의 판막이 망가지는 증상은 있어도 심장 자체가 늘어나지는 않는다. 사실이 아니었다. 그리고 모든 마르판 환자가 심장에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니며 있다 하더라도 예방적 수술로 사망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글은 심장이 터져 죽는다고 두 번이나 강조하고 있었다. 터진다는 의미를 찰떡같이 시한폭탄에 비유한 것으로 보아 표현력이 뛰어난 사람이 쓴 글인 것은 알겠다. 그러나 의학적으로 보면 근거 없는 상상력이 만들어낸 가짜정보에 불과했다.


  만약 마르판 증후군 환자가 심장이 터져 죽는 것이 사실이라 가정해 보자. 올바른 정보였다고 하더라도 타인의 불행에 대하여 ‘끔찍하고 불쌍하다’는 표현을 서슴없이 하는 것으로 보아 글쓴이의 모자란 인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글이었다. 마르판 환자를 ‘너무 끔찍하고 불쌍하게’ 만들어 놓고서 갑자기 좋은 하루를 보내라니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화룡정점으로 외국 사이트에서 다운로드한 스톡이미지 같은 폭탄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좋은 하루를 보내며 지나가던 마르판 환자는 갑자기 던져진 폭탄을 맞은 것 같았다.


  나는 이런 무책임하고 무례한 글에 대해 화를 냈어야만 했다. 댓글로 팩트를 나열하며 ‘마르판증후군이 무슨 심장이 늘어나나요? 대동맥이 늘어날 수 있지만 수술받으면 다 고쳐집니다. 그리고 수술받으면 일반인과 수명이 같다고 연구되고 있습니다. 환자들 불쾌하니 의학적 지식도 없으면서 이런 글 싸지르지 마세욧!’ 하고 혼을 내줬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나는 멍청하게도 댓글을 남기기는커녕 그 글에서 상처를 입었다. 생각 없이 던진 돌에 맞아 죽는 개구리처럼 누군가가 생각 없이 쓴 수준 낮은 글 때문에. 심장이 터져 죽는 끔찍하고 불쌍한 병이라는 그 쓸데없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말았다.


  어느 날, 마르판 증후군 환우회인 온라인 카페에 비보가 올라왔다. 한 회원님이 대동맥 박리로 쓰러져 응급수술을 받고 있다고 했다. 마르판 환자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회원들은 모두 기도하겠다고 응원 댓글을 달았지만 며칠 뒤 그분께서 하늘나라로 가셨다는 소식이 다시 전해졌다. 나는 처음 접한 마르판 환자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다. 알고 보니 자신의 부모님이 이미 대동맥 박리로 돌아가셨다는 카페 회원님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야 의학의 발달로 마르판 환자의 진단과 수술이 가능해졌고 그전에는 대동맥 박리로 인해 환자들의 평균 수명이 32살이었다고 한다. 회원님들의 부모님 세대는 대부분 일찍 돌아가셨을 확률이 컸다. 얼마 뒤 또 다른 회원님이 대동맥 박리로 세상을 떠나는 일이 발생했다.


  분명 예방적 수술을 하면 괜찮다고 했는데 왜 미리 대처하지 못했던 걸까 의문이 들었다. 대동맥이 늘어나는 것은 몸으로 직접 느껴지는 증상이 없으니 병원의 정기 검진을 잘 챙기지 못한 케이스도 있었고 병원에 다녔지만 대동맥이 늘어나는 속도가 너무 급격해 미처 예상하지 못한 케이스도 있었다. 병원에 다닌다고 안심할 것이 아니라 실제 자신의 대동맥 사이즈를 일정한 간격으로 체크하고 이에 대한 의료진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들었어야 했던 것이다. 마르판 증후군은 분명 죽음과 멀지 않은 병이었다. 평상시 증상이 없었더라도 돌연사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나는 ‘심장이 터져 죽는 끔찍하고 불쌍한 병’ 이라던 그 싸구려 블로거의 말을 떠올렸다. 심장이 터져 죽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동맥이 터져 죽는 끔찍하고 불쌍한 병이었다. 그의 말이 반쯤은 사실이었다 여기니 나는 다시 슬퍼졌다.




이전 07화 통증 선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