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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안 Feb 27. 2024

세 번의 심장수술

희귀 난치병 환자의 스펙



  그토록 피하고 싶던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나는 중학교 1학년이었다. 심장초음파 검사의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갔던 어느 날, 내 심장의 판막 중 승모판이 잘 닫히지 않아 피가 역류하고 있다고 주치의에게 들었다. 아기 때 ‘말판증후군’을 진단받은 이후 언젠가 심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말을 항상 들어왔는데 그게 정말로 현실이 되었다.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심장 수술은 흉골을 톱(물론 의료용)으로 절개하고 혈액은 외부의 기계를 통해 체외 순환되며 약물로 심장을 잠시 멈추고 진행한다는 무시무시한 설명도 들었다. 수술 시간은 네 시간 정도. 정상적으로 닫히지 않는 승모판을 성형한다고 했다. 성형은 얼굴만 하는 줄 알았는데 나는 심장 판막을 성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선생님 앞에서는 잘 참던 눈물이 수술 날짜를 정확히 잡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터지고 말았다. 열네 살 인생의 최대 고난이었다.


  2학기를 마치고 겨울방학이 되자 우리 가족은 입원 준비를 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수술 전날 밤 동의서에 싸인을 하고 내가 있던 병실로 돌아온 엄마는 한바탕 울고 온 얼굴이었다. 수술 중 사망률 같은 끔찍한 말을 들었음이 틀림없었다. 아마도 엄마 인생의 최대 고난인 것 같았다.




  다음날 나는 아직도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얼굴로 얼떨결에 수술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의료진이 나에게 산소라며 들이마시라고 마스크를 씌워줬는데  그때부터 기억을 잃고 말았다. 그 이후 어렴풋이 누군가 내 몸을 굴리는 느낌과 시끄러운 소리와 엄청난 고통이 있는듯한 느낌이 있었고 간호사 선생님의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목구멍이 너무 아픈 느낌이 들었다. 산소호흡기를 목 깊숙이 집어넣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눈을 뜰 힘이 아직 없어서 헛구역질하며 간호사 선생님께 신호를 보냈지만 간호사 선생님은 눈 옆으로 흘러내린 내 눈물을 닦아주며 아직은 빼줄 수 없어 미안하다고 하셨다. 내가 잠에 들면 숨을 안 쉬기 때문에 스스로 숨을 잘 쉴 때까지는 빼 줄 수 없으니 계속 숨을 크게 쉬라고 했다. 일분일초가 영겁의 시간처럼 괴로웠지만 온 신경을 집중해 호흡했다. 잠시 후 정말로 간호사 선생님이 잘했다고 칭찬해 주시면서 목구멍의 호흡기를 빼주셨다.


  그다음엔 가운데 가슴 부분에서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눈을 떠서 보니 하얀 솜이 그곳에 세로로 길고 두툼하게 붙여져 있었고 그 밑으로 배액관이 세 개나 꽂혀있었다. 진짜로 내 흉골이 열렸던 것이다. 간호사 선생님은 내가 눈을 뜬 것을 확인한 후 내 손에 진통제 버튼을 쥐여주시며 아플 때 한 번씩 누르라고 하셨다. 눌러보니 치익 소리와 함께 매달아 놓은 진통제가 자동으로 주사 라인으로 들어가며 몇 분 후 통증이 참을 수 있을 만큼으로 줄었다. 목이 너무 말라 누운 채로 빨대로 조금씩 물을 마셨는데 그때 해갈의 기쁨은 말로 할 수 없었다. 살았다.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눈을 뜬 곳은 소아 중환자실이었다. 나는 빠르게 회복했으나 부정맥이 약간 있어서 중환자실에서 며칠 더 머물렀다. 어느새 비스듬히 침대를 세우고 앉아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는 구석 자리였고 내 오른쪽과 맞은편으로 역시 나처럼 가슴에 붕대를 붙인 신생아들이 일렬로 누워있었다. 선천적으로 심장에 이상이 있는 아기들이 이렇게 많구나 싶었다. 눈도 뜨지 못한 아기들이 수술부위가 많이 아픈지 낯설어서 우는 건지 아니면 그냥 우는 건지 번갈아 가며 울었다. 그 공간에서 의료진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환자는 나밖에 없었다. 간호사 선생님들은 내가 무척 심심하겠다며 말을 걸어주셨다. 하루 두 번 오시는 부모님 면회 시간을 기다리는 것밖에 할 게 없었다. 조카를 너무 사랑한 나의 열혈 이모는 병원 도서관에서 만화책을 빌려다 주셨다. 간호사님들은 커튼을 쳐 나를 가려 주셨으나 결국 의사 선생님께 들키고 말았다. 중환자실에서 만화책 보는 환자는 처음 본다며 위생상 안 된다고 만화책을 압수당했다. 다시 할 게 없어진 나는 또 맞은편 아기들을 보며 멍을 때리고 있었다. 나를 불쌍히 본 간호사 선생님은 구형의 작은 TV와 비디오 플레이어를 갖다 주셨고 나는 역시 또 이모가 빌려다 준 비디오테이프로 영화 “늑대의 유혹”을 보았다. 비록 영화를 재밌게 볼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상태는 아니었지만 나는 진짜 진통제와 배우 강동원이 우산 속에서 잘생긴 얼굴로 등장하는 늑대의 유혹의 명장면을 심리적 진통제 삼아 그 고통의 시간을 버텨냈다.


  일반병실로 올라오니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어 마음이 많이 안정되었고 회복이 빨라졌다. 심장 수술의 회복은 몸에 주렁주렁 달린 호스들을 하나씩 제거해 가는 과정이다. 용도가 기억나지 않는 쇄골 밑을 뚫은 얇은 관도 있고 명치에는 수술 부위의 과다한 삼출물을 빼내는 배액관 세 개가 줄 맞춰서 꽂혀있다. 이것들은 화장실을 갈 때마다 시뻘건 액체가 차 있는 배액 통을 함께 옮겨야 하므로 아주 귀찮은 존재이다. 호스를 하나씩 제거하며 뚫린 구멍을 의료용 스테이플러로 막아주어야 그 부위가 아문다. 물론 처음엔 스테이플러를 나의 소중한 명치에 찍는 걸 지켜보아야 하니 충격이 컸다. 그래도 세 번째 호스를 뺄 때는 마지막 호스가 빠지면 자유의 몸이 된다는 걸 알고 있으니 설레는 마음이 더 컸다. 곧 있으면 집에 갈 수 있겠구나. 엑스레이를 찍으니 열었던 흉골을 다시 묶어 고정시켜 놓은 철사들이 가슴 한가운데를 따라 일렬로 줄을 맞춰 있었다. 몸속에 인공물이 들어있는 처음 보는 엑스레이에 당황했지만 익숙해져야 했다. 나는 입원 7일 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 흉골 통증은 몇 개월 동안이나 계속되어 진통제를 먹었지만 맞춰 무사히 중학교 2학년이 될 수 있었다.




  22살에는 수술했던 승모판이 다시 이상이 생겨 아예 금속으로 된 인공판막으로 교체했다. 이번에는 로봇 수술할 수 있어 흉골을 열지 않고 갈비뼈 사이를 가로로 열고 수술할 수 있었다. 27살에는 대동맥 혈관이 많이 늘어나 인조혈관으로 교체했다. 사실 눈도 수정체가 탈구되어 시력이 안 좋은 채로 살다가 불편해서 인공 수정체 삽입 수술을 받았었다. 점점 인조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았지만 나는 이렇게 의학의 도움을 받아 몸에 이상 있는 부분을 고치며 살 수 있었다. 그럴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난 건 감사하고 다행인 일이었지만 수술 그 자체로는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다. 세 번째 수술 역시 다시 흉골을 열어야 했는데 수술 의료진들이 전에 한 번 열었던 흉골이라서 유착이 많아 수술하기가 무척 까다로웠다고 하셨다. 다시는 수술하면 안 된다고 덧붙이셨다. 나도 정말로 그러고 싶었다. 그것이 나의 마지막 심장 수술이었길 바라본다.




  10대에서 20대, 한참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나이에 나는 세 번의 대수술을 겪었다. 모두가 알아주는 취업 스펙을 쌓지는 못했지만 나는 나름대로 인생의 스펙을 쌓았는지도 모른다. 어르신 환자들만 보던 흉부외과 전공의들은 내가 진료실로 들어가면 내 얼굴을 확인하고 차트의 나이를 한 번 더 본다. 그러고는 수술 이력을 보며 “어휴, 큰 수술을 세 번이나 하셨네요. 고생 많이 하셨네요.” 하며 인정해 주시는 선생님들이 계신다. 병력이 꽤 화려한 환자들이 모이는 이곳 대학병원에서조차 인정받는 수술 기록이다.


  수술이 자랑스러워할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힘겨운 수술과 회복의 경험들이 나를 강하게 만들어주었다는 것은 자랑스럽다. 다른 수술까지 합쳐 6번의 전신 마취 수술 경험으로 나는 수술장과 수술대가 무섭지 않게 되었다. ‘마취 후 깨어나지 못하면 어쩌지…’ 같은 걱정은 하지 않는다. 6번 모두 정확하게 눈을 다시 떴던 경험 덕분이다. 그냥 ‘내 몸에 고쳐야 할 게 또 있군. 얼른 수술받아서 고치면 이전보다 훨씬 나아지겠다.’ 싶다.

흉골을 묶어놓은 가지런한 철사들, 인공판막에 인공 혈관 교체 부분까지 하얗게 찍혀 나오는 유난스러운 나의 흉부 엑스레이 사진을 보면 인조인간 같아 조금 멋쩍긴 해도 내 수술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사진이라 소중하다. 문제가 많았지만 잘 기능하고 있는 신체 기관의 기특한 모습들. 내가 견디고 버티어낸 시간이 흔적으로 남아 있기에 어쩌면 나라는 사람을 가장 잘 표현하는 증명사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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