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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안 Mar 03. 2024

생존형 아웃사이더

희귀 난치병 환자의 단체생활 생존기



  단체생활은 누구에게나 어렵지만 몸이 약한 내게는 특히 더 어려웠다. 대학생 때 일이었다. 나는 고려대학교 자유전공학부에 입학한 새내기였고 고려대학교는 끈끈한 교우회가 있다는 명성에 걸맞게 다양한 단체활동을 요구했다. 그중 하나가 고연전(고려대학교에서는 연고전이 아닌 고연전이라고 부른다.)에 참가해 단체응원을 하는 것이었다. 고연전은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가 매년 벌이는 5 종목의 스포츠 정기전 행사를 말한다. 학생들은 각 팀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미리 모여 몇 차례 응원가를 익히며 본행사를 준비한다.


  아마 마지막 응원 연습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선배, 동기들과 함께 잔디밭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응원가를 힘차게 부르고 있었다. 내 옆에는 하필 덩치가 크고 키도 제일 큰 남자 선배가 있었다. 어깨동무를 하고 오른쪽으로 이동하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꿔 반대편으로 이동하는 동작이었는데 나는 응원가를 다 못 외워서 어느 쪽 방향으로 가야 하는 줄도 모르고 양쪽에서 이끄는 대로 따라가고 있었다. 순간 방향이 바뀌었고 몹시 신이 난 내 오른쪽 선배는 나를 왼쪽으로 날려버렸다. 육중한 충격이 온몸으로 전해지고 버텨보려는 나의 시도는 실패했다. 나는 순간 붕 떠올랐다가 잠시 후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여자 동기들과 날 날려 보낸 선배가 달려와 나를 일으키고 괜찮냐고 묻는 소리와 빵 터지는 웃음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그래 젊음의 축제란 이런 것이지!’ 하며 툭툭 털고 일어나면 정말 젊은 날의 추억으로 저장할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약하디 약한 유리 같은 몸은 그럴 깜냥이 안되었다. 전신에 충격이 느껴져서 어느 부위가 아프다고 딱 집어 말할 수 없이 그냥 온통 아팠다.


  동기들이 괜찮냐고 묻는데 이상하게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든 이 사실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정신을 집중하고 친구의 팔을 두드려서 도움을 요청했다.

“왜 그래? 어디 안 좋아?”

“나... 말이... 잘… 안 나와...” 겨우 뱉어냈다.

결국 힘겹게라도 말했으니 말을 아예 못 한 건 건 아니었다. 넘어질 때의 충격으로 뇌를 다쳤나 싶어 뇌진탕 증상을 검색하며 두려움에 떨었다. 점점 머리가 멍해지더니 나중엔 머리가 멈춘 기분이 들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판단이 서질 않았다. 한 가지 생각은 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 집에 가야 한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나는 그 흥분의 도가니를 빠져나왔다.


  학교 앞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잠시 뒤 응원을 마치고 내려오는 학생들이 아직 흥이 가시지 않아 응원가를 부르며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원룸에 누워 생각했다. 내 몸은 축제를 감당할 수 없구나. 그건 모두 즐거워지자고 하는 일이었다. 부담을 주려는 게 아니고 함께 즐기고 함께 놀자는 뜻이었다. 그렇지만 그 즐거운 일을 하려면 어느 정도의 건강이 필요했고 나는 그게 없었다. 10시가 넘은 시간, 엄마한테 전화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러면 분명 ‘거기를 왜 갔냐, 그렇게 위험한 응원을 왜 하러 갔냐, 그런 건 참여를 안 하면 안 되냐. 병원에 안 가봐도 되겠냐.’는 말을 하시며 속상해하실 것이 뻔했다.




  어릴 때부터 나에게 학교생활은 뭔가 항상 어렵게 느껴졌다. 그게 공부는 아니었다. 수업 듣기, 숙제하기 같은 건 다행히 어렵지 않았다. 관계의 문제도 아니었다. 친구들, 선생님과는 잘 지냈다. 그럼에도 난 항상 무언가 버겁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단체생활은 항상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무언가를 하자고 했다. 그러나 약한 몸을 가지고 사는 나에게는 그 약속 자체가 부담이었다.


  아침 등교부터가 미션이었다. 저학년 때는 낮은 층 교실을 썼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실도 점점 위층으로 올라갔다. 마침내 교실이 5층이 되어버린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매일 아침 5층까지 올라가려면 3층까지는 억지로 올라가도 4층에선 다리는 천근만근에 심장이 쿵쾅대고 호흡이 가빠오며 어지러워졌다. 등교 시간에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나는 계단이 꺾이는 중간 부분에 멈추어서 내 뒤에 오던 아이들이 먼저 가도록 한쪽 옆으로 비켜야 했다. 나는 어느새 아이들에게 ‘계단 올라갈 때 쉬는 아이’가 되어있었다.


  난 수학여행도 가지 못했다. 중학교 1학년을 마친 겨울방학에 심장 수술을 해 2학년 때 아직 반으로 갈랐던 흉골이 완전히 붙지 않은 상태였다. 체력도 수술 전처럼 돌아오지 않았고 가끔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기도 했다. 부모님은 내가 이 몸 상태로 수학여행을 가면 힘들 거라고 반대했고 나는 안 가면 왕따를 당한다며 울었지만 결국 그래도 가지 못했다. 물론 나는 왕따를 당하지 않았고 지금 생각하면 그 몸으로는 가지 않는 것이 맞았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친구들은 새로운 신체 능력이 생겼지만 나는 여전히 못 하는 것들이 많았다. 고등학교 1학년 입학하자마자 선생님이 각자의 책걸상을 위층 교실로 옮기라고 했다. 같은 반 친구들은 책상 위에 의자를 뒤집어 얹은 다음 세트로 만들어 한 번에 번쩍 들고 옮겼다. 물론 비실대는 몇몇도 있었으나 아무도 나만큼은 아니었다. 나는 팔 힘이 거의 없었다고 보면 되는데 책걸상을 한 번에 드는 건 당연히 불가능이었다. 일단 의자를 먼저 옮겼다. 그다음 책상을 들고 계단을 올랐던 그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 내가 학교에서 매일 쓰던 그 책상이 갑자기 산처럼 느껴졌다. 산을 들고 옮기는 것 같은 심정으로 깊은 심호흡을 한 뒤 들어 올렸다가 떨어뜨렸다가 질질 끌었다가 하며 간신히 계단을 올랐다. 위층 교실에 도착하니 반 아이들이 모두 자기 자리에 책걸상을 놓고 집에 가버렸다. 교실은 텅 비어있었고 난 혼자였다.


  매 학기 초 교과서를 한 번에 나누어주면 나는 모두 들고 갈 수가 없어 엄마를 호출했고, 체육시간에 달리기를 할 때면 운동장 스탠드에 홀로 앉아 있었으며, 하루는 속이 안 좋아 수업 시간에 토를 하고 조퇴한 날도 있었다. 내 몸으로는 학교생활이 너무 힘들었다. 학교에서는 몸이 건강한 학생을 기준으로 모든 일이 진행되었다. 40명의 학생을 한 반에 넣고 단 한 명의 선생님이 이끌어가는 학교는 학생 개개인의 특성과 상태를 일일이 배려해 줄 수 없는 곳이었다. 학교는 그 나이대의 학생이라면 마땅히 해낼 거라고 생각하는 일들을 끊임없이 요구했지만 내 신체 능력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내 몸과 외로운 싸움을 싸우느라 허덕이는 학생이었다.




  고된 학창 시절을 끝내고 대학생이 되니 좀 달라졌다. 내 체력에 맞게 천천히 조심스럽게 살 수 있게 되었다. 대학교 새내기 시절 단체 응원을 하다가 날아간 그 사건 이후 나는 다시 한번 단체활동의 위험성을 깨달았다. 큰 부상으로 이어질 뻔했으니 이제는 정말 몸을 사려야 했다. 나는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자발적인 아웃사이더가 되기로 했다. 아웃사이더 대학생이 되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교에 있어야 했던 초중고 시절보다는 훨씬 살기가 수월해졌다. 친구들처럼 빽빽하게 연속으로 강의를 듣지 않기로 했다. 수업 중간중간에 공강 시간을 만들어 자취방에 와서 누워있다가 체력을 충전하고 다시 수업을 들으러 갔다. 점심시간을 확보해서 밥을 거르지 않고 수업을 들었다. 비록 다른 친구들보다 마지막 수업이 늦게 끝나긴 했지만 중간에 쉴 수 있어서 나는 만족했다. 건강한 사람들의 기준에서 벗어나 나만의 속도로 시간표를 만들 수 있다니 처음으로 배려받는 느낌이었다.


  잠시 자유를 맛보았지만 취업을 하려고 보니 다시 건강의 문제에 부딪혔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무언가를 하자고 하는 것은 학교나 회사나 똑같았다. 아니, 회사는 이익창출이라는 목표가 있는 곳이므로 더 심했다. 효율 최대화를 추구하는 그 과정에서 건강 상의 약자를 배려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의 체력으로는 취업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내 몸을 지키기 위해 취업을 포기하기로 했다. 자발적으로 자신만의 속도로 천천히 살아나가는 것을 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나에게 다른 선택지는 딱히 없었다. 다만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아웃사이더가 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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