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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안 Feb 27. 2024

아프게 태어난 아이

선천성 희귀 난치병 환자의 고된 운명

 



  내가 글씨를 읽을 수 있을 만큼 자랐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병원에서 진료를 기다리다가 복도 벽면에 붙여 놓은 포스터가 내 눈에 들어왔다. 큰 폰트로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 세미나’라고 적혀 있었다. 그 옆의 포스터에도 다른 포스터에도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라는 단어가 또 적혀 있었다. 나는 내가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라는 것을 눈치껏 알 수 있었다. ‘선천성’이라는 말을 처음 보았던 나는 이 단어가 무슨 뜻인지 엄마한테 물어보았다. 엄마는 ‘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단어의 뜻을 바로 알게 되었지만 그 단어를 나의 인생에 받아들이기까지는 아주 오래 걸렸다.


  유치원에 다니던 어느 날 엄마가 심장이 건강해지는 ‘건강약’을 이제부터 매일 먹어야 한다고 했다. 마르판증후군은 대동맥 혈관이 늘어나는 걸 막아주거나 늦춰주는 효과가 있다고 밝혀진 베타차단제라는 약물을 복용해야 한다. 그때는 무슨 약인지 몰랐지만 나는 아침마다 ‘건강약’을 물과 함께 삼켰고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알약 삼키기의 달인이 되어갔다.


  초등학생 때부터 병으로 인한 증상을 슬슬 생활에서 느끼기 시작했다. 몸이 항상 피곤해서 엄청난 활동량을 자랑하던 또래 친구들과 노는 것이 힘들었다. 무슨 놀이를 하던 나는 절대 친구들을 따라갈 수 없었다. 안과에서는 안구의 수정체를 붙잡고 있는 조직이 약해져 수정체가 탈구되었다고 했다. 시력이 마이너스가 나왔고 교정시력이 0.2에 불과해 교실에서는 칠판이 도저히 보이지 않았고 길에서 가까운 거리의 친구를 못 알아보기 일쑤였다.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승모판막에서 혈액이 세고 있다며 심장판막 성형술을 받았다. 결국 나 는 가슴 한가운데 흉골을 20센티미터가량 절제하고 가슴을 열어 심장을 잠시 멈추고 체외 순환기를 통해 몸에 혈액을 돌려주며 문제의 판막을 성형하는 대수술을 받았다.




  신체적인 문제들을 경험하던 학창 시절 나의 내면에는 혼란의 파도가 요동쳤다. 자주 상처받았고 부담스러웠고 억울했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내 몸 상태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본능적으로 내가 다수가 아니라 아주 아주 극한 소수에 든 것을 직감했다. 얼마나 심한 소수이면 ‘희귀하다’는 표현을 써 ‘희귀 난치병’이라고 부를까 생각하며 슬퍼했다. 그건 소외감이고 상처였다.


  첫 번째 심장수술을 겪으며 나는 내 병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그동안 겪은 생활 상의 불편은 애교였고 목숨이 달린 심장의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앞으로 또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모르니 계속 관찰해야 한다고 했다. 중학생 소녀가 짊어지기에는 버거운 운명이었다.


  도대체 왜? 왜 하필 걸릴 확률도 희박한 유전성 희귀 난치병이 나에게 생겼을까? 부모님 두 분 다 검사해 봐도 유전자가 정상이었다. 그러나 말판증후군 환자의 25%는 부모 유전자가 정상이어도 돌연변이로 발병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나는 희귀병 환자 중에서도 25%로 아주 희귀한 케이스에 드는 것이었다. 이렇게 희박한 확률이라니 신이 나를 핀셋으로 꼭 집어 병이라는 벌을 준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잘못이 없는데 억울했다.




  나는 아프게 태어난 덕에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혼자서 차분히 성찰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한 살 한 살 자라나면서 내면도 같이 성장했다. 나에게 찾아온 질병은 내가 바꿀 수 없지만 대신 내 인생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나의 태도를 바꿀 수 있었다. 아프지 않은 날을 감사할 수도 있었고 수술이라는 치료 방법이 있는 점, 질병이 계속 연구되고 있는 점 등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노력했다. 모두의 인생에 고통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서 억울한 감정도 점점 사그라들었다.

  

  질병을 통하여 고통은 인생에서 불가항력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고통을 견디는 인내력이 강해지는 장점도 있었다. 생살에 굵은 바늘을 찌르는 건 어른에게도 무서운데 어린이에게는 당연히 무섭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피한다고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이해하기 시작했고 숨을 꾹 참으며 날카로운 아픔을 참아낼 수 있게 되었다. 약한 몸으로 병원도 틈틈이 다니면서 남들처럼 학업도 하려면 강한 정신력으로 버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는데 이때 고통을 참으며 나도 모르게 길러진 인내심이 매우 도움이 되었다.


  너무 건강해서 병원 한 번 가본 적 없던 사람이 한순간의 사고로 장애인이 되는 경우도 있고, 가벼운 증상으로 한 검사에서 갑자기 큰 병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후천적으로 하루아침에 환자가 되는 사람들은 병을 받아들일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엔 모두 충격에 휩싸인다. 아주 긍정적인 사람이 아니라면 충격의 시간은 수개월에서 수년까지 길어진다. 그러나 나처럼 선천적으로 환자였던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20년에 걸쳐 긴 시간 동안 천천히 병과 동행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좋은 날도 있었고 슬픈 날도 있었다. 나이테가 겹겹이 쌓이고 쌓여 단단한 나무가 되는 것처럼 한고비를 지나면 또 살만한 날이 찾아왔고 눈물 한 바가지를 쏟아내면 전보다 덤덤해진 마음이 생겨났다. 질병을 손님이 아니라 가족처럼 익숙하게 대하는 그 자연스러운 마음이 오랜 기간 투병해 온 나의 무기가 된 것이다.




  아프게 태어난 아이는 물론 고된 운명을 타고났다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자라며 느낀 것처럼 소외감도 있고 부담감도 있고 억울함도 있고 그보다 더한 슬픔과 분노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프게 태어난 아이는 불행하게 태어난 아이는 아니다. 질병으로 인해 가끔 슬펐을지라도 나는 질병으로 인해 깊은 성찰의 태도를 배웠고 인내심을 길렀으며 담담한 내면을 가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연약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모든 면에서 성장한 어른이 되었다. 아프게 태어난 아이는 아프지만 불행하지 않은 어른이 되었다. 병에게는 행복을 제한할 힘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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