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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안 Feb 27. 2024

무법자

희귀난치병은 사고처럼



  언젠가 미용실에 갔는데 디자이너가 임산부였다. 내 머리를 만지던 그녀는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리자 후다닥 급하게 전화를 받았다.

  "네. 네. 아무 이상이 없는 건가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감출 수 없는 들뜬 목소리로 내게 기쁨의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그날은 마침 태아의 1차 기형아 검사의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고 산부인과의 전화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중이었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는 반가운 소식을 방금 들었다고 했다. 그동안 마음을 졸여왔던 시간의 무게를 '다행이다'라는 말로 한숨처럼 뱉어내며 표정이 점점 가벼워지는 그녀였다. 나 또한 축하를 전했다. 아기를 기다리는 부모에게 그것만큼 기쁜 일이 또 있을까.


  그녀는 불안한 마음을 혼자 감당하느라 더 힘들었다고 했다. 시간이 갈수록 혹시 아기에게 문제가 있지 않을까 근심이 더해지는데 그녀의 남편은 천하태평이었다고 한다. 걱정이 안 되냐고 물었더니 오히려 그걸 왜 걱정하냐고 핀잔을 들었다고 했다. 우리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그런 일은 절대로 절대로 없을 거라고 했단다.


  그 말은 그저 불행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한 인간의 소망의 말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그의 근거 없는 확신을 듣고 나는 어쩐지 서글픈 기분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내가 알기론 그건 절대로 없을 일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상상도 못 할 일들은 삶에서 실제로 일어난다.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날 수 있고, 어느 날 병이 생겨 중환자가 될 수 있고, 갑자기 사고를 당해 죽을 수도 있다. 잔인한 것은 이 사건들은 열심히 대비하고 노력한다고 피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닌 데 있다. 잘못을 저질러서, 관리를 못 해서, 조심성이 없어서... 그런 경우도 있으나 원인을 도저히 알 수 없거나 피할 방법이 아예 없었던 경우가 훨씬 많다.


  불가항력의 불행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지혜롭건 지혜롭지 못하건 대부분의 사람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내 그 누구나의 범위에서 '나'를 슬쩍 빼고서 삶을 살아간다. 무의식적으로 긍정 회로를 돌린다. 그렇다면 그 사실을 정말로 인지하게 될 때는 언제일까? 애석하게도 그 일을 직접 겪고 나서다. 전 생애가 불행의 벽에 쾅 부딪혀 산산이 흩어지면 그때가 되어서야 알게 된다.




  우리 부모님은 신혼 시절, 첫 아이였던 나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고 없는 불행과 맞닥뜨렸다. 내가 생후 18개월이 되던 때, 동네 소아과에서 아기 심장에서 잡음이 들린다고 큰 병원에 가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찾아간 대학병원에서 부모님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진단명을 들어야 했다.

  “마르판증후군입니다. 10만 명당 2.27명의 유병률을 가진 희귀 난치질환으로 피브릴린 15번 유전자 이상으로 나타나는 결체조직질환입니다. 흉부외과적, 안과적, 정형외과적 문제들이 다양하게 진행될 것이고 치료 방법은 현재로선 없습니다. 약물 또는 수술로 평생 적절한 대처를 하며 살아야 합니다. 특히 심장의 혈관 대동맥이 점점 늘어나다가 혈관 벽이 찢어지면 사망률이 높은 위급상황이 됩니다. 이것이 마르판증후군 환자의 주요 사망 원인이 되므로 예방적 심장 수술이 여러 차례 필요할 수 있습니다. 아기는 6개월에 한 번씩 꾸준한 심장 초음파, 안과 관찰이 필요하고 때가 되면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


  진단명을 알리는 의사 선생님의 설명은 조심스러운 말투였을까 건조한 말투였을까. 두 돌이 채 되지 않은 아기를 안고 그 말을 듣는 젊은 부부는 어떤 표정이었을까. 진료실을 채우는 분위기는 얼마큼 무거웠을까. 나는 구체적인 건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아니 상상할 수 없다기보다는 더는 상상하지 않았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잔인한 사고의 현장을 다시 들추어 볼 용기가 없었으니까.


  구체적인 장면을 상상하지 않고 묻어둔다면 슬픔도 묻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내 시도는 소용없는 것이었다. 슬픔은 장면이 아니라 우리 부모님의 얼굴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애쓰지 않아도 부모님의 얼굴을 볼 때마다 느낄 수 있었다. 자식의 낯선 병명을 듣는 공포, 평생 나을 수 없다는 불쌍한 운명을 듣는 마음, 죽음이란 단어를 기어코 듣고만 부모의 심정을.




  그날 10만 명당 2.27명의 희박한 확률은 평범하던 우리 가족을 집어삼켰다. 유전병이 없는 부모에게서 유전자 돌연변이 자녀가 태어나는 희한한 일이 일어나 버렸다. 길 가다가 벼락을 맞아 죽었다는 소식만큼 황당한 일이었다. 범죄의 피해자가 된 것처럼 영문 모를 일이었다. 대상을 가리지 않고 들이닥치는 무법자. 사고는 그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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