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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안 Feb 27. 2024

프롤로그 - 병밍아웃

30대 희귀 난치병 환자의 해방일기

  



커밍아웃(coming out)은 원래 성소수자가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더 이상 벽장 속에 숨어 있지 않고 세상 밖으로 나온다는 뜻이다. 요즘에는 사회적 시선 때문에 몰래 하던 덕질을 공개하는 것을 ‘덕밍아웃’이라고 하는 것처럼 다양하게 응용되기도 한다. 나에게도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해서 벽장 속에 몰래 숨겨둔 이야기가 있는데 바로 나의 희귀 난치병 이야기다.


  나의 심장 소리는 두근두근 이 아니고 탁, 탁, 탁 하는 금속 마찰음이 난다. 금속으로 되어 있는 기계판막이 내 몸속에 몇 개 들어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선천성 희귀 난치병이 있어서 살기 위해선 심장 수술을 해야 했다. 조용한 환경에서는 옆 사람에게까지 다 들릴 정도이지만 그동안 나는 나의 병 이야기 꺼내기를 피해왔다. 나 스스로가 나는 약자라고 발표하는 것 같았다. 어렸을 때부터 뭐든지 잘해야 직성이 풀리던 욕심 많은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었다. 나는 이 병을 내 인생을 감아버린 족쇄처럼 여겼고 약한 게 부끄러워 마음으로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숨기려고 숨겨보려고 애를 써 보았다. 답답했지만 나는 좀처럼 솔직하게 말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보다는 그냥 오해받는 걸 선택했다. 굳이 주절주절 설명하는 것이 구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외면하고 싶어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했다.


  하지만 ‘선천성 희귀 난치병 환자’라는 건 나의 강력한 아이덴티티였다. 마치 내가 ‘여자이고 한국인이고 30대이다.’와 같은 기본적인 사실이었다. 내 인생에서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었으나 모두에게는 핵심을 감추고 살았다. 내가 절대로 뛰지 않는 이유, 매사에 두려움이 많은 이유, 최선을 다하지 않는 이유 등 행동의 원인부터 나의 가치관과 우선순위까지 모두 사실은 나의 병과 연관되어 있었다. 그러면 사람들은 나에 대한 겉핥기식 이해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들에게 나를 이해할 진정한 기회를 주지 않은 셈이었다. 그런 식의 삶은 항상 가면을 쓴 듯 불편했고 마음은 무거웠다.




  14살, 22살, 27살, 나는 세 번의 심장 수술을 해야 했다. 30대가 된 이후에도 각종 증상에 시달리며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기자 나는 당황했다. 정신적으로 외로운 싸움이었다. 병원에서는 의료진을 제외한 모두가 환자와 보호자이므로 내가 환자인 것이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병원 밖을 나서는 순간 내 주변엔 모두 건강한 사람들뿐이었다. 건너 건너 지인 중에 환자가 있더라도 노년의 나이였지 나처럼 젊은 2~30대 환자는 없었다. 나는 젊은 나이에 건강을 잃은 채로 어떻게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 나가야 할지 너무 막막했다. 누군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병을 가지고도 잘살고 있는 케이스가 있다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서 인터넷에 무작정 검색했다.


  유튜버 중에 암 투병 사실을 밝히고 병원에 가고 치료를 받는 일상을 올리는 브이로거도 많이 있었고, 수술 후기를 올리는 만성질환자 블로거도 있었고, 투병 이야기를 책으로 낸 에세이 작가도 있었는데 그들 대부분이 인터넷에 익숙한 2~30대였다. 나는 내 병을 감추기 바빴는데 그들은 대중 앞에 나와 당당히 자신의 병에 대한 모든 것을 공유하고 있었다. 놀라웠다. 본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살아 나가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 모습을 보는데 나의 슬픈 마음이 점점 풀어졌다. 어떤 에너지가 나에게 전달되어 나는 조금씩 힘이 났다. 약하고 아픈 모습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가면을 쓴 채 살아온 내가 가여워 눈물이 났다. 나보다 중한 병이든 경한 병이든 그들의 얼굴은 신기하게 밝았다. 청춘의 빛을 머금은 맑은 얼굴들이 부러워졌다.




  나의 인생의 괴로움의 원인이 병 자체가 아니라 병을 인정하지 못하는 나의 태도에 있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전에도 병원에서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어떤 것도 감출 필요 없이 내 몸의 이상을 있는 그대로 내보일 수 있어서였다. 의료진의 반응은 놀라지도 않았고 호들갑스럽지도 않았으며 있는 그대로 나를 봐주었다. 그런 담담함에 나도 그곳에서는 강한 척, 안 아픈 척을 하지 않아서 자유로운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살아나가야 했다.


  늦었지만 이제야 내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다. 나를 위해서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글을 써서 과거의 절망이 그저 과거로만 머무르게 가두어야 할 것 같았다. 더 이상 자라나지 못하고 힘을 잃어버리도록.  반대로 고통 중에 건져 올린 희망은 내 눈앞에 명료한 언어로 정리되어 살아날 것 같았다. 그러면 나는 그것을 소중하게 마음에 품고 벽장을 나서 현관문을 열고 자유롭게 뛰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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