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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희 May 18. 2019

일상의 소중함으로

워킹맘 다이어리

한 주의 마지막 날이다.
이번 주의 중간지점부터 이틀이 순삭 된 기분이다.
5월은 처음 하는 일과 진행이 결정된 일들, 그리고 남아 있는 일들, 그리고 세금계산서, 결제 등등 회사 운영 관련 이슈가 많은 달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금요일 오늘도 일정이 꽉 차 있다.
며칠 전 자주 없던 남편의 회식 날 밤의 사건들, 천문대 수업으로 아이가 11시 넘어 귀가하고, 몸이 아픈지 피곤한 건지 모를 아이의 상태, 시기에 맞게 정리해야 할 업무 전화들, 그리고 또 종일 강의가 있던 어제 하루, 그리고 오늘, 피곤한 몸과 마음이 예민해져 있다.
오전 일찍부터 회사 운영 이슈들 정리하고 나니 오후 일정 준비가 빡빡해졌다.
급하게 준비하고 나오는 길, 콜랙트 콜로 온 전화, 아이의 학교 번호가 뜬다. 학교에서는 핸드폰 사용이 제한되어 있어 가끔 아이는 문제가 있거나 할 말이 있을 때 그 번호로 전화를 한다. 오늘 몸이 별로라 조퇴를 하고 싶다는 아이의 투정 섞인 말투에 나도 모르게 짜증 난 목소리로 대답하고 끊고는 마음이 편치 않다. 며칠 전 작은 해프닝이 있던 날 밤이 기억나 아이의 상태가 걱정되기도 하고 나의 예민함으로 괜시리 화를 낸거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지난 수요일 한 달에 한번 있는 천문대 수업, 밤 11시가 넘어 돌아온 아이를 픽업하고 집에 들어온 지 30분도 안되어 전화가 울렸다. 아이는 잠이 오지 않는다며 뒤척이고 있었고 아직 귀가하지 않은 남편에게 전화를 해볼까 생각하고 있던 참이다.
수요일 밤을 지나 12시가 돼갈 때쯤, 회식이 있다던 남편은 몇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만취 상태가 되어 전화가 왔다.

“나 너무 힘들어. 회사 그만 다닐까. 여기 일산역인데 집에 못 가겠어. 데리러 와.”
그리고 낯선 목소리 “지금 이 분이 혼자 갈 상황이 아니니 데리러 오세요. 제가 데리고 있을게요.”
상대방도 만취상태인 듯한데...

지나던 행인이 남편을 발견해 전화를 준 것이다.
전화 넘어 들리는 목소리에 올라오던 화는 이내 걱정으로 바뀐다.
위치도 모르고 상황도 모르고 전화 끊지 말고 위치를 물어보며 찾아간 곳에 남편이 있다.
몸도 정신도 다 놓는 것 같은 얼굴에 걱정이 앞선다. 몸도 못 가누는 그와 실랑이를 하다 겨우 그를 차에 태우고 오는 길, 집으로 향해 달리는 차 뒷좌석에서 말한다.
“여보, 미안해, 사랑해.”
잠든 듯 입속에 도는 말을 꺼내며 중얼거린다.
그리고 “나 힘들어”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

‘그동안 많이 참아왔구나.’
올초부터 예상치 못했던 상사의 동료들의 인사이동, 업무분장에 불편한 마음을 자주 보이곤 했다. 늘 피곤하다는 말을 했지만 몸인지 마음인지 이렇게 토해낸 적이 없었던 그를 보며 나한테 내색하지 않으려 혼자 힘들어했구나 싶어 마음이 더 좋지 않았다.
 
일찍 귀가해 일하는 방을 들여다보며 말 거는 그를 귀찮아하기도 하고 가끔은 바쁘니 대충 대응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드라마 한다고 일하는 나를 밖으로 불러 낼 때 일하고 있다고 짜증스러운 대답을 했던 나를 돌아본다. 그러곤 그는 내가 바빠 보이는 날엔 가끔 일찍 퇴근해 조용히 혼자 늦게까지 집 근처 헬스장엘 다녀오기도 했다.
힘들게 일하고 돌아온 그를 나는 내 방식으로 또 밀어냈구나.

그리고 나랑 그저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것뿐이데. 그때 힘든 일들 그저 들어줄 수 있었을 텐데... 생각이 머리에 맴돌았다.
‘내가 더 미안해.’

집에 겨우 발을 들여놓은 그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조금 전 몸이 아프고 잠이 오지 않는다며 언제 오냐고 전화하던 아이는 엄마, 아빠를 기다리다 전화기를 안고 자고 있다.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고 열이 있나 살피고 거실에 잠든 남편의 얼굴을 바라본다.
‘말을 하지. 내가 곁을 못준 거 같아 미안해.’
그리고 조금 전 불안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나에게 지금 이 사람 없다면 나는 어떡하지?’
낯선 사람의 목소리에 처음 느꼈던 불안감, 나쁜 일이 생길까 무서웠던 그날 밤, 아무 일 없이 자리로 돌아온 그를 보며 나를 우리를 돌아보는 밤이었다.

새벽 2시 반, 3시간 후면 일어나야 한다.
내일 하루 종일 강의를 해야 하는데 걱정이 된다.
‘체력이 버텨줄 거야. 그만 자야지.’
생각들이 넘나드는 밤이 지나고 맞은 새벽, 아침 6시 아침을 차려놓고 남편을 깨웠다.
“나 지금 나가. 나갈 때 아들 깨워놓고 가야 해.
저녁에 봐.”
“어, 그래.”
그리곤 아무 말 없이 나는 하루를 시작했다.

저녁에 만난 그는 멋쩍은 얼굴로 웃는다.
‘슬프게, 그렇게 웃지 마.’  속으로 생각한다.
“안 그러던 사람이 왜 그랬어.”
“모르겠어. 거기 왜 혼자 있었는지. 앞으로 조심할게.”
아이가 아빠에게 묻는다.
“아빠, 어제 얼마나 술을 드셔서 엄마가 데리러 간 거예요?”
당황한 그가 또 웃는다.
그 날 새로운 강의가 있던 날 새로운 상황을 끌어가느라 평소보다 두배 힘든 날이었다.
다리가 아프다며 누운 나의 아픈 발을 주물러 주는 그를 보다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초저녁부터 죽은 듯 잠을 자던 나를 그가 나를 깨운다.
“씻고 자야지 여보.”
“지금 몇 시야? 새벽 2시”
겨우 일어나 씻고 나와보니 그도 잠이 들어있다.
잠든 얼굴을 쓰다듬어 본다.
“수고가 많아, 여보.”
잠든 줄 알았던 그가 내 손을 잡아주고는 다시 잠든다. 그를 보며 나도 잠들었다.
한주의 마지막 날이다.
주말은 그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주어야겠다. 냉장고에 넣어둔 와인, 그가 좋아하는 안주도 조금 만들어 봐야겠다.
그저 들어주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사람, 늘 옆에 있어 모르고 지나치며 살아가는 것 같다.
‘나의 일상, 옆에 있는 사람들, 그 소중함을 잊지 않고 살자.’

그리고 이렇게 매일이 똑같지 않으니 살아갈 힘도 즐거움도 행복도 있는 것이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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