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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희 Jun 13. 2019

후회할 줄 알면서

워킹맘 다이어리

오전 시간 3시간 미팅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오후, 아이의 병원 스케줄을 챙겨 아이랑 병원을 다녀왔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몸은 피곤하지만 조금 걷고 싶은 마음에 동네를 한 바퀴 걷자고  아이에게 말했다.

아이는 흔쾌히 엄마랑 걷기를 원했다.

아직 생기지도 않은 사랑니 이야기, 학교에서 본 수학시험에 대한 이야기, 수학 시험을 앞뒤로 하나만 틀렸다고 자랑하듯 말하는 아이의 말에 잠시 안도하기도 하며, 아이와의 대화로 잠시 힐링이 되는 듯했다.

동네를 돌아 아파트로 들어오는  길목이었다.

모 학습지 센터장인 듯한 분이 아이를 붙잡아 세운다.


"친구, 몇 학년이야? 여기 테스트받고 선물 받아가."

"우와, 뭐 주는데요?..."


누굴 닮았는지  아이는 공짜로 얻는 선물, 이벤트에 목숨을 건다.

'아, 오늘도...'

학습지 선생님의 유혹에 딱 넘어갈 듯한 기세로 기꺼이 테스트지를 꺼내놓고 테스트 문제를 푼단다.

그저 오늘 하루가 피곤한 나는 아이와 걸으며 이야기 나누며 쉬고 싶었는데, 약간의 스트레스가 감지되었다.

그곳에서 빠져나와야겠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나는 돌아가자고 했지만 아이는 막무가내였다.

그럼 엄마는 할 일이 있으니 끝나고 돌아오라며 말하고 돌아섰다.

동네에서 그렇게 아이들 호객하는 선생님들이 부담스럽기도 했고, 오전 미팅 후 아이 병원 스케줄을 끝내고 나니 벌써 4시가 넘어가는 시간 그저 스팸처럼 느껴지는  말과 행동들에 내 에너지를 쓰는 것이  소모적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할 일이 머리를 스치기도 하고 갑자기 피곤한 기분이 들어  그곳을 벗어나고만 싶었다.

아이에게 바로 돌아오라며 당부하고는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간단한 저녁거리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가 올 시간이 지났는데 돌아오지 않는다.

전화를 하니  아니나 다를까 걱정했던 아이의 말이 어어진다.


" 엄마, 저 다음 주부터 여기 학원 갈게요."

" 어딜 간다고? 수학학원?"

" 네~ 그래서 등록해야 돼요."

" 준아, 일단 집으로 와. 엄마랑 학원 스케줄 보고 결정하자."


아이에게 일단 집으로 오라고 하고는 얼마 전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해 냈다.

"이제 집에서 연산하고, 학원에서 서술형 수학 문제집을 좀 풀러 다녀야겠다."

지금 다니는 학원 하나를 그만두어야 나오는 스케줄이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와 대화를 하고 결정을 조금 미루기로 했다.

잠시 후 핸드폰에 못 보던 전화번호가 찍혔다.

그 학습지 선생님의 전화, 아이가 엄마 번호를 준 모양이다. 15분 만에 아이의 성향을 다 파악한 마냥 이야기하며 30분 넘게 소모적인 통화를 하고 겨우 전화를 끊었다.

일을 하려는 찰나 다니고 있는 영어 학원 선생님의 상담 전화가 또 울린다.

또 피곤한 대화가 이어진다.  

'방학 동안 특별 케어 시스템이.. 블라블라~~~'

기계적으로 대답하는 내가 느껴진다.  


'아, 너, 정말.....'

'아이에게 이 정도의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 거야?...'


나의 모습을 자책하지만 나는 그저 오늘따라 이 피곤한 상황을 더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렇게 저녁 시간이  지나고 잠잘 시간을 훌쩍 지나 정리할 일을 두고 보니 새벽 2시가 되었다.

잠자기 늦은 시간, 오늘 낮에 학교 안내 앱 알람 문구가 기억났다.  

'지금 보기엔..... '

아침에 확인하자 생각하고 잠이 들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을 차리고 남편을 배웅하고 어제 보았던 학교 알림 앱 내용이 기억나 아이 가방을 뒤적여 본다.

'시험지 확인하고 사인받아오라는 문구였던 것 같은데...'

낮에 아이가 두런두런 했던 이야기가 기억이 나 아이의 가방 속에서 시험지를 찾아본다.


'오, 마이갓.'

세 장의 시험지, 동그라미를 찾아보기 힘들다.

'아, 어제 말한 두 개 틀린 시험지 이거고, 그거 말고 다른 건...'


매일 5년간 한 학습지의 수학 연산 활동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건지, 모자란 잠으로 또 예민해서인지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자는 아이를 깨우고 싶지 않아 한숨만 쉴 찰나 아이가 오늘따라 일찍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아이를 보니 마음이 단호해진다.


"너, 이리 앉아봐."

눈도 떨어지지 않은 아이를 놓고 시험지를 내밀었다.

자세히 보니 한 줄씩 곱셈 후 덧셈을 밀려 쓰거나 답은 맞았는데 날려써서 알아보기 힘든 글씨여서 다 틀린 것으로 체크된 것을  발견했다. 내가  더 크게 화가 난 이유가 되었다.


" 이거 왜 이렇게 시험을 봤어?"

" 아, 이거 왜 틀렸지..."

"너 , 점수보다 다 밀려 쓰고, 대충 써서 맞는 거 틀리고, 몰라서 틀린 거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이야."

단호한 나의 말에 아이는 머뭇거린다.

"이런 식으로 계속하면 네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돼.  대충대충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나는 점점 더 격해지는 감정과 말로 아이를 대하고 있음을 느꼈다.

멈춰지지 않는 감정이  아침 공기를 메우고 있다.


가끔 영어학원에서 쓰게 하는 북리포트에 쓴 글이  뭔지 알아보지 못하게 써놓거나 알림장 글을 못 알아보게 써올 때마다 잔소리처럼 혼을 냈었다.

오늘은 그렇게 흘려보낸 게 잘못되었다는 확신에 찬 마음으로  아이를 심하게 혼내고 있는 것이다.

화내는 나를 느끼며  마음속으로 난  또 알고 있었다.

'아, 또 후회할 거 알면서...'


아침부터 밥상머리에서 과외 모드 30분 후를 보낸 후  아이에게 밥을 차려 놓을 테니  씻고 오라고 했다.

화장실로 가는 아이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본다. 난 그저 모른 척 밥을 차린다.

자꾸 한숨이 나오는 건 화 때문인지 나의 말 때문인지 피곤함  때문인지....

아이가 차린 밥을 먹고 옷을 갈아입으러 방으로  들어갔다.

'학교 가는 아침인데 이렇게 보내면 안 되지, 내가 좀 심했던 것 같다.'

생각하며 혼냈지만 이야기 들어주고 그래도 풀어줘야겠다 싶어 방문을 열었다.


충혈된 두 눈이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눈물 한 방울, 두 방울, 뚝뚝 떨어지는 눈물에 마음이 내려앉는다.


'아, 내가 너무 했구나.'

"준아, 왜 그렇게 울어. 엄마가 혼낸 건...."

"엄마, 엄마가 내 꿈을 못 이룬다고 해서 슬퍼요."

아이는 서럽게 눈물을 터트렸다.

"아니야. 그렇게 말한 게 아니라 이 습관을 못 버리면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을  힘들다는 이야기였어. 엄마가 계속 이야기했는데, 준이가 깊게 생각 안 하는 거 같아서, 지금  못 고치면 안 될 거 같아서 엄마가 여러 번 이야기한 거야. 지금부터 잘 고치면 할 수 있어. 걱정하지 마."

주절주절 변경 같은 말로 아이를 달래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아이의 꿈은 고생물학자이다.

다섯 살 때부터 줄곳 같은 꿈을 이야기한다.

그 꿈을 위해서 시작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일러주며 영어도 수학도 해야 할 일이라고, 먼 영어학원도 매일 하는 수학 학습지도하게 했다.

나의 욕심이 아이의 꿈을 위해 다그치는 일이 되는 것 같아 가끔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지금의 경쟁 속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 그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기를 바라며 남들이 보내는  공부를 또 학원을 보내고  있다.  진짜 아이가 원하는 일인지, 아니면 내가 시켜야겠다는 의지 때문이었는지  아이가 학원을 가기 싫어할 때나, 피곤해할 때마다 여전히 내 판단도 갈팡질팡 한다.


지금까지 아이의 꿈이  단지 공룡을 좋아하고 화석을 발굴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더 깊게 아이의 마음속에 그 꿈이 자리 잡혀 있었구나 싶어 서럽게 우는 아이의 마음에 내가 상처를 준 것 같아 너무 후회가 되었다.


"못하는 거 아니야. 지금부터 차근차근 하나씩 고쳐보자. 알았지? 응"

" 네, 흑, 네, 흐엉~~..."

"그만 울고"

"안 울고 싶은데 자꾸 이래요."


울음이 그치기도 전에  문을 열고 나서는  아이를 안아주고 꼭 안아주고 학교로 보냈다.

"엄마가 조금 심하게 혼냈지?"

"학교 마치고 일찍 와. 엄마가 너 좋아하는 간식 해 놓을게."

"네에~. 훌쩍~"

아이를 보내고 생각하는 아침이다.


'또 피곤해서 예민해졌어. 난 이대로 가도 되는 건지, 이렇게 화만많은 엄마가  되는 건지...'

'네가 돌아오면 무엇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일을 정리하고 커피를 한잔 내리며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그리고 오후가 되어 아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만들고 있다.

엄마는 늘 이렇게 후회할 줄 알면서 화를 내고, 또 사과를 청한다.

예상처럼 또  반복되는 일상이겠지만 나는 너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내 마음을 다하고 싶다.

오늘도 또 마음으로 이야기하며 나를 다독거려본다.


'괜찮아 또 일상이야. 그러면서  나도 너도 자라는 거야.

또  후회하고 다독이며 반복되겠지만 그게 모두 살아가는 일이고 계속 나아가는 이유가  되는 것이겠지.'


후회할 줄 알면서 또 반복하고 돌아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가는 것이  우리  일상이다.

너에게도 너의 시간이 필요하듯, 나에게도 나의 시간이 필요하다.

살면서  조금 더  알아 가는 것 같다.

조금은 지칠 때도 있지만 부딪치고 다독이며  우리를 위해  살아가는 그 반복되는  일상이 그저 소중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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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다이어리 #최선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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