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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희 Jul 11. 2019

네 번째 여름

워킹맘 다이어리

벌써 5년 전 가을 추석 명절을 앞두고 마음이 분주했다.

그때는 서울의 모 기관에서 전문직으로 근무할 때였고, 지방으로 내려가는 일정이라 아이를 봐주시던 엄마도 나도 스케줄 정리를 하고 울산으로 향했다.

추석에 방문한 시댁은 여느 때와 다른 분위기였다.

어딘가 불편해 보이시는 아버님의 상태를 살피며 명절을 보내고, 병원을 바로 다녀오시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리고 추석 일정을 끝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다음 날 ,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아버님이 지금 서울로 오신다는데..."

말을 잇지 못하는 남편, 아버님의 병명은  췌장암이었다.

'암'

할머니의 젊은 날의 병명이었고, 할아버지도 젊었던 고모와도 이른 이별해야 했던  병명이다.

두려운 이름이기도 하고 또 낯설지 않은 이름이었다.


그 해 가을이 시작되었다.

아이던 봐주시던 엄마가 계시는 우리 집은 부모님이 계시기가 힘든 상황이다.

자연스레 나는 직장을 그만 둘 준비를 하게 되었고, 긴 시간 이 병과 싸워야 할 것 같은 예감을 했다.

오랜 직장 생활을 하며 나와 함께 살던 엄마는 내려가시는 것으로 나는 직장생활을 그만두는 쪽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아이가 곧 1학년이 될 시점이었고, 나는 일을 그만두고 집안을 정리했다.

부모님이 지내실 방을 위해 이사를 했고,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준비하고, 그리고 나에 대해 막연히 생각했다.

모든 것을 다 충족할만한 일을 생각하며 말이다.


아버님은 우리 집 근처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셨다.

한 달여간 입원하시며 수술과 치료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방에서 치료를 병행하시며 그 후 두세 달에 한번 병원에 다니러 오신다.

매해 여름,  안 좋은 소식을 받으며 또 수술과 치료를 병행하며 재수술 한번과 항암, 양성자치료 해마다 다른 방법과 방식으로 이 병과 싸워나가고 계신다.

오셨다 가시는 날이면 늘 내게 말씀하신다.

"큰 아기한테 아버지가 아파서 미안하구나. 일하고 아이 챙기고 나도 챙겨야 해서 네가 힘들겠다."

미안한 기색을 하시는 부모님을 뵈면 늘 마음이 좋지 않다.


네 번째 여름, 올해도 어김없이 나쁜 소식이다.

어떤 방법으로든  또 이 여름을 이겨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 힘든 싸움의 시작일 것이다.

동시에 나는 나를 챙기는 시간이 필요하다.

여기저기 아픈 구석이 눈에 띄게 보인다. 스트레스와 일과 삶을 공유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일과 가정 사이에 늘 내가 감당해야 할 일들이 눈에 보이는 시기,  또 당분간 더 힘든 시간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있다.

무엇하나 놓고 싶지 않은 날들의 연속일 것이고,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 위로,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들이 기다린다.

또 가끔 많은 것들에게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내가 행복한 길이 모두를 행복하게 한다는 생각을 한다.

짬짬이 생기는 시간은 나를 위해 채울 것이고 양쪽을 잘 저울질하며 나는 또 기준을 지키며 나아가야 한다.


며느리로 엄마로 일하는 여성으로 살아가는 길,

일과 가정 사이에 서있어야 하는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 글은 어느 정도의  나를 위한 위로이기도 하고 앞으로 여정을 위한  다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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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 #엄마 #며느리 #일과삶 #일하는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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