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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오브피스 Feb 06. 2022

전자계약의 치명적 약점 한 가지

새 직장으로 옮겼으니 새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모든 절차는 전자계약으로 이루어졌다. 메일에 도착한 서명 링크를 타고 들어가니 어디에 서명을 해야 하는지 명확히 표시되어 있었고, 그곳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서명하면 끝이었다. 서명은 마우스로 그려서 끝냈다. 아주 간편하고 마음에 들었다.


국내 전자계약 서비스인 모두싸인에서 발간한 리포트에 따르면, 전자계약을 진행해본 직장인의 비율은 약 40% 정도 된다고 한다. 스마트폰 지문 인증 기능의 편리함과 코로나가 앞당긴 비대면 시대의 결합으로 보험 가입, 프리랜서 계약 등 전자계약에 대한 사례가 일상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40%면 일상에서의 체감과 얼추 비슷한 숫자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계약이 아날로그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며칠 전 부동산에 들러 집주인과 전세계약서를 작성했는데, 이것은 옛날과 다름없는 종이 계약으로 이루어졌다. 혹시 내가 거래한 부동산만 아날로그 형태를 고집하는 것일까 싶다가도, 정부가 구축한 전자 거래 시스템의 활용률이 3% 미만이라는 기사를 보면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전자계약을 진행해본 직장인 비율'이 40%인 것은 언뜻 보면 높아 보이지만, 나는 반대로 왜 아직까지 40%에 머물러 있는지 의문이 든다. 종이 계약보다 훨씬 간편할뿐더러, 위조하기도 힘들고 분실이나 파손에 대한 위험도 적다. 서명한 날짜가 컴퓨터 서버 시간을 기준으로 기록되어 날짜를 '가라로 작성'하기 힘들며 계약에 대한 고유 ID가 부여되어 언제 어디서 어떤 기기를 통해 서명했는지까지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전자계약이 가진 치명적 약점이 있으니 바로 느낌적 느낌의 부재다. 계약서 작성은 법적인 책임도 가져간다는 사실을 명시하는 문서이기 때문에 신뢰감의 무게를 무시하기 힘들다. 그리고 디지털로 서명하는 행위는 아직까지 그 무게감을 충분히 주지 못하는 듯하다. 또, 계약이라는 것이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상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살게 되어 '하던 대로 하자'라는 관성도 강하게 남아있을 것이라 추측한다.


우리 모두는 이미 전자계약 행위를 일상적으로 하고 있다. 매장에서 카드로 결제할 때, 서비스 회원 가입을 할 때, 은행 계좌를 만들 때 등 알게 모르게 전자로 서명을 하고 있다. 그러니 단순히 계약서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해서 전자서명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물론 상대방이 디지털 기기가 없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나는 모든 계약이 디지털로 이루어졌으면 한다. 이제는 그쪽이 더 안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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