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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오브피스 Apr 30. 2023

채팅창은 현실이 아니다 (경험담)


3월 말~4월 초 나는 일본에 있었다. 주목적은 Evo Japan 2023을 관람하는 것이었다. Evo Japan은 2018년부터 도쿄에서 개최되고 있는, 꽤 큰 규모의 격투게임 e스포츠 대회다. 관련 유튜버들이나 선수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즐거웠던 관람 후기를 주절주절 써보는 것도 좋겠지만, 그것보다 대회 현장에서 느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괴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내가 관람한 것은 대회 마지막 날. 8강부터 시작해 결승까지 치르는 날이었다. 대회 하이라이트인만큼 무대세팅도 근사했고, 8강까지 올라온 선수 한 명 한 명에 대한 소개도 자세하게 이루어졌다.


온/오프의 괴리를 느낀 것은 경기가 진행되면서부터다. 거의 모든 e스포츠 대회는 유튜브를 통해 라이브 방송을 한다. 나도 자주 보곤 하는데, 채팅창만큼은 끄고 본다. 욕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채팅 창]

- OO선수 X나 못하네
- ㅂㅅ이냐고...
- 졸리다
- 저걸 못막아? 선수 왜하냐
- 화이팅
- 결국 지네 ㄲㄲ


Evo 대회 라이브 채팅창에도 (당연하다는 듯이) 욕설이 많았다. A 선수가 패배하면 A에 대한 욕설이, B 선수가 패배하면 B에 대한 욕설이 올라왔다. 간혹 승리한 선수에 대한 응원이 있긴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이 늘 그렇듯이 욕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가끔 '배고파~' 같은 의미 없는 채팅도 보였다.


채팅창은 '다 같이 모여서 보고 있는 듯한 북적임'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러나 내용물이 썩어있을 때가 많아, '스포츠 경기를 불쾌한 기분으로 본다'라는 이상한 상태가 돼버리곤 한다.


오프라인은 정반대였다.


가장 큰 차이점은 박수 소리다. 선수가 무대로 입장할 때 사람들은 박수를 친다. 응원하는 선수에게뿐만 아니라, 그냥 분위기에 맞춰 박수를 치는 사람도 많다. 각자가 속으로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들 박수를 친다. 그리고 내 눈에 보이는 것은 (게이머 특유의) 쑥스러운 자세로 등장하는 선수와 박수 치는 관람객들뿐이다.


대전이 시작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 옆에 앉은 사람은 누구를 응원하는지 매우 알기 쉬운 사람이었다. '랑추(Rangchu)'라는 선수가 이길 때마다 "우오오~!"라고 외치며 주먹을 불끈 쥐었기 때문이다. 그 선수가 불리해지면 "아..."하고 안타까워하면서도, 역전할 때는 다시 불타올랐다.


랑추 선수는 결국 패배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패배한 선수에게도 박수를 쳐줬다. 내 옆사람뿐만 아니라 모두가 '수고했어'라는 느낌으로 박수를 쳤다. 온라인에 익숙해진 탓인지, 그 훈훈함이 어색했다.


물론 속으로 'X나 못하네'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내 옆사람도 속으로는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에게 쌍욕을 날리고 싶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눈에는 박수 치는 모습만 보였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긴 선수를 축하해 주고, 진 선수도 응원해 주는 따뜻함이 전부였다. '결국 지네 ㅉㅉ' 같은 코멘트는 내 귀에 들리지 않는다. 아쉬워한들 "아..." 정도에서 끝난다.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봤으면 그런 코멘트가 보였을 테지만, 현장에서는 박수와 성원만 가득했다. 이것은 물리적으로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충격이었다.


"댓글 창이랑 현실은 달라"라는 말을 종종 듣긴 했지만, 이것을 몸으로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처음이 아니었다면 그동안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어쩜 이리 다를 수 있을까. 둘 다 '격투게임 팬'이라는 동일한 집단이지 않나? 같은 집단으로 묶을 수 있겠지만, 또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이상한 상황.


현장이 관람객 한 명 한 명의 속마음을 문자로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내가 그들의 속마음을 모두 알 필요는 없다진짜 속마음인지도 의문이고. 반대로 즐겁고 매너 있게 관람하는 모습은 우리 모두가 돈과 시간을 써가면서까지 경험하고 싶은 경험을 만들어낸다.


나는 앞으로도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채팅창은 꺼놓으려고 한다. 채팅창은 현실이 아닌 주제에 나의 현실에 영향을 준다. 채팅창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현실이겠지만, 나는 아니라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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