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맨오브피스 Nov 26. 2023

<가짜 노동> 바쁜 척은 그만두자

최근 부산 출장 중 이동하면서 틈틈이 읽은 책이 하나 있다. 제목은 <가짜 노동>. 다음은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이다.


근무시간 내 지루함은, 스스로가 쓸모없다고 느끼는 실존적 고통에서 수치심으로 전환된다. 가짜 노동은 개인의 도덕성과 자존감에 상처를 입힌다.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될 일인데, 월급이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붙잡고 있는 것은 왜 위험할까. 어차피 채택되지도 않을 기획안을 굳이 써서 제출하는, 빈 공간이 허하다는 이유만으로 장표를 채워나가는 일은 왜 해서는 안 될까. 그것은 바로 '스스로가 쓸모없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확인하게 되니까'라는 이야기였다.


나 또한 살면서 가짜 노동을 많이 했다. 나이를 먹어가며 진짜 일에만 집중하려 애를 써왔지만, 지금도 100% 떨쳐냈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나는 일하고 있다'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업무를 부풀린 경험이 있다. 베를린에서 일할 때는 이런 종류의 일을 '불쉿워크(bullshit work)'라고 불렀다. "오전에는 생산성 장난 아니었는데, 오후에는 불쉿워크만 해버렸어" 같은 대화를 동료들과 주고받은 기억이 난다.


가짜 노동을 단칼에 없애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이 가짜 노동을 그만두면 바빠 보이지 않게 되고, 그로 인해 A를 무능한 사람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실제로 무능한지와는 별개다. 주변인들의 인지는 꽤나 영향력이 커서 완전히 무시하기 힘들다. 이걸 잘 아는 A는 남는 시간을 가짜 노동으로 채워 넣는다. 그러면서 모두가 불행해진다. 모두가 한꺼번에 가짜 노동을 그만두지 않는 한 이 악순환을 끊어내기란 쉽지 않다.


책 <가짜 노동>에서 제시한 해결책 중 하나는, '자기애로 부풀어 오른 조직을 지적해야 한다'이다. 물론 이는 어려운 일이다. 어떤 용기 있는  직원이 "우리의 일하는 방식은 잘못됐어요!"라고 지적했다고 하자. 그때 다른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군요. 뭐가 문제인지 살펴봅시다"라고 할 확률보다, 용기 있는 직원을 몰아내고 지금까지의 방식을 고수할 확률이 더 높다. 일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고 인정하는 순간 지금까지의 행동을 부정하는 꼴이 되어버리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는 가짜 노동을 걷어내는 편이 더 이득이다. 바쁜 척으로 일자리를 지킬 수는 있을지언정, 매일매일 내 도덕성과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고 수치심을 느끼며 살고 싶지는 않으니까. 어릴 때 부모님이나 선생님으로부터 "공부할 땐 공부하고, 놀 땐 놀아야지!"라는 잔소리를 많이 들었다. 나는 그 잔소리 내용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그 맞는 말을 실천하자는, 지극히 단순하고 상식적인 이야기다.

작가의 이전글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게 하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