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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오브피스 Dec 17. 2023

남을 설득하는 건 왜 이렇게 힘들까?

살면서 상대방을 설득해야 할 일이 참 많다. 디지털 사회에서는 모든 게 컴퓨터처럼 착착 돌아갈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대화를 여러 번 반복해야 하고, 부딪힌 후 타협해야 하며,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 한다. 내가 처음 의도했던 이야기가 그대로 통과되는 경우는 잘 없다.


내 아이디어가 별로일 경우야 별로 이상할 것도 없다. 왜냐하면 별로니까. 하지만 내가 늘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명백히 좋은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마음을 바꾸지 않을 때'이다.


알뜰폰 관련 경험담을 하나 나누고 싶다. 나는 독일에서 약 5년 반 정도 일하다 2020년 1월에 귀국했다. 귀국 후 가장 먼저 한 것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휴대폰 요금제에 가입하기. 어떤 통신사를 쓸지 정해야 했는데, 그때 마침 알뜰폰이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다. KT/SKT/LG의 통신망을 빌려 쓰기에 통신 퀄리티는 동일하지만 가격은 파격적으로 저렴한, 내가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상품이었다.


고작 월 8,800 원으로 전화와 데이터를 넉넉히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요즘엔 더욱 저렴하다). 알뜰폰 요금제 가입 후 기쁜 마음을 품고 주위 친구들을 한 명씩 설득하기 시작했다. 통신비에 월 3~4만 원씩 쓸 이유가 없다고, 알뜰폰을 써도 통신 퀄리티는 동일하다고, 제대로 활용도 못하는 포인트나 할인 혜택을 위해 비싼 요금제에 머무를 필요가 없다며 다양한 이유를 늘어놓았다.


그러나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대부분은 "그런 게 있어? 대박이네!"라고 맞장구치면서도 정작 알뜰폰 요금제로 갈아타지 않았다. 설득된 친구의 비율은 겨우 10% 남짓. 당시의 나는 도대체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영화 <머니볼>에서 "... it's threatening the way that they do things."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들의 삶의 방식을 위협하는 거야" 정도로 의역할 수 있겠다. <머니볼>은 기존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하는 주인공이 활약하는 영화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방식을 (그저 새롭다는 이유만으로) 헐뜯는 사람들이 잔뜩 등장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지금의 방식에 변화를 준다는 것은 단순히 변하는 것뿐만 아니라, '지금까지의 방식은 어리석었다'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그것은 괴로운 작업이고, "귀찮아"라는 구실을 붙여 회피하는 편이 편하다. 상처받지 않는다. 그것이 알뜰폰으로 갈아탈 때든, 회사 전략을 바꿀 때든 똑같다. 나 또한 (별다른 근거도 없이) 회피하거나 고집부리는 행동을 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타인을 설득하는 것이 왜 그렇게 힘든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 기분이나 가치관과는 별개로) 그것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려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몸에 밴 습관과 고정관념이 이야기 속 새로움을 밀어내고 싶어 할 때, 이 충동을 조절해야 한다. 충동은 말 그대로 충동일 뿐이다. '충동이 지나가고 있구만'이라고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나는 아무것도 모름을 계속해서 상기해야 한다.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 스스로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표현해야 한다. 그래야만 내 삶이 일관적으로 풍요로워진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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