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CES와 MWC 행사 때였나, 새롭게 주목을 받은 하드웨어가 2개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각각 rabbit r1과 Humane Ai Pin이었는데, 흥미로운 디자인의 이면에서 나는 알 수 없는 거부감을 느꼈다. 소위 말하는 싸한 느낌?
rabbit r1은 AI 기능을 중심으로 한 포켓사이즈 기기로, 스스로를 '쓰는 법을 배우지 않아도 되는 컴퓨터'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냥 기계에 대고 요청사항을 말하면 AI가 알아서 다 해준다는 컨셉이다. '오늘의 날씨는 어때?' '집으로 가는 택시 잡아줘' '스테이크 요리를 위한 재료를 주문해 줘' 같은 말을 하면 나머지는 rabbit OS로 작동하는 AI가 처리해 준다.
문제는 우리의 삶이 생각보다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는다는데 있다. 스테이크 재료를 사는 것뿐만 아니라 레시피도 확인해야 하고, 가족들에게 스테이크 먹는 게 괜찮은지도 물어봐야 하고, 알레르기를 일으킬만한 재료를 사지 않는 것에도 주의해야 한다. 동시에 스테이크를 맛있게 굽는 방법을 유튜브에서 보고 싶을 수도 있다. 음성 입력 하나로 AI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는 건 어쩌면 생활의 모습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일 수도 있다.
Humane Ai Pin도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다. 옷핀처럼 가슴 부근에 부착하는 기기인데, 입력은 음성으로 해야 하며 출력은 음성과 프로젝터 화면으로 이루어진다. 프로젝터 화면은 손바닥을 벽 삼아 확인하면 된다. 그런데 나는 굳이 이런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재밌는 컨셉인 것은 맞으나 그토록 언론의 주목을 받을 만한 제품인지 의아하다.
아니나 다를까 1,800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 MKBHD는 자신의 리뷰 동영상에서 Humane Ai Pin에 대해 "지금까지 리뷰한 것 중에서 최악의 제품(The Worst Product I've Ever Reviewed)"이라고 혹평을 남겼다. 새로운 하드웨어 형태가 주는 기대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 같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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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스마트 기기들은 결코 저렴하지 않다(rabbit r1은 $200, Humane Ai Pin은 $700). 나는 새로운 하드웨어를 만드는 것에 전혀 반대하지 않는다.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마치 세상 모든 것을 뒤바꿔놓을 기기인양 마케팅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차라리 취미 제품으로 포지셔닝을 했다면 호기심에 하나 샀을지도 모른다.
새삼 스마트폰의 완성도에 감탄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