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등학교 때 건담 프라모델을 열심히 모았다. 그리고 졸업식날 한꺼번에 갖다버렸다.
당시 한 뼘 크기 정도의 프라모델이 1~2만 원 정도, 그보다 한 사이즈 큰 것은 4만 원대였다. 푹빠진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건담의 프라모델을 조립하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 하루종일 조립하느라 허리가 굳어 물리치료를 받은 기억도 있다. 반복적인 고등학교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어준 취미였다.
일본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런 취미를 좋아하는 나 자신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소위 말하는 인싸가 되고 싶었는데 그럴 자신감이 없었던 것 같다. 친구들과 사이는 좋았지만 그보다 집에서 애니메이션 보고 게임하고 프라모델 만드는 시간이 더 즐거웠다. 성격은 밝지만 자신감 없는 나에게 많은 위안을 주었다.
시간이 지나 고등학교 졸업식 날이 왔고,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한 뒤 집에 돌아왔다. 원하던 대학에도 붙었고, 더 이상 새벽같이 일어나 0교시 수업시간에 엎드려 잘 필요도 없어졌다. 잔잔한 해방감을 느꼈다. 그리고 20대부터는 완전히 새로운 내가 되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그 마음이 충동으로 이어져서일까, 나는 그동안 조립해온 콜렉션을 모두 큰 박스 안에 쓸어 담았다. 선반에 여러가지 포즈로 장식해놓은 프라모델과 피규어들을 한 곳에 모아 재활용 쓰레기로 버렸다.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누워있던 내 건담들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수년 간 모은 굿즈를 모두 내다버렸을 때 나는 뭔가의 상쾌함을 느꼈다. 당시에는 '애니메이션 좋아함=찌질함'이라는 공식이 알게 모르게 존재했는데, 프라모델과 함께 나의 찌질함도 함께 버려진 느낌이 들었다. 텅텅 빈 선반을 보니 속이 후련했다. 깊은 의미를 알진 못했지만 이 때부터 나는 물건을 없앨 때의 쾌감을 좇게 되었다.
나는 물건이 사람에게 위안을 준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물건, 추억이 담긴 물건을 보고 만지면 기분이 좋아진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문제는 그 물건들이 항상 거기 있다는 점이다. 계속 제자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함이 사라진다. 내가 관리해야할 존재로 바뀐다. 사람에 따라 관리하는 것이 기쁘고, 매일 보는 것이 행복일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물건이 내 곁에 없을 때 더 특별해진다고 느낀다. 샵에 전시되어 있는 프라모델은 하나의 작품으로서 감상하게 되지만, 방에 놓인 프라모델은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의 배경이 된다. 매일 눈에 들어오니 익숙해질수밖에. 그 때부터는 내가 이 프라모델을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프라모델을 사서 모으는 행위에 집착하게 되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된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식날 느꼈던 상쾌함을 쭉 유지하고 싶다. 그래서 추억이 담긴 물건도 잘 버린다(물론 추억은 소중하기에 사진으로 잘 남겨둔다). 사은품은 그냥 거절하거나 당근으로 나눔한다. 좋아하는 게임의 굿즈가 나오면 감상만 하고 사지는 않는다. 물건이 짐이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 이제는 버리는 것도 귀찮아져 물건을 사는 것도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소유하는 게 적을수록 내 마음이 가벼워진다는 걸 알아버렸다.
나는 풍부한 경험을 하며 살고 싶다. 물건이 내 정체성이 빚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