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나의 생떼가 통했다. 나는 독일 베를린 본사로 이전하게 되었다(정확히는 일하던 회사의 자매 회사로 들어갔다). 자매 회사는 모바일 마케팅이 아닌, 모바일 앱에 광고를 띄워주는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었다 (앱 개발사가 우리의 광고 솔루션을 탑재 => 유저들에게 광고 노출 => 개발사와 우리가 광고수익을 나눠갖는 형태).
5명 정도의 작은 팀이었다. 내가 맡은 일은 매출 분석 & 고객 응대로 이전 일과 비슷했다. 다만 이때부터 약간의 기술적인 업무가 추가되었다. 고객 응대 시 기술적인 부분까지도 커버가 되면 소통이 빨라지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이때 여자친구와 (현재의 아내) 결혼했다. 같이 살고 싶다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해외에서 일하게 된 기회를 계기로 급 프러포즈 => 혼인신고 (혼인신고를 해야 아내가 가족초청비자를 받을 수 있기 때문) => 같이 독일로 떠났다. 나를 믿고 독일행을 함께해준 아내에겐 지금도 고맙다.
업계에 본격적으로 자동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업무 내용도 그에 맞춰 기술적인 부분이 부각되었다. 이전 같이 엑셀로 보고서 만들고, 광고 시스템 설정하고, 이메일을 보내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날이 점점 줄어들었다. 간단한 보고서 정도야 시스템에 로그인하면 자동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광고 시스템 설정도 그 날 실적에 따라 자동으로 조정되었다. 그에 따라 고객사와 (적어도 실적에 관해서는) 이메일로 할 얘기가 점차 없어졌다.
대신 기술적인 내용으로 소통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어느새 나의 포지션도 '솔루션 엔지니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바뀌어있었다. 다만 어디까지나 '관리'가 주 업무여서, 제품 개발에 직접 참여할 권한은 없었다.
고객사 리스트가 점점 커지면서 회사 팀도 커졌다. 나름의 활약(?)을 인정받아 회사의 고객관리 총괄을 맡게 되었다. 직접 고객사의 기술 문의에 대응하거나 매출 분석을 하는 부분은 줄고, 조직 관리에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되었다. 팀을 이끌어간다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걸 피부로 느낀 시기.
총괄 일을 약 1년 즈음하니, 팀이 꽤 안정화되었다. 내가 굳이 관여하지 않아도 다들 알아서 일을 맡아 처리했다. 각 팀원들이 유능하기도 했고, 호흡도 잘 맞았고, (모바일 광고 업계가 급격히 성장하던 시기라) 눈에 보이는 기회도 많았다. 이제 나는 매달 유로로 꽂히는 회사의 월급을 받으며, 따뜻한 독일 노동법의 보호 아래, 1년에 20일 넘는 유급휴가를 쓰며 여유롭게 살 일만 남은 것이다. 하지만 막상 그렇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오니, 다른 것에 흥미가 갔다.
고객관리 총괄 자리를 내려놓았다. 원래 기술적인 일을 좋아하기도 했고, 회사의 제품을 더 가까이서 만지고 싶다는 마음이 합쳐져서 나는 프로덕트 매니저 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내 부서이동 프로그램이 따로 있진 않았다. 예전에 했던 것처럼 그냥 떼를 썼다. 내가 프덕매 경력이 없으니 대표와 프덕매팀의 모두가 불안해하긴 했지만, 입사할 때처럼 3개월 수습기간을 갖는 것을 조건으로 뉴비 프덕매가 되는 것을 허락받았다.
뭔가 셀프 강등(?) 느낌이라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연봉은 오히려 기존에 비해 약간 올랐고 무엇보다 제품의 속살을 직접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 기뻤다. "아~ 광고 정보는 JSON 형식으로 전달되는구나!!"라며 새로운 발견을 할 때마다 정말 즐거웠다.
지금의 포지션이다. 새로운 서비스 연동도 하고, 매출 관리도 하고, 개발자들과 함께 버그도 고치고, 기술 문서 작성도 하고, 사업팀 요구사항의 우선순위를 정하기도 하고, 제품의 불필요한 부분을 썰어내기도 하고 등등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 처음엔 다른 프덕매들과 비교해 기술적인 이해가 약해 위축되었다. 하지만 반대로 사업팀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제품이 문서상이 아닌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한 잔소리는 많이 할 수 있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베를린 사무실에서 다 같이 얼굴을 맞대며 일했는데, 지금은 한국에서 원격으로 일하고 있다. 혼자 원격으로 일하며 제품을 잘 관리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 다행히 개발팀이 여러 국가에 흩어져있어 의외로 잘 굴러가고 있다. 계속 잘 굴러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