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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오브피스 Nov 29. 2020

관광지와 증강현실

아내가 야외 액티비티를 하나 제안했다. 그 이름은 바로 '수원화성의 비밀'. 수원문화재단에서 기획한 스마트폰 추리게임이다. 수원화성의 주요 장소를 방문하면서 비밀을 풀어나가는 게임 형식의 투어다.


시작은 흥미진진했다. 앱을 다운받고 7,500원을 결제하면 투어가 시작된다. 시작 지점은 장안문 매표소. 매표소의 우편함에 들어있는 봉투를 꺼내 뜯으니 수원 화성의 지도가 나온다. 뒷면에는 비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각종 문자들이 어지럽게 흩어져있다. 추운 날씨였지만 어서 수원 화성의 비밀을 풀고 싶어 졌다.


게임은 나름의 스토리로 시작해 각종 미션을 준다. 미션을 해결하려면 수원 화성 여기저기에 흩어져있는 아이템과 힌트를 얻어야 한다. 여기서 증강현실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미션 중에 '장안문 천장에 있는 용 그림 스캔하기'가 있다. 그러면 장안문으로 가 카메라로 천장에 있는 용과 증강현실 앱에서 보여주는 샘플 이미지를 일치시키면 아이템이 나오는 방식이다. 이런 식으로 여러 랜드마크를 방문하여 카메라로 스캔해 아이템을 얻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수원 화성의 역사와 의미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하지만 왜 굳이 증강현실 기술을 도입한 투어를 기획한 것일까? 증강현실 기술은 걸림돌 투성이었다. 아내의 폰에서는 증강현실 모드가 실행될 때면 휴대폰이 강제로 꺼지기 일쑤였다. 내 휴대폰에서는 잘 작동했지만 배터리를 급속도로 잡아먹는 바람에 외장 배터리를 끼운 채로 걸어야 했다. 또, 그림은 스캔이 잘 되었지만 솟대 같이 평면이 아닌 물체는 스캔 인식이 엉망이었다(개발자도 이를 인식했는지 '건너뛰기' 기능이 있다). 봉투에서 꺼낸 지도를 스캔하려면 평평한 바닥에 지도를 펼친 채로 카메라를 가져대야 하는데, 바람 때문에 지도는 펄럭거렸고 손은 시렸다. 수원 화성을 편한 마음으로 관광하러 왔는데, 기술적으로 챙겨야 할 부분이 많아 신경 쓰였다.

굳이 증강현실이라 더 불편했다. 차라리 종이로 된 '수원화성 퀴즈' 책자를 파는 게 더 재밌지 않았을까 싶다. 기술은 만능이 아니다. 최신 기술일수록 섬세하고 비싸지기 때문에 조심히 도입해야 한다. 아마 '증강현실을 활용한 수원 투어!'라는 식으로 홍보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가 너무 엉터리여서 오히려 재밌게 느껴진 경험이 있는가? '수원화성의 비밀'이 딱 그랬다. 배터리가 나가고, 바람에 날아가는 지도를 주우러 다니고, 물체가 스캔이 안 될 때마다 아내와 둘이 낄낄대며 웃었다. 프로그램의 엉성함을 함께 비웃으면서 수원 나들이를 즐겼다. 추억 덕분에 다행히 돈이 아깝지는 않았다. 이렇게 글로 쓸 소재도 생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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