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일하고 있는 회사의 법인명이 바뀌면서 퇴직금 정산을 해야 했다. 나의 퇴직금을 송금해주는 주체는 하나은행이었고, 돈을 받으려면 하나은행이나 다른 금융사의 퇴직연금 계좌가 필요했다. 뭔가의 법적인 이유로 돈을 일반 입출금계좌로는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삼성증권 앱에 접속해 비대면으로 퇴직연금 계좌를 연 뒤 계좌정보를 회계 담당자에게 넘겼다.
물론 이렇게 간단하게 끝났다면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일단 1차로 회계사에서 메일이 왔다. 퇴직연금 계좌의 통장사본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비대면 계좌라 통장 같은 건 없는데... 검색해보니 계좌확인서로 대체 가능하다고 한다. 앱에서 계좌확인서를 검색해보니... PC에서만 다운로드 가능했다. 맥북을 열어 삼성증권에 로그인하려고 하니... 윈도우즈에서만 가능했다. 공인인증서와 씨름했던 악몽 같은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하는 수 없이 아내의 윈도우즈 컴퓨터에 보안 플러그인을 설치했다. 공인인증서를 복사해 로그인 후 계좌확인서를 다운 받았다.
2차로는 전화가 왔다. 계좌를 개설한 지점명과 해당 지점의 팩스번호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러니까 비대면 계좌라고. "지점명은 없고요, 팩스는 구시대의 유물이니 이메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라고 회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금융사들 간에 딱 정해진 프로세스가 있어 퇴직금을 옮기려면 반드시 지점명과 팩스번호가 있어야 했다.
삼성증권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밀려있어 1시간 정도 대기해야 한다는 안내 음성이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주식시장이 워낙 뜨거우니 고객센터도 뜨거운 걸까 싶었다. 그러나 반복되는 기계 목소리를 10분 이상 듣고 있으니 이내 성질이 났다. 나는 전화를 끊고 바로 검색에 들어갔다.
'비대면으로 퇴직연금 계좌를 개설한 경우 지점명과 팩스번호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공식 홈페이지에는 어떠한 안내도 찾을 수 없었다. 꼭 퇴직연금이 아니더라도 비대면 계좌 관련 안내 페이지가 있을 줄 알았지만 없었다. 그렇게 정처 없이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어떤 블로그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글쓴이도 긴 삽질 끝에 얻은 정보였다). 비대면 계좌는 일반적으로 고객의 주소와 가장 가까운 지점에서 관리한다는 내용이었다.
평소라면 삼성증권에 전화해 다시 한번 확인했겠지만, 이번에는 그냥 운에 맡기기로 했다. 지점 안내 페이지에 가서 집 주소와 가까운 지점을 검색해 회계사에게 관련 정보를 전달했다. 혹시 다른 지점이면 어떡하지 싶었지만 팩스 번호 틀렸다고 내 퇴직금이 날아갈 일은 없으니 그러려니 했다. 내 인내심을 길러주기 위한 트레이닝이라고 생각하고 느긋하게 입금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놈의 팩스가 현대사회에서 은퇴하는 날은 도대체 언제일까 싶었다. 도장 문화를 없애기 위해 전자서명 시스템을 도입했더니 결국 도장 찍기와 전자서명 둘 다 하게 됐다는 일본 회사 이야기가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