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탑이 서늘한 프.랑.스. 영화 같은 이유

가깝지만 간섭은 안하는 너와 나

by 마누아 브르통

100% 캐시미어 (100% cachemire)라는 2013년에 세상에 나온 프랑스 영화가 있다. 오늘 우연히 에펠탑 앞을 지나다 떠올랐다.


이 영화는 발레리 르메르시에가 감독이자 주인공으로 나온다. 발레리 르메르시에(알렉산드라 역)와 부부로 나오는 질 르루쉬(시릴 역), 이 두 사람 간의 관계의 거리가 나와 에펠탑의 거리와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늘 같은 곳에 있지만

가까운 곳에 있는 만큼

그렇게 자주 보진 않는 관계.


그렇지만 생각보다는 또 자주 보는 관계.

자주 본다고는 하지만, 볼 때마다 매번 무언가 달라진 점을 발견하며 “내가 이걸 몰랐다고?”라고 하며 그렇게 친하지는 않은 것 같은 관계.


서로 그렇게 친하지도 안 친하지도 않지만,

늘 함께하는 관계.

뜨겁지만 때론 얼음보다 차갑고 차갑지만 따뜻한 온기가 있는 관계.

그래서 멀어질 수 없는 관계.


하지만 간섭이란 건 없는 거리의 관계.


1.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요상한 거리


영화 주인공 부부 중,

여자는 패션 잡지 편집장인 알렉산드라,

남자는 갤러리스트 시릴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한 커플이고, 파리 7구 rue de bellechasse에 복층으로 아래층 120-130제곱미터 위층 60제곱미터가 넘는 집에 거주한다.


그 동네는 파리 부동산 중 가장 값이 나가는 동네이라 볼 수 있고, 그 정도 크기의 집이 관리까지 잘 되어있다면 부르는 게 값일 집에 거주하고 있다. (직접적으로 직관적으로 표현하고 싶지만 글이다 보니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기가 껄끄러워졌다.) 게다가 집의 가구나 소품 모두 미감적으로 현대적이면서 세련된, 미니멀리즘이자 모더니즘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무엇하나 부러울 것 없는 집, 직장, 그들과 함께하는 지인들까지, 전형적인 파리 부르주아의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남자의 어머니는 너무 말이 많다. 자신의 어머니에게 질린 남자 주인공은 어머니를 버거워하고 동생은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 바깔로레아(고등학교 졸업 대학능력시험 같은 것)도 통과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그 부부는 각자의 파트너가 있고, 바람을 피우고 있다. 당연히 서로 그런 사실을 모른다. 복잡하다고 할만한 요상한 가족 상황에 5살인지 7살인지 서로가 헷갈리는 러시아 아이를 입양한다.


입양도 그냥 한 것이 아니다. 순번을 지키지 않고 협회에 기부를 많이 해서 아이를 빨리 입양했다. 여자 주인공은 입양한 아이가 귀엽지 않다고 다른 아이와 바꾸고 싶어 한다.

하지만 바꾸는 것에 실패하고 결국 아이를 데려왔다. 평소에 아침 따윈 먹지 않기에 집에는 아이에게 줄 아침도 없고 아이를 키우라고 뽑은 누누(아이 돌봄이)는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한다고 했지만, 한마디도 못하는 거짓말쟁이에다가 아이를 학대하기까지 한다.


이런 일들이 벌어질 쯤에 여자 주인공 알렉산드라는 바람피우는 일을 더 이상 병행하지 못한다.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자 주인공 시릴은 바람피우는 일을 계속 병행한다. 그리고 아이를 가졌다는 정부에게 침대에서 말한다.

처음부터 분명히 말했지만 나는 알렉산드라를 떠날 생각이 없어. “

그렇다고 슬픈 일은 아니다. 그의 정부는 알렉산드라의 부하직원인데, 이미 자신의 파트너가 있음에도 시릴과 만나고 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새로운 벨기에 출신 파트너도 있다. 게다가 아이는 현재 파트너의 아이도 시릴의 아이도 아닌 루프트탑에서 디제이들과 벌인 격정의 파티에서 비롯된 것임이 나중에 밝혀진다.


2. 대혼란, 하지만 위로가 되기도 함께하기도 무엇인지도 모를 현실


어느 하나 정상인 사람이 없어 보인다. 더 정상이 아닌 건 이 모든 사람이 (바람의 상대와 그 상대의 상대까지) 알렉산드라와 시릴 부부의 아파트에 모여 연말 파티를 한다.


그전에 알렉산드라는 시릴에게 공문서 위조와 거짓말까지 해 가며 애를 러시아 고아원에 다시 보냈다가 다시 데려온다. 그리하여 결국 아이도 진정을 찾는다. 알렉산드라와 시릴은 그 둘이 낳은 어린 딸과 고아원에서 다시 데려온 아이와 함께 즐겁게 춤추며, 그 복잡한 사람들과 파티를 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마지막이다.


그리고 정말 더 이상한 것은, 영화가 끝나기 전에 입양한 아이에게 창문 밖으로 큰 유리컵을 던져 이웃에게 불만을 표하라 한다. 그것을 던져 깨자 아이에게 그 눈 오는 추운 날 내려가서 비닐봉지에 유리 조각을 또 도로 주워오라고 한다. 그러다 아이는 키를 하수구에 빠트리고 유리조각을 다 주워서 아주 위험하게 벽 타기를 하고 집에 올라온다.


2013년 개봉 당시 흥행에 완전히 실패했다. 영화 내용이 냉소적이고 비호감이라는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2026년 1월 넷플릭스 (프랑스 등 일부국가)에 공개된 직후 영화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유는 파리 부르주아들의 위선을 풍자하는 블랙코미디 요소에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며, 얼마나 이상한지 찾아보는 심리가 작용한 것 같기도 하다.


3. 프랑스 영화 프랑스 감정, 너와 나의 거리


많이 이상하다. 응 정말 이상하다. 누구 하나 이해가 안 된다. 하지만 묘해서 본다. 이미 주변에서 본 적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같다. 겉으로 꾸미기는 우아한 얼굴로 언어유희를 즐기는 듯 하지만, 그들만의 아주 못된 행동과 농담이 잘못된 것인지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 말이다. 현실에서 많이 본 장면을 영화에서 그대로 보고 있는 것 같다.


한 15년 전쯤이었을까? 영화의 주 무대가 된 파리 7구의 한 동네에서 일어난 일이다. 엘리베이터에 타려는데 들고있던 큰 박스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엘리베이터 문에 박스가 살짝, 아주 살짝 건들렸다. 이미 엘리베이터에 타 있던 신사가 나를 보며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몇 층 가시나요? 들고 있는 짐이 많으니 내가 버튼 눌러 줄게요. 아… 그런데 지금 보니 왜 엘리베이터가 자주 고장 나는지 아주 잘 알겠네요.”

뭐 이런 거.


아니면 늘씬한 몸매에 우아하게 차려입고 곱게 머리를 빗은 한 할머니가 머리를 찰랑이며 약국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앞사람에게 저리 가라고 한다. 자기가 줄이라고. 자기가 계산할 차례라고. 그래서 ‘한 줄 서기 한 거다.‘라고 누가 말했더니 더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또 다른 사람이 못 참겠는지 나서서 더 크게 소리 지르며, “당신 정신병자야? (Vous êtes une malade mentale?)라고 하며 꺼지랬더니 갑자기 미안하다고 말하며 꺼진다.

영화에서 입양한 아들의 파자마 가격으로 40유로를 달라고 전화 온 것에 (그렇게 심각한 일이 아닌데) 여자 주인공이 격분하여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욕까지 하다가 뒤에 듣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민망해하며 도망가는 장면처럼 말이다.


시릴은 그렇다. 바람은 피우고 있지만 아내는 사랑하고, 아내를 떠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아내와 늘 같이 있지만 같이 있지 않고 마음은 어딘가 멀리 배회한다.


알렉산드라는 남편과 같이 살고 있지만 남편이 무엇하는지 잘 모르고 음성 메시지를 두 개나 남겼다며 다시 전화를 하지만 밤늦게 들어올 때까지 특별히 찾아보지는 않는다.


그러다 입양한 아이를 남편에게 말도 없이 고아원에 몰래 보내고 속은 남편은 아이를 법원 결정으로 빼앗긴 줄 알고 여행을 제안한다. 그렇게 둘은 포지타노로 떠나 여행하는 중 딸아이를 갖게 된다.


그러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 갑자기 남자는 아이를 보러 떠난다. 다 어긋난다. 다 엉망이다. 그러다 아이가 있어야 할 곳에 아이가 없다는 것을 남자는 알게 된다.


책임지지 못할 일을 저지른 여자는 고아원에 도로 보냈다는 말은 절대로 못 한다. 상황 따위도 설명하기 싫어 약을 삼킨다. 비교적 적은 양의 약만 먹었기에, 죽을 만큼은 절대 아니었다. 아니, 의사의 말에 의하면 뱃속의 아이에게 영향도 안 갈 만큼만 삼켰단다. 여자는 깨어나서 남자 몰래 병원을 도망 나온다.


두 부부가 늘 대화하지만 뜻 없는 대화만 있었고 진정한 대화는 아니었다.

늘 시간을 같이 보냈지만 같이 보낸 것이라기에 서로를 너무 모른다.

이 영화가 나름의 해피엔딩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 또한 이해의 범주에서는 조금 멀리 있는 듯하다.


프랑스 영화처럼 프랑스 사람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이의 서늘함, 가깝지만 가깝지 않고, 서로 잘 알지만 잘 모르며, 서로 각자의 감정은 중요하지만 간섭은 하지 않는 그들만의 독특한 관계의 거리가 이 영화에서 느껴졌다.


그 관계의 거리가 오늘 다시 본, 이전에도 아주 많이 본 에펠탑, 바로 너와 나 사이에도 존재한다.


오늘 찍은 에펠탑의 너무도 뾰족하고 긴 막대 꼭대기. 그렇게 많이 보았어도 이제껏 제대로 꼭대기를 한 번도 못 본 것 같아 어색했다.


이 각도에선 목이 아프고,

저 거리에선 너무 작다.


파리 어디를 가도 찾을 수 있는 흔적

같이 한다는 느낌은 늘 있지만,

나와 상관없는 것 같기도 했다가

서로 또 알아보는 듯하기도 하다.


원래 타고나길 차가운 재질로 타고난 에펠은

가깝지만 가깝지 않은 거리에서

친하지만 친하지 않은 관계로

함께하지만 함께하지 않고,


뜨거워지면 철재가 달아올라

상관없는 듯 상관있고

따로 하는 듯 같이 있고

차갑지만 뜨겁다.


언제나 그 자리에 서서 바라보고 있지만,

결정적으로 간섭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