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질 이야기 1. 가브리엘, 내 상사가 없을 때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일
가브리엘이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다.
아파서 며칠째 나오지 않고 있다. 그리고 내 이메일에 대답도 잘하지 않는다.
5월 말에 추운 날씨라 모두가 감기가 걸려 콜록 거리는 와중에 가브리엘도 없다니 일이 진전이 안된다.
우리 팀 담당 비서 조안나도 출근하지 않아서 행정처리도 쉽지 않다.
‘아프니 출근하기가 어렵겠지. 그런데 이 회의는 어떻게 하지?’
상사가 아플 때 그 사람의 건강이 가장 우선되어야겠지만, 그 사람의 빈자리로 인해 결정할 수 없는 일 들이 늘어난다. 그렇게 되면 모든 독촉과 비난이 나에게로 떨어진다. 전화기를 들었다 놓았다가 여러 번 반복하다가 벌떡 일어났다.
'아 모르겠다.'
답답한 마음에 물이라도 들이키고 싶어 물을 찾으러 복도를 나서는데 누군가 말을 건다.
“바질 하이, 코퍼레이트(corporate, 기업) 팀 준비 됐어? 리스트 나가야 되는데 아직 답이 없던데?”
사모펀드(private equity) 팀의 아나이스이다. 30대 중반의 비교적 매우 이른 나이에 파트너가 된 아나이스. 승마가 취미라 수요일 오전마다 승마 후에 출근한다. 이런 아나이스를 아니꼽게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나이스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이다.
“응 아나이스 안녕, 그게 가브리엘 컨펌이 아직 없어서. 이따 오후에 다시 확인하고 알려줄게.”
“이번 거래는 좀 긴급하게 진행될 거라서 뭐가 되었든 빨리 전달하는 게 중요해. 클라이언트가 대충 빨리 듀 딜(기업실사)을 하고 싶데.”
“대충 빨리는 뭐야?”
“그냥 형식상 하겠다는 거지. 큰 리스크만 알려달라 이거지. 그 회사 꼭 사고 싶어 하거든.”
“참네 지금이야 그렇게 말하지. 그런 게 아닌 거 알잖아.”
“알지. 그런데 답 안 하고 있는 것도 지금 거래에 좋을 거 하나도 없지.”
“알았어. 가브리엘한테 꼭 물어볼게.”
“가브리엘은 좀 괜찮아? 잠깐 병가인 거야?”
“나도 지금은 잘 몰라. 일단 이번 주는 출근 안 하는 것 같더라고.”
“그렇구나. 아 아프다는데 재촉하는 것도 좀 그래. 바질, 아니야 좀 놔둬도 괜찮을 것 같아. 어차피 노동팀에서 아직 답이 안 왔거든. 내가 거기랑 먼저 이야기할게. 이야기하는 동안 가브리엘이 연락 오면 나에게 알려줘. 부탁해”
“그래 그렇게 하자.”
우리 회사는 파트너와 어쏘(associate, 쥬니어와 시니어를 포함) 사이에 존댓말로 대화하지 않는다. 조금 자유로운 분위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동등한 포지션의 언어, 친근한 언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누군가를 함부로 한다거나 위계질서를 무시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어느새 회사에서 조용히 사라지곤 한다. 이것이 이 회사의 서로 존중에 대한 암묵적인 합의이자 질서인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그 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처벌이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환경 때문인지 반말로 대화하고 있을 때 오히려 더 조심스럽다. 서로 반말로 대화하지만, 친구처럼 말하는 것은 당연히 안된다.
게다가 나와 같은 레벨의 동료도 아닐 경우 특별히 조심스럽다. 내 상사와 같은 레벨의 다른 팀 상사, 즉 아나이스와 같은 사람과 이야기할 때 더욱이 그러하다.
아나이스가 가고 나니 더 고민된다.
‘가브리엘에게 전화를 해야 할까? 어떻게 하지?’
손가락으로 전화기 화면을 건드렸다 말았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통화 버튼까지 누르려다가 말았다. 그러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서는 전화기 통화목록에서 가브리엘 이름을 꾹 눌러 버렸다.
“바질, 안녕? 어떻게 하고 있어?”
“어어 가브리엘? 응 안녕. 우리는 잘하고 있어. 걱정하지 마. 그냥 오늘 회의를 미룰지 내가 혼자 해야 할지 궁금해서 연락했어. OO국가 클라이언트 화상미팅이니까. 그리고 네가 심혈을 기울이던 프로젝트잖아.”
“아, 그 회의? 해야지.”
“정말 괜찮겠어? 내가 준비는 마쳤어. 원한다면 회의할 내용 정리해서 이메일로 보내줄게. 그런데 많이 아픈 거면…”
“아니야, 지금은 괜찮아 바질. 걱정해 줘서 고마워. 어차피 화상인데 뭐. 5시 맞지?”
“응 맞아.”
“나 지금 밖인데 곧 집에 들어갈 거니깐 이메일 보내주고. 회의 링크는 그저께 받은 거 그대로지? 이따 연락합시다.”
“딸깍”
‘가브리엘이 많이 아프다고 들었는데.’
괜히 전화한 것일까 입술이 자꾸 마른다. 입술을 꼭 깨물고 침을 묻히며, 미리 써 놓았던 이메일을 다시 본다.
‘이걸로 될까? 가브리엘 필요한 게 이게 다 일까?’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가 놓았다.
“바질, 뭐 해?”
옆 사무실 얀이다.
전화기를 완전히 책상 위에 놓고 대답했다.
“아 가브리엘 이랑 잠시 전화했어.”
“그래? 가브리엘 괜찮데?”
눈을 동그랗게 뜬 얀이 사무실 문을 닫으며 사람들이 듣지 못하게 조용히 말한다.
“모르겠어. 그냥 오늘 오후에 회의 이야기만 잠시 했어.”
“네가 고생하네.”
“고생은 아닌데. 뭐랄까 불안해. 이거 다 내가 결정해도 되는 걸까? 자꾸 나한테 다들 재촉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네.”
“뭘 고민해 가브리엘한테 직접 물어봐.”
“응?”
“지금 상황을 그대로 이야기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봐.”
“그러기엔 몸도 안 좋을 텐데 내가 가브리엘을 힘들게 할까 봐.”
“가브리엘은 아무 생각 없을 수도 있어. 네 이야기 들으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할지도 몰라. 그리고 방금 전화도 했다면서. 네 이야기 듣고 싶으니까 전화를 받았지. 전화 안 받을 수도 있잖아.”
얀의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가?”
“그으러엄. 당연하지. 가브리엘을 너무 약하게 보지 말라고. 괜히 파트너가 되었겠어? 가브리엘이 스스로 판단할 기회를 주세요 바질씨.”
“아니 그러다가 괜히 나한테 뭐라 하면? 아픈데 연락했다고.”
“어라 가브리엘 아파서 걱정하는 게 아니었어?”
코로 피식 웃는다. 하지만 비웃는 웃음이 아닌 인자한 눈을 하고 말한다.
“아이 당연히 그건 그렇지. 그냥 아픈데 귀찮게 군다고 생각할까 봐 실제로 쉬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어휴 그건 가브리엘이 선택할 문제이지. 너는 물어만 보면 돼. 내가 보기에는 거기까지가 네 할 일인 것 같은데? 가브리엘 반응까지 네가 원하는 대로 얻기 원해? 아픈 가브리엘에게 정말 너무 많은 것을 원하는 것 아니야?”
“그런 건 아닌데. 아 나도 모르겠다. 너무 복잡하다. 너는 나보다 2년밖에 먼저 시작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다 심플하게 생각할 수 있어? 넌 정말 대단해.”
“바질, 내가 대단한 게 아니라 네가 생각이 너무 많아. 일도 많은데 생각까지 너무 많이 하지 마. 우리 일하느라 항상 시간이 없는데 그런 생각까지 해야 하면 할 일이 너어무우 많은 거야.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쉽게. 나는 그렇게 생각해. 가브리엘 없어서 그런지 전화 진짜 많이 오던데? 옆 방에 다 들리더라. 너 괜찮아?”
사무실 문을 닫고 무슨 이야길 하려나 했다. 며칠 전부터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재촉 전화를 다 알고 있었나 보다.
“괜찮은데 숨이 막히는 것 같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숨 막히지 마. 간단한 문제야. 가브리엘한테 물어봐.”
“이메일은 보냈는데 가브리엘이 다 대답하진 않더라고.”
“그럼 놔둬. 어차피 가브리엘이 결정할 일이잖아. 우선적인 것만 대답하는 것이겠지”
“아 그래도 우리 팀 일이고, 자꾸 나한테 물어보니까.”
“하나만 확실히 해보자. 우리 팀 일이라서 그런 거야? 아니면 너에게 자꾸 사람들이 뭐라고 해서 그런 거야?”
“둘 다 인 것 같은데. 일이 잘못될까 봐. 사람들이 원하는 대답을 못할까 봐. 아니면 나중에 가브리엘이 왜 진작 처리하지 않았냐고 뭐라고 할까 봐 불안해.”
“일은 일이고 너는 너야. 일이 잘 안 돼서 뭐라고 하는 건, 일이 잘 안 된 걸 이야기하는 거지. 너를 뭐라고 하는 것이 아니잖아. 너는 일이 아니니까. 그걸 좀 구분해 보면 좋을 것 같은데.”
“아 그래도 내가 하고 있는 것을 흠잡거나 비난하는 것은 내 능력을 뭐라고 하는 것 아닐까?”
“그래서 지금 네가 이 상황 속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이 있어?”
“이 상황에서 바꾼다라…”
“너무 생각하지 마. 파트너 일까지 네가 다 책임지려고 하지 말고.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되고. 가브리엘 일은 가브리엘에게 맡겨. 어 브리스 온다. 나 간다.”
브리스는 이 회사의 매니징 파트너이다. 큰 입에 웃상이라 늘 웃고 있는 듯 하지만 여기 모두를 숨 막히도록 압박하는 것에 매우 익숙한 사람이다. 그런 브리스가 복도 반대편 창문에 지나가는 것이 보이자 얀이 자기 사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그것도 그럴 것이 브리스가 지난주에 비즈니스 협력팀과 비서들에게 업무 중 잡담 일절금지라고 단체 이메일을 보냈기 때문에 회사 분위기가 그닥 좋지 않았다.
‘그래 우리라고 다를 수 없겠지.’
답답한 마음에 창문을 여니 날씨가 꽤 쌀쌀하다. 꼭대기 층에 있다 보니 파리 시내 꼭대기가 여기저기 보인다. 나무나 풀은 별로 없는 시내 한 복판이지만 함석지붕 꼭대기 들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조금 나은 것 같기도 하다. 이 광경은 지금 이 창문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곳에 서 있고 누리릴 수 있는 것에 감사하기도 기분 좋아지기도 한다.
“그런데 딱 감기 걸릴 것 같은 날씨다.”
머리가 띵하게 아파온다.
**이 작품에서 등장한 모든 인물과 사건들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 건물, 제품과는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소설. 이제 꺼져 몰리토, 자책과 두려움
[글쓴이의 말: 바질은 또 어떻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