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을 이해하는 일

행복하길 바래.

by Mano

사람 보는 눈이 없지는 않다.

사람과 관련된 업무를 오래 하다 보니 경험적으로 쌓인 감각이 있기에. 또 홀로 버티며 살아온 시간 동안 유일하게 사람들 관찰이 낙인 시절이 있어 데이터가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편의를 본 경험도 많다. 거를 수 있는 사람을 피해본 경험도 있고, 사람에 대한 문제를 미리 예방해 본 적이 빈번하다. 하지만 이제는 나이를 한 살 두 살 더 먹어가면서 문제가 생긴다. 바로 '나의 생각'이라는 아집과 고집이 이 사람에 대한 드문 경험으로 가지게 된 인상을 잘 바꾸려 하지 않는 걸 느낀다. 그래서 최대한 누군가를 대하고자 할 땐 상대를 조심하면서도 나 자신을 경계하게 되는 것 같다.


꽤 오래된 나의 습관이 있는데, 처음 보는 사람에게 첫인상을 차가움과 까칠함으로 인식시켜 주는 것이다. 일단 많은 사람들을 알고 지내는 것이 소모적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내 사람이 될 만한 관계는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어느새 내 주변을 채운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를 점점 알아가는 사람들은 내가 이런 사람인 줄 몰랐다며 나에 대한 그들이 받은 인상을 전해주기도 한다. 그만큼 나는 처음과 후가 많이 다른 사람이다.


이것은 아마 내가 상처를 받아오면서, 또 치유하고 성장하며 가진, 어쩌면 생존과 관련된 내 본능적인 관계 방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 지금까지는 내게 이익을 주기 때문에 당분간 이 태도를 유지하며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굳이 바꿔야 한다면 말투에 친절함은 조금 추가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런 내가 오랜만에 사랑이라는 감정에 빠졌더랬다.

워낙 마음을 주는 일에는 조심성이 많아서 웬만해서는 이성과 친분을 쌓으며 지내지는 않는다. 뭐 마음을 쉽게 다칠까 봐 그런다기보단 일부러 평온한 마음에 돌을 던지지는 말자는 주의라서, 그럴 가능성들을 배제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공동체 생활을 하다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는 기민하게 분위기를 파악하고 누군가의 기분을 살피는 일에 눈치가 있는 편이어서 분위기를 잘 만들어 가기 위해 나설 때가 많다. 그래서 그때만큼은 내가 나서서 웃고 떠들게 된다. 그래서 종종 오해를 살 때가 많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닌데 좋은 사람이라고.


그러다가 문득 그 아이를 만났다. 스스럼없었고, 당돌한 아이였는데 오랜만에 신선했다. 내게 그렇게 조심성 없이 친해지자며 다가오는 사람을 요즘 내 주변에선 볼 수 없으니까. 그렇게 그 아이와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자연스레 가까운 사이가 되어버렸고, 나는 그 가까움이 또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하여 미리 선을 그으려 했었다. 벽을 치기엔 너무 여린 아이였고, 선을 그을 때조차 울던 아이였으니까.


그게 내 마음에 콕 박혔더랬다. 천성이 여자가 우는 것을 못 보는 성격이라 참 많이 미안했었다. 그러고도 이어지는 관계 속에서 우린 대화가 너무 잘 통했다. 서로의 필요와 웃음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반응하게 되는 것을 보며 참 결이 비슷하다고 느꼈고, 함께 하는 시간이 참 좋았다. 무엇보다 그 아이는 내게서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조금 더 세밀하게 신경을 쓰다 보니 어느새 내 마음에 자리한 그 아이를 마주하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그 아이의 첫사랑이 되었다.


이별을 하게 되었다.

짧은 시간 동안 복합적인 감정을 마주한 이번 연애를 끝내며, 내 이성이 마비가 된 것 같이 잘 작동하지 않았다. 감정이 처리가 되어야 이성적 사고를 하는데, 어디서부터 감정의 실타래를 풀어가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첫사랑을 해보는 풋풋한 청소년기의 나로 돌아간 것처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서로 너무 좋아하고 사랑하는데 서로가 떠나기로 하는 이런 결정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현실적인 벽 앞에 좌절해야 하는 이 상황이 사실 잘 이해가 안 되기도 했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사랑 앞에선 극복을 해나가는 게 내 사랑의 방식이라 더 그랬던 게 아닌가 싶다.

앞으로의 행복에 대한 가능성들과 그 아이를 향한 나의 마음, 이별의 아픔, 나로 인해 안 겪어도 될 일을 겪은 것 같은 그 아이에 대한 죄책감, 그 아이의 상황에 얼마나 어려웠을까에 대한 동정심, 그리움과 그 아이를 안았던 작은 기억들까지.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 하루의 끝을 잠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지만 아직도 나는 정리 중에 있다.

겨울

나는 그 아이를 붙잡고 싶었다. 이건 내 경험으로 나온 의견이지만 이렇게 잘 맞는 사람을 만난다는 게 인생에 몇 번 없는 기회라는 것을 알아서였을까. 쉽사리 포기가 잘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내 욕심이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고 생각했기에, 어떻게든 이유를 찾으려 했다. 그 첫 번째 관문은 나를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그 아이를 이해하는 일이었다.


약한 모습을 숨기고 버티는 걸 잘한다고 느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기억이 실마리였다. 감정의 크기가 본인의 생각보다 커서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 회피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걸 약함이라고 여긴 건 아닐까. 아직 어려서, 우리가 만나게 되면 생길 사람들의 이목이 큰 부담이었겠지. 좋아하고 사랑하지만 미래를 그리기엔 그 불확실성이 두려웠던 건 아닐까.


이런 생각들이 스치며 더 눈물이 났다. 십 년을 넘게 함께한 사람들도 내가 우는 걸 보지 못했는데, 그들이 본다면 미쳤다고 할 만큼 그렇게 울었다. 한바탕 울고 나니, 포기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게 되었고, 그제야 한편으로는 후련해졌다.


진심으로 그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다음번에는 애쓰지 않아도 되고,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되는, 자신에게 자연스럽게 안정감을 주는 누군가를 만나기를. 잘 맞는 사람을 만나서 그 예쁜 웃음으로 그녀의 주변을 가득 채우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빌어본다.


사실 아직도 보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다. 하지만 여기서 이제 놓아주려 한다. 그녀의 인생에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그 봄에 피어날 꽃이 더 아름답기 위해, 나는 잠시 스쳐 가는 혹독한 겨울로 남아도, 그걸로도 충분히 이 사랑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나를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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