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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연애 때는 관대했다.
by
보통의 김만수
Aug 31. 2023
신혼여행에 온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숙소에서 사소한 말다툼을 했던 우리는 하필 넓디넓은 풀빌라 안에 있었고, 넓은 수영장을 사이에 둔 채 청량한 바다가 보이는
썬베드에 각자 누워 그렇게 하릴없이 고요한 시간을 보냈다.
절간도 이보다는 시끄럽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신혼여행에서 이게 뭐야, 라며 괜스레 서러운 감정이 더해질락 말락 할 타이밍에 그가 대뜸 내 앞에 서서 새초롬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 내게 손을 내밀었다.
못 이기는 척 그의 손을 잡고 끝맺지 못한 대화를 마무리하니 어느새 반나절의 시간이 흘러있었다. 여행 가이드가 이러라고 준 자유시간은 아니었을 테지만, 우리의 첫 부부싸움은 무사히 잘 넘겼으니 다행이라 여겼다.
난생처음 첫 해외여행이자 신혼여행이었기에 여행지에서 다투는 것은 상상도 못 한 일이었지만, 그 역시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6년의 연애기간을 보내며 별다른 다툼 없이 지냈던 우리였기에 신혼여행에서의 다툼은 당황스러움으로 다가왔었다. 지나고 보면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우는 일이었을지도 모르는 것임을 알고서도 ‘너는 날 받아주겠지’라는 잘못된 생각에 고집을 피우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연애를 할 때는 서로 무조건적인 허용을 해주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우리 사이에 분명한 선이 있었기 때문에 서로를 위한 정도를 지키고 선을 지켜서 가능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연애 때는 관대했다. 그도, 나도. 그러했다.
그랬기에 결혼을 하고 나서도 관대할 줄 알았다. 그도, 나도.
그러나 결혼이라는 매개체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선의 경계가 흐려지기 시작하면서 관대함의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가 시작했다.
다툴 때는 야속하기만 했던 맑은 날씨였는데, 화해하고 나니까 계속 맑았으면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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