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희야, 지금 너 때는 행복할 수가 없어. 엄마도 오십이 되어서야 조금씩 행복해지더라."
열정이 많고, 사랑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사랑에 대한 열정이 너무나 가득했는지 한 남자를 만나 일찍 가정을 이루었다.
막막했다. 모은 돈도 없었고 회사에서 정규직이 된지도 일 년 남짓. 요즘엔 옛날 어른들처럼 단칸방 월세살이로 시작하지 않는 결혼이라지만, 우리는 방 두 칸짜리 작은 빌라에서 둥지를 틀게 되었다.
아이를 낳게 되었다. 스물네 살이었다. 어렸다.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남편은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퇴근하고 시어머니도 일하시고, 친정집은 멀었다.
아침 7시 반이 되면 무작정 아기띠를 메고 집 뒤의 낙산공원에 올랐다. 젊었다. 아기에게 길가에 핀 코스모스를 보여주며, "윤하야, 이게 꽃이야. 꽃보다 우리 윤하가 더 예쁘지?" 하며 만지게 해 줬고 늦은 아침 집에 내려와 밥을 먹고는 낮잠을 잤다. 그러고는 또 나갔다. 가까운 창경궁으로, 박물관으로, 미술관으로.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힘들지도 않았나. 힘든지도 몰랐지.
아기가 뭘 알았겠나. 그냥 집에서 하루 종일 있더라도 엄마가 웃어주고 놀아주고 노래 불러주면 그만 이었을 텐데, 내가 답답해서 그랬다. 그래야 하루가 지나갔다. 오늘도 뭐라도 했으니 말이다.
아기가 돌이 지나고, 복직을 했다. 떨렸다.
스물다섯. 일에 올인했다. 내 청춘은 세계여행이나, 워킹홀리데이나, 신나게 클럽 다니거나, 대단한 장학생은 아니었지만 일을 열심히 하면 애 키우는 것보다 백배는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친구들이 놀고 여행 다닐 때, 애 키우며 열심히 일하는 워킹맘. 나쁘지 않았다. 어떨 땐 나 자신이 대견하기도 했고.
월급 받아 일하며, 아이 봐주는 시어머니께 백만 원에서 백오십만 원 정도 수고비로 드리고도 틈틈이 대출금을 갚아나갔다. 없이 시작한 결혼이기에 더 치열해야만 했다. 그런데 결혼은 참 어렵다. 결혼을 하면 돈이 모인다는데, 연애할 때는 돈을 많이 쓰니까 결혼을 빨리하라고 어른들이 말씀하셨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나 보다.
빚을 갚아나가고도 조금 넓은 집으로 이사 가니, 더 큰 대출을 감당해야 했다. 물론 그것 또한 갚아나가면 우리 돈이 되는 것이긴 하다. 그런데 이사하는 과정에서 남편이나 내가 따로 가지고 있던 빚을 갚느라 또 모아놓은 것을 결국 빚 갚는데 또 쓰고. 그렇게 지금도 조금씩 모아서 갚거나, 매월 조금씩 빚을 갚고 있다.
남편이 저번 주에 친척 결혼식을 다녀왔다. 집에서 두 시간 거리인데 친척 누나분이 함께 가자고 차를 끌고 왔단다.
"나 누나 차 뭔지 알고 있었거든? 근데 이번에 차 바꿨나 봐. 벤츠로."
"헉, 벤츠? 와 다들 진짜 돈 잘 버나 보다."
"얼마 전에 집도 샀다던데? 너무 비교되더라."
늘 그런 식이다. 어느 누구는 무슨 차를 샀고, 집도 샀다는 꿈같은 이야기.
부모님이 일찍 이혼해서 이 집 저 집 얹혀살며 고생한 누나와 어렵게 중국집 주방장으로 일하다가 만난 매형. 그 부부가 힘들게 중국집을 운영하면서 부를 축적해냈다는 드라마 같은 이야기. 게다가 그 집도 애가 셋인데.(우리 집도 희망이 있는 거죠? 하하)
"승희야, 돈에 쪼들리면 아-쪼들리는구나. 삶에 지치면 아-힘들구나. 행복할 때는 아-행복하네. 불행할 땐 아-불행하네. 하고 그 감정을 느끼고 지나가길 기다려봐. 엄마도 최근에 깨달은 건데 행복한 이유와 불행한 이유는 같더라. 누군가가 좋거나 싫은 이유도 같은 거야."
남편과 요즘 자주 하는 이야기는,
'자기만의 기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아무리 직급이 높은 사람이더라도, 퇴사를 하고 나면 별 거 아닌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아마 오래도록 사는데 반해 인공지능이니, 무인시스템이니 해서 일거리는 부족 해질 텐데 뭘 먹고 사냐는 말이다.
"딸 셋이 먹여 살려주겠지. 지금도 결혼 안 하고 애도 안 낳는데 우리 딸들은 더하지 않을까? 그냥 평생 같이 살자. 애들하고."
하며 아이들에게 우리의 노후를 떠맡기기엔, 너무 짐이 될 것 같고.
회사 다니며 경영대학 졸업해 이직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졸업과 동시에 셋째를 낳았고
육아 휴직하며 제2의 직업을 위해 차(茶) 공부를 한다고 역시 큰소리쳤지만 언제 차를 업으로 삼을지는 모르겠고 브런치 작가를 신청해서 나의 문학적 기량을 펼쳐보겠다고 또 큰소리쳤지만 글 쓰는 건 여전히 쉽지 않고 내 글을 보는 사람도 없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욕심인가 싶고. 자기 계발과 자기애가 너무 심한가 싶고.
왜 나란 사람은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바쁘게 살지 않으면 항상 불안한가 싶다.
"살림은 빵점(0점)이야."라는 시어머니의 말에 전혀 상처받지 않고 "나는 진짜 살림과 안 맞아. 뭐라도 하고 싶어." 하며 건조기 앞에 널브러진 빨래를 뒤로하고 무작정 밖에 나가는 철부지다.
"엄마, 내가 원래 이렇게까지 화가 많은 사람은 아닌데 큰 애(7살)한테 은연중에 화를 많이 낸다? 화풀이하듯이."
"그럼 안되지~음, 집에 쓰레기통 하나를 사라. 감정 쓰레기통. 화가 날 때마다 거기에 코를 박고 소리치는 거야. 욕을 하든지 화를 내든지 아무도 없을 때 말이야. 그리고 승희야. 찻잔을 양손에 들고 한 곳을 뚫어져라 바라봐. 그게 찻잔 명상인데 그걸 한번 해봐. 마음이 가라앉을 거야."
엄마는 오십 살에는 행복해진다는데 나는 당장 행복해지고 싶다.
생각해보면 행복은 찾으면 생기는 건데, 너무 거창하게 돈이 많아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나 자신에게 재촉했나 보다. 이렇게 엄마랑 의미 있는 대화를 할 수 있는 것도 행복인데 말이다.
글쓰기를 꾸준히 하면, 내 삶이 지금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한다.
글쓰기를 통해 나를 성찰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주춧돌이 될 거라고 믿는다.
차를 마시면, 정신없는 하루에도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하루하루가 도돌이표처럼 돌아가는 삶에서 글쓰기와 차 마시는 시간은 나를 위한 쉼표다.
조금은 미래가 불안하고, 조금은 돈에 쪼들리고, 불행하게 느껴지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해봐야겠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들이 지금의 나와 미래에 큰 변화(돈이나 지위 같은 결과적인 것들)를 가져다주지 않을지는 몰라도 쓸데없는 것들이 오히려 내게 행복을 주니까. 앞으로도 쓸데없는 짓을 계속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