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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온 Nov 21. 2022

월요일의 신데렐라

서른의 고요란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다.

매주 월요일마다 차마시러 가는 '습관'이 생긴 나는, 어느새 자리 잡은 그 습관을 멈춘다는 것이 참 힘들었다. 마치 먹기 전에 몰랐던 달콤한 사탕의 맛을 알게 된 어린이가, 어김없이 오늘도 내일도, 엄마 사탕 사줘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2주 동안 그 사탕을 먹을 수 없었던 나는, 허리가 아프다는 남편에게 아기를 맡겨놓고 집 밖을 나왔다.


내가 사는 대학로에서는 걸어서도 창경궁, 창덕궁, 종묘 등을 갈 수 있는데 계동길은 창덕궁과 가까웠다. 한참 빈티지 옷에 빠져있었을 때, 익선동에 자주 왔다. 아이들 낳고는 정말 오랜만에 왔는데, 안국역과 현대그룹 빌딩 뒤로 놓인 아기자기한 골목길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관광객과 회사원들이 섞인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조금은 분주했다.




"쉬고 싶어."

엄마랑 전화만 하면 힘들다고, 한숨을 푹푹 쉬는 딸. 엄마는 한숨 좀 그만 쉬라고, 아이들 앞에서 엄마가 그런 모습 보이면 안 된다고 어깃장을 놓지만 그런 엄마의 목소리엔 딸에 대한 걱정이 더 앞선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내가 찻집을 차리면 어떨까?'

'책방을 차려서 그곳에서 차를 우려 주는 건?'


평소 누워서 아기 젖을 먹이면서도 책을 읽는 나는, 책을 정말 좋아한다. 읽는 게 좋고 책을 접고 밑줄 긋기는 더 좋아한다. 모두가 잠든 밤, 달빛 사이로 흐르는 스탠드 조명 아래 차를 마시며 책을 읽는 시간을 사랑한다. 모두가 잠든 새벽, 어스름 사이로 흐르는 고요 아래 식탁에 앉아 차를 마시며 멍 때리는 시간을 사랑한다. 내겐 고요한 시간이 필요했다. 너는 어때? 하고 타인에게 묻는 일상에서 벗어나, 그래서 나는 어떤데? 하고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했다.


무작정 걸었다. 지나가는 연인들을 보며. 우르르 몰려나와 점심메뉴를 고르는 회사원들을 보며. 한옥마을은 이쪽이 아닌 데하며 지도를 보고 또 보는 노부부를 보며. 오래된 건물 옆 골목길 아래로 미끄럼틀 타는 은행잎을 주워 담는 아줌마 그분의 손길을 보며. 골목 가운데 위치한 중학교에서 손을 잡고 나오는 학생들의 웃음을 보며. 걷고 또 걸었다.


아, 나는 걷기를 참 좋아했구나.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 지나가는 아무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 동안 서울여행을 했다. 알지도 못하는 곳에 내려, 걷고 또 걸어 사람 구경을 했다.


아, 나는 이런 사람이었지.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어느 순간 걷다가 근처 찻집에 차를 마시러 갔는데 내가 그토록 원하고 바랐던 고요의 시간은, 생각보다 어색했다.


집에 가고 싶었다. 나를 보면 질리듯이 울고 웃어주는 아이들이, 나를 보면 화가 난다는 남편이, 무척 그리워졌다.


내가 그토록 바랐던 고요함은 알고 보니 내 일상 속에서만 빛을 바랐던 것이었고 그건 다름이 아니라 내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했던 아이들과, 남편과의 지지고 볶는 일상에서 생겨난 것이었다.


내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고 지금은 그때와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나는 나의 지금을 살아야 하기에. 온 마음을 다해 일상을 살아내고 단비 같은 고요를 감사해야지. 그렇게 오늘을 또 살아내야지, 하고.


2시간 만의 나의 소박한 일탈은 집에 들어서자 만난 아기의 웃음과 함께 끝이 나버렸지만 이런 내가 서른이어서 좋다.

엄마여서 좋다.


나의 서른, 엄마의 서른은 이렇게 지나간다.


계동 델픽에서 바라본 낮시간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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