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
역사를 살펴보면 나라가 망하는 데에는 일종의 '전조증상'이 존재한다.
조정과 관리가 부패하고, 흉년과 자연재해로 인해 기아가 속출하며, 사회 구조 자체가 무너진다.
그 와중에 외적의 침입이나 대규모 반란이 일어나 국가를 전복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렇게 한 번 망한 후 다시 건국이 이루어지면, 같은 땅과 같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생기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이다.
사실 국가가 몰락하는 과정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내부의 부패와 외부의 압력이 상호작용하면서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필연적 결과다.
조정의 부패는 국가 운영의 핵심인 치수(治水)와 치산(治山) 같은 사회간접시설에 대한 관리 체계를 약화시킬수 밖에 없다. 부패한 관리들 입장에서는 사회간접시설을 유지보수하며 사명을 다하는 것보다 뇌물을 받는 것이 낫다. 자연스럽게도 이러한 사회간접시설의 관리가 약화되면 곧 농업 생산성 감소와 기근, 흉년으로 이어진다. 인구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자영농들의 경제적 기반이 무너지면 사회는 불안정해질 수 밖에 없다.
불안정해진 사회 속에서 부패한 관리와 박살난 경제가 맞물리며 치안이 약화된다. 어제까지 이웃이던 자가 도적이 되고 전국에는 반란이 들끓는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종교나 사상이 등장하며 불안한 대중을 결집시키기 시작한다. 그들은 종종 과격한 교리와 무장 봉기로 이어져 정부와 충돌한다.
결국 정부는 반란을 진압하는 데 국력을 소진하고, 그로 인해 외적에 대한 방어가 약화된다. 결국 기회를 틈탄 외적의 침입과 내부 혼란이 맞물리며 국가는 쇠퇴하고 멸망에 이르게 된다.
거의 대부분의 역사책에서 나라의 망조가 일어날 때 일어나는 일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은 국가뿐만 아니라 기업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기업 역시 복잡한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생명체와 같기 때문에 내부의 부패나 관리 실패가 외부 환경 변화와 결합하면 경쟁력을 잃고, 결국 폐업에 이르게 된다. 특히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달리 자원이 제한적이고 위기에 대한 회복력이 낮기 때문에 이러한 몰락의 과정이 더욱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중소기업이 혁신에 실패하고 도태되는 과정을 국가 몰락의 역사적 흐름에 빗대어 분석하면, 그 기저에 깔린 구조적 문제를 보다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군주가 바로서게 되면 망해가던 나라도 중흥하게 된다. 리더가 가진 막강한 힘이 잠시나마 조직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리더가 제대로 된 리더십을 가지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기업 내부의 리더십 부재는 혁신 실패의 중요한 출발점이다. 많은 중소기업이 창업자의 비전과 열정으로 시작되지만, 경영진이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기업은 곧 정체 상태에 빠진다. 리더가 명확한 비전 없이 단기적 이익에만 몰두하거나, 위험을 지나치게 회피하면서 안주할 경우 기업은 새로운 기회를 놓치게 된다.
예를 들어, 한때 국내 시장을 석권했던 휴대폰 제조업체 팬택은 혁신적인 디자인과 기술력을 자랑했지만, 스마트폰 시대로 접어들면서 변화하는 소비자 니즈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 리더십이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기존의 전략을 고수했고, 결국 경쟁사인 삼성과 애플에 밀려 시장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특히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X)과 같은 대규모 변화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기술에 대한 이해 부족이나 혁신적 사고의 부재는 치명적이다. 리더십의 문제는 단순히 내부 의사결정을 왜곡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원들에게도 불안과 불신을 심어 기업 문화를 더욱 경직되게 만든다. 리더의 방향 상실은 결국 조직 전체의 창의성과 민첩성을 저해하며, 기업의 장기적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강력한 리더나 도덕적인 리더라고 반드시 혁신을 만들어내고 미래를 만들어내진 않는다. 정조는 조선 왕중 손꼽힐 정도의 천재 중 하나였지만 그가 가진 강력한 왕권주의와 복고주의는 결국 그가 죽은 뒤 백여년 뒤, 조선을 멸망으로 이끈 세도정치를 낳았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재정적 여력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한 번의 실수나 잘못된 투자로 인해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 이는 새로운 기술 개발이나 신사업 진출을 결정하는 데 있어 지나치게 보수적인 태도를 유발하며, 결과적으로 기업을 기존의 성공 모델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만든다. 그러나 시장은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과거의 모델에만 기대는 것은 곧 도태를 의미한다.
예전통적인 필름 카메라 시장에서 독보적이었던 코닥은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기존 사업 모델에 지나치게 집착했다. 디지털 기술이 대세로 자리 잡을 것을 예측하고도 적극적으로 변화하지 못한 결과, 결국 시장에서 밀려나 파산을 경험하게 되었다.
또한, 자본 부족은 인재 확보와 유지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핵심 인재가 이탈하면 혁신의 기반 자체가 무너질 위험이 크며, 이는 기업의 경쟁력 저하로 직결된다. 연구개발(R&D) 투자가 부족한 기업은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시장에 적절히 내놓지 못하며,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의 관심을 잃게 된다.
삼국의 한 축을 차지한 채 안주했던 유선은 결국 등애의 군사가 음평을 넘자마자 항복해버리고 만다. 만약 제갈량이 죽은 뒤 30여년 동안 그가 적극적으로 인재를 기용하고 내부 역량을 발전시켰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유선은 자포자기했고 결국 아버지가 물려준 나라를 하루아침에 남에게 바치고 말았다.
많은 중소기업에서는 수직적이고 경직된 조직 구조가 지배적이며, 이는 직원들의 창의성과 주도성을 억압한다. 혁신은 본질적으로 실패를 전제로 하는데,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문화는 새로운 시도를 가로막는다. 특히 한정된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는 중소기업에서는 실험적 접근이 더욱 억제될 가능성이 크다.
한때 핸드폰 시장의 최강자로 보였던 노키아는 내부적으로 강력한 관료주의와 경직된 의사결정 구조를 유지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영진이 이를 수용하지 않았고, 그 결과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과 삼성에 뒤처지게 되었다. 시대가 바뀜에도 탁상공론에 빠져 서로 파당이나 짓고 외부를 배척하는 모습, 어디서 많이 보지 않았나..?
기술 혁신의 속도가 빨라지고, 글로벌화와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중소기업이 이러한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전통적인 제조업 기반의 기업이 디지털 전환을 늦추거나 거부하면 자동화와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 일반화된 환경에서 생존하기 어려워진다.
예를 들어, 일본의 전통 가전업체인 샤프는 LCD 시장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으나, 이후 기술 트렌드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해 결국 외국 자본에 인수되는 결과를 맞았다.
중소기업의 몰락 과정은 점진적이면서도 불가피하게 진행된다. 내부의 문제와 외부의 압력이 맞물려 기업은 경쟁력을 상실하고, 이로 인해 자금, 인재, 고객 신뢰까지 잃게 된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 기업은 더 이상 시장에서 자립할 수 없는 상태로 내몰리며, 결국 폐업에 이르게 된다. 혁신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이를 간과한 기업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과거 국가가 몰락했던 과정이 단순한 외적의 침입이 아니라 내부 부패에서 비롯되었듯, 기업 역시 내부적 문제 해결 없이 지속적인 성장과 생존을 보장할 수 없다. 리더십의 변화, 유연하고 창의적인 조직 문화, 시장 변화에 대한 민첩한 대응, 그리고 고객 중심의 사고가 필수적이다. 기업은 생명체와 같으며,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 아니 사망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