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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골이냐 2중대냐

2025.2

by 만수당

반골이냐 2중대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릴 때부터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라는 말이 참 싫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지금과 달리 눈물도 많고 여리여리한 유약한 아이였다.
그런데도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라는 말은 정말 싫었다.

어릴 때부터 말을 삼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귀가 닳게 들었고
겸손과 위선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며 살아왔지만
아닌 것을 알면서도 하는 것은 곧 알면서도 행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과 같다라는 공자의 가르침과도 배치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반골이나 싸움닭 소리를 많이 들었다.

학교를 다닐 때나 군복무 중에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하지 않았고 옳다고 생각하면 누군가 하지말래도 하였다. 그렇다고 정의의 사도였던 것은 당연히 아니다. '옳은 것'의 기준은 어쩔 수 없이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기관에 있을 때도 서열 2위인 기획본부장한테 대들었고 해당 본부장은 몇 개월이 지나도 그걸 잊지 않았던지 분임조 토론때 가만히 있던 내게 '오늘은 왜 한말씀도 안하세요?' 라고 비꼬며 면박을 주기도 하였다. 민간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임원들이 대표님의 말에 불만이 있으면서도 수행할 때마다 대표님께 안된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래서 회사는 옳지 못한 방법으로 큰 돈을 벌 기회를 여러 번 놓쳤다. 물론 나는 그에 만족한다.

그러다보니 조직에서는 나를 적극적으로 신뢰하는 사람들과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양 극단에 있었다. 그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누구에게나 나는 '내 아들이 저랬다면 참 좋겠다.'와 '내 아들이 저랬으면 죽여버렸을거야.'의 극단에 서 있었다.

어쩌면 그런 반골이나 싸움닭, 젊은 꼰대와 같은 이미지를 내가 선호하여서 더 가열차게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는 길과 다르면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사표를 써댔고 난 그게 양금택목인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런 사람이 없는 조직이 없다.
다만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따라 메신저는 반골이 되기도 하고 2중대가 되기도 한다. 정치권에서 회자된 수박이니 양두구육이니 하는 것들도 결국 그런 말들의 갈래다.

조직이 건강해지려면 외부의 비판이 있기 전, 내부의 비판을 경청하고 그에 맞추어 행동해야 한다. 예시가 정치얘기라 좀 그렇지만 유승민 전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고 배신자 소리를 들었다. 바른정당이 실패하고 다시 친정으로 복귀했음에도 이러한 배신자의 멍에는 아직도 그대로 남아 '합리적 보수'나 '개혁적 보수'라는 타이틀과는 달리 보수 지지층에서의 지지는 굉장히 옅다. 그런가하면 얼마 전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민주당 내부에 자성을 촉구하는 메세지를 냈다가 내부에서 큰 비난을 당하고 있다. 수박이라는 조롱은 덤이다. 몇몇 당원은 그에 대해 사면에 대한 충성이냐고 조롱하기까지 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나를 먼저 가다듬어야 집안을 다스릴 수 있고 집안을 다스려야 나라를 통치할 수 있으며 한 나라를 통치할 수 있는 재목이라야 천하를 평정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내 조직도 감싸지 못할 바에야 어떻게 고객을 얻고 민심을 얻을까.

고려의 왕건은 공산전투에서 견훤에게 참패한 이후 한달이나 실종되어 생사를 알 수 없었다. 그의 수 많은 처가와 고려의 유력 호족들은 왕건의 공백기간동안 일치단결하여 후백제의 내습에 대비했고 왕건이 복귀하자 그를 상대로 다시 권토중래를 일구어냈다. 강릉 일대의 강력한 호족이었던 김순식은 아예 개성까지 입조해 왕건에 대한 신뢰를 보였다.
그렇지만 견훤은 후계 구도조차 제대로 확정짓지 못해 결국 그가 자는 동안 맏아들 신검이 일으킨 쿠데타로 인해 왕위에서 쫓겨났다. 이 후 그는 고려로 도망가 자신이 세운 나라를 자신이 멸망시키는 참담하고 슬픈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고 오백년 고려의 디딤돌을 만든 것은 그의 포용과 화합이었다.

어느 조직이나 조직 안에서의 상호 비판은 어쩔 수 없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 비판에 대해 조직 내부에서 토론이 아닌, 반골이나 적의 2중대로 칭하는 비난으로 바뀌는 순간 망할 수 밖에 없다. 다양한 의견의 조화를 무시하고 다수 의견의 정점에 선 조직의 독재자는 결국 짧은 영화를 뒤로 하고 액턴 경의 말처럼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며 조직의 영원한 몰락을 부르기 때문이다.

할 말이 있으면 하고 살아야한다. 우리는 서로 듣고 서로 판단해야 한다.
자유와 민의가 그 무엇보다 어려운 이유다.
그리고 편한 독재를 선택한 자들이 모두 비참한 말로를 맞이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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