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계 - 성동격서(聲東擊西)

동쪽을 칠 것처럼 소리치고 서쪽을 공격한다.

by 유영준


벌써 승전계의 마지막 차례인 성동격서(聲東擊西)다. 성동격서는 전장의 가장 기본적인 기만술이자, 전략의 정수라 불릴 만한 계책이다. 직역하면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을 친다’는 의미다. 허를 찌르고 시선을 분산시키며, 상대가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결정타를 가하는 것이다. 실제로도 많이 쓰였고 지금도 전략 게임에서 많이 쓰이는 가장 기본적인 전략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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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단순한 기만이 아니라, 전장의 전체 맥을 흔드는 전략이며, 적의 판단을 흐리게 하여 실제 의도를 숨기는 전술적 포진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 전략은 병력의 열세, 지리적 불리함, 시간적 제약이 있는 상황에서 더욱 위력을 발휘한다. 전투에선 전력이 아닌 판단이 승패를 가르고, 판단은 곧 정보의 해석에 따라 갈린다. 성동격서는 그 정보 해석을 뒤틀리게 만드는 강력한 도구인 셈이다.


보이는 것과 진실 사이

모든 전쟁은 정보전이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인식하느냐, 나는 상대의 인식을 어떻게 조작할 수 있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린다. 성동격서는 이러한 정보전의 정수다. 단순히 거짓 정보를 흘리는 것이 아니라, 적이 그 거짓을 진실로 믿게끔 하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계책의 본질은 ‘오도(誤導)’이며, 이는 상대의 선택지를 왜곡시키는 심리전의 영역이다. 보이는 쪽에서 요란하게 움직이며, 진짜 목적지는 조용히 준비한다. 적은 허상을 쫓고, 실상을 놓친다. 전장이 혼돈에 빠질수록 이 계책은 더욱 효과를 발휘한다.


그렇다면 어떤 사례가 있을까?


성동격서의 고전적 사례 중 가장 정교한 설계와 실행을 보여준 인물은 바로 초한쟁패기 파초대원수로 유명한 불세출의 명장 한신(韓信)이다. 그의 안읍 전투는 성동격서의 교과서라 할 만하다.

당시는 한고조 유방이 항우에게 팽성대전에서 대패한 직후였다. 유방은 파죽지세로 항우의 초나라 패권에 대항했고 무려 56만의 제후 연합군을 몰고 항우가 제나라를 공격하는 사이 그의 본거지인 팽성으로 쳐들어갔다. 하지만 급하게 돌아온 항우와 3만 군사에게 대패하며 유방의 명성은 땅에 떨어졌다. 이에 한동안 유방의 편에 서 있던 서위왕(西魏王) 위표(魏豹)마저 항우에게 돌아서 버린다. 위표가 있던 서위는 지금의 윈청시 일대로 위나라의 옛 수도였던 안읍을 중심으로 한 하동지방이었다. 당시 유방의 세력권에 있던 관중(시안 인근)에서 황하 이북으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전략적 요충지가 바로 위나라였다. 이에 유방은 역이기(酈食其)를 보내 설득하려 했지만 실패하자 결국 한신에게 위표를 치도록 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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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유방의 세력권에서 안읍을 치려면 포판(蒲坂)과 임진(臨晉)을 건너는 것이 이상적이었다. 최단거리였다보니 하동과 관중을 잇는 나루가 발달해있었고 자연히 대군이 진격할 도로도 포판에서 안읍까지 뚫려 있었다. 이를 알고 있던 위표는 임진과 포판에 병력을 집중시켰고 임진의 수로를 끊어버린다.

이에 한신은 정면으로 포판의 수로를 건너 공격하는 것으로는 그 방어를 무너뜨릴 수 없음을 간파하고, 병법을 꺼내든다.


그는 군세를 포판에 집중시키는 듯한 ‘위장’ 전략을 구사한다. 강을 사이에 두고 요란하게 진을 치고, 병사들을 대규모로 움직이는 척 연기한다. 동시에 실제로는 소수 정예를 북쪽의 하양(夏陽)으로 이동시켜, 목앵부(木罌缶, 항아리에 나무를 달아 부력을 만든 뗏목 정도)로 병사를 수송하여 물길을 건넌다. 그리고 무방비 상태였던 안읍을 기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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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표는 이 소식을 듣고 황급히 회군하지만 이미 한신의 함정에 걸려든 후였다. 포판에 병력을 남긴 채 군세를 나눴고, 회군한 부대는 준비도 되지 않은 채 기세 좋은 한신의 군에게 박살난다. 또한 포판을 건널 것처럼 위장하던 조참(曹參)이 위나라군의 뒤를 치기 시작했다. 한신은 여세를 몰아 위표까지 생포하고, 서위 일대를 평정한다. 그리고 이 안읍전투는 초한쟁패기를 사실상 판가름 지은 '한신의 북벌'의 신호탄이었다.


이 전투는 전통적인 정면 승부가 아닌, 철저한 ‘기만’과 ‘허점 공략’으로 이긴 싸움이었다. 실제 공격 방향을 철저히 숨긴 채, 적을 의도된 방향으로 유도한 한신의 전략은 이후 모든 전장에서 회자될 만큼 교과서적인 성동격서였다.


손자는 말했다. "실을 보이되, 허를 치라(示實而擊虛)." 이는 성동격서의 근간이 되는 철학이다. 적이 준비된 장소는 '실'이고, 준비되지 않은 지점은 '허'다. 전쟁은 그 허를 노려야 한다. 적이 ‘동쪽’에 모든 병력을 모을 때, ‘서쪽’은 가장 취약한 틈이 된다. 적의 '허'에 나의 '실'을 집중하고 적의 '실'에 나의 '허'를 바치는 것. 이 것이 바로 허허실실이며 병략의 기본이다.


손자병법의 또 다른 문장, "兵者詭道也(병자는 궤도야)"—병법은 속임수라는 구절 역시 이 전략의 정당성을 뒷받침한다. 전쟁은 정직하지 않다. 정직한 자는 속고, 속인 자가 이긴다. 물론 그 속임이 전략적으로 정교하고 타이밍이 맞을 때에만 통한다.


그렇다면 현대 비즈니스에서도 성동격서가 쓰일까?

당연하게도 성동격서는 오늘날 비즈니스 전략에서도 빈번하게 활용된다. 이른바 '전략적 시선 분산', 혹은 '시장 포지셔닝 조작'이라 할 수 있는 방식이다.


IT업체의 대표주자인 A사는 종종 신제품 출시 시기에 가짜 루머를 흘려 시장을 교란시킨다. 고사양 제품이 곧 출시될 것처럼 언론에 흘려, 경쟁사가 부랴부랴 출시 일정을 조정하게 만들고, 이후 중저가 라인업을 먼저 출시해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확보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진짜 프리미엄 제품은 그 이후에 안정적으로 출시된다.이 방식은 제품 개발뿐 아니라 브랜드 전략, 소비자 심리까지 통합적으로 활용되는 성동격서다.


그런가하면 스타트업의 성장 전략에서도 성동격서가 쓰인다.

신생 기업이 대기업의 관심을 끌지 않기 위해 겉으로는 다른 시장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내부적으로는 전략적으로 핵심 시장을 준비하는 방식 또한 성동격서의 현대적 형태다. 예컨대 한 스타트업은 교육 솔루션 분야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며, 실제로는 헬스케어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었다. 이후 교육 시장에서 얻은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헬스케어 솔루션을 출시하며, 기존 강자들이 눈치채기 전에 틈을 파고든 것이다.


마케팅에서도 역시 성동격서가 쓰인다.

한 글로벌 음료 브랜드는 경쟁 브랜드가 신제품 출시를 준비 중일 때, 대대적인 이벤트를 동시다발적으로 벌여 소비자의 관심을 자신에게 쏠리게 했다. 실제 제품은 소소한 변화를 준 리뉴얼이었지만, 타이밍과 마케팅의 분산 효과로 인해 경쟁사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또 이런 사례도 있다. OTT서비스의 대표주자인 N사를 막기위해 후발주자인 D사가 북미 시장에서 대규모 콘텐츠와 가격 공세로 N사를 압박했다. 이때 N사는북미시장에서 점유율을 뺏기기 싫지만 마치 못이기는 듯이 북미시장을 넘겨주듯 약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N사는 D사와 직접적인 경쟁을 피하고 동남아와 남미 등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인프라를 강화했다. 결국 지금에 이르러서는 글로벌 점유율에서 D사는 N사의 상대가 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성동격서는 단순한 제품 전략이 아니라, 시장의 심리를 흔드는 기획이다. 소비자가 보는 방향과 실제 행동의 방향이 다르면, 그 틈에 전략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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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격서의 실패 사례 – 신뢰를 잃는 기만

그러나 모든 성동격서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한 글로벌 전자 기업은 경쟁사의 점유율을 빼앗기 위해 허위 출시 정보를 일부 언론에 흘렸으나, 시장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정작 출시된 제품은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고, 소비자는 이 전략을 '허세'로 간주했다. 기만 전략은 그 기저에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허를 찌르기 위한 실체가 약하면, 전략은 불신으로 이어진다. 이는 허풍으로 인식되고 제품이나 서비스에 어떠한 좋은 영향도 주지 못한다. 결국 전략이 지나치게 얕거나, 반복되거나, 타이밍이 어긋날 경우 성동격서는 ‘교란’이 아니라 ‘실수’가 된다.


그렇다면 실패하지 않는, 성공하는 성동격서를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다음과 같은 다섯가지를 기억해두자.


1. 허상 구축 – 적의 시선을 끌 허상을 만든다. 이는 제품, 정보, 이벤트, 인사 이동 등 다양한 형태로 설계될 수 있다.


2. 실체 은폐 – 진짜 목적은 보이지 않게 철저히 가린다. 내부적으로는 준비를 철저히 하되, 외부로는 감추어야 한다.


3. 심리 조작 – 상대가 그 허상을 사실로 믿도록 한다. 루머, SNS, 언론 플레이, 시장의 관성 등을 적절히 이용한다.


4. 기습 실행 – 타이밍을 잡고, 실체 전략을 단숨에 밀어붙인다. 이때 반격의 틈을 주지 않도록 신속히 전개되어야 한다. 전략은 타이밍이 성공을 좌우한다.


5. 확산 및 전환 – 일격 이후, 이를 새로운 흐름으로 확장시켜 경쟁사가 회복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든다.


전략은 허를 찌를 때 완성된다

성동격서는 ‘거짓’으로 진실을 만든다. 하지만 그 거짓은 결국 ‘정밀한 설계’와 ‘탁월한 실행력’이라는 진실에 기반할 때만 전략이 된다. 전략이 허세가 아닌 ‘기민한 기만’이 되려면, 결국 그것을 이끄는 리더의 판단, 조직의 민첩함, 그리고 환경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필수다.


한신이 그랬듯, 허를 찌르기 위해선 정면의 무게감을 조작하고, 측면의 기습은 은밀히 준비해야 한다. 전쟁과 시장 모두, 정직함이 아니라 ‘전략적 정직’이 필요하다. 성동격서는 그런 시대의 병법이자, 오늘의 비즈니스 병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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