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
“오늘 하루가 부끄럽지 않았나.”
나는 매일 저녁, 잠들기 전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지곤 한다.
맹자는 부끄러움을 아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의(義)’의 시작이라 했다. 그처럼, 의는 이익보다 앞서야 하며, 감정보다 더 깊어야 한다. ‘옳다’는 말은 형이상학적이고 퍽 주관적이다. 그 뜻을 어떻게 풀어 새겨야 할지 고민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다 몇 년 전, 나는 스스로 ‘의’를 이렇게 정의했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기에 그렇게 하는 것.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義다.
오늘날 우리는 빠르게 판단하고, 계산하며 무엇이 더 효율적인지, 무엇이 더 생산적인지를 따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삶에는 단 한 줄의 기준이 필요하다.
흔들릴지언정 꺾이지 않는 중심줄.
그 줄기는 가지가 덜 나고 더 나는 것과는 상관없다. 뿌리에서부터 이어지는 줄기를 곧고 단단히 세워야만 그 나무는 무너지지 않는다.
내게 있어 ‘의’는 그런 줄기다. 노자를 좋아하던 은사님의 영향을 받았지만,
나는 맹자를 택했다. 다만 맹자의 논리가 닿지 못하는 틈은 노자의 무위, 순자의 예, 한비자의 법, 공자의 예속의로 메운다.
스스로 세운 뜻은 반드시 의로워야 하고 의로움은 반드시 깊은 생각을 동반해야 하며 그 생각은 결국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래서 나의 좌우명은 志思義行이다.
뜻을 세우고, 생각하며, 의로움을 좇아 행한다.
개인의 철학이 가벼워지기 쉬운 시대일수록 나는 더 단단한 말을 붙잡고 싶다.
‘마땅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외면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