序
영업을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하지만 20년 영업 선배들보다 더 많은, 그리고 더 깊은 고객을 만들어나가며
나 나름대로의 철학이 생겼다.
누구나 다 아는 말이지만 영업은 단순한 세일즈가 아니다.
영업은 회사를 만들고 운영하고 관리하는 일련의 모든 단계를 포함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영업은 사실 그 중 '판매'에 국한된 행위가 대부분이다.
영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고객 앞에서 자신의 제품을 잘 설명하는 것은 물론,
기획과 마케팅 능력까지도 필요하다.
전장에서 활약하는 병과가 각 직무 스킬이라면 그것을 통합하는 군軍이 바로 영업이다.
나는 영업을 할 때마다 삼십육계를 생각한다.
삼십육계 줄행랑의 그 삼십육계가 맞다.
단도제가 썼다고는 하지만 정말 누가 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중국 병법 사의 요약본 정도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영업이란 전장에 서다보니 자연스레 고민이 많아진다.
특히나 지금처럼 경기가 얼어붙을 때에는 더더욱 그렇다.
지금처럼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 속에서
우스갯소리를 하는 말이 있다.
삼십육계 줄행랑이다.
본래는 삼십육계의 마지막인 주위상(走為上, 도망치는 것이 상책)을 의미한다.
주위상이라는 말에서 '도망'에 초점을 두고 구전되어온 속담이다.
이렇듯 알게 모르게 삼십육계는 우리 삶 속에 나름대로 깊게 파고 들어있다.
다만 삼십육계를 삼십육계로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손자병법과 동일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그 부록 정도로 생각하거나 요약집으로 생각하는 사람.
심지어 '삼십육계(손자병법을 달리 이르는 말)' 이라고 단 자막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정답이 아니다. 삼십육계는 손자병법과 그 성격부터가 다른 책이다.
똑같이 병법에 관련되어 있지만
손자병법은 최후의 승리를 위한 국가의 경영 및 군의 편제 및 전쟁의 시기 등 대전략 위주의 책이다.
반면, 삼십육계는 손자병법에 비하면 좀 '짜치는' 책이다.
당장 위기를 벗어날 방법을 중심으로 쓰여져있으며
대부분 전략보다는 전술적인 측면에서의 책이다.
달리 말하면 전술적인 측면에서 쓰여진 책이므로 실제 실무나 실전에 더욱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흔히 손자병법을 처음 읽을 때 느끼곤 하는
'뜬 구름 잡는 소리'가 상대적으로 덜하긴 하다.
즉 손자병법이 왕과 대장군이 읽는, 지금의 경영자와 관리자를 위한 책이라면,
삼십육계는 전장에 파견된 현장 지휘관, 지금의 실무 책임자가 보아야 할 책이다.
다만 손무가 저술했다고 알려진 손자병법에 비해 삼십육계는 그 기원이 불분명하다.
중국 남북조시대 유송(劉宋)의 명장인 단도제(檀道濟)의 저작으로 알려져있고
달리 '단공삼십육계'라고 불리기도 한다.
재밌게도 위에 언급한 '삼십육계 줄행랑'의 경우,
남제서에 실린 '단공의 서른여섯 계책 중 주위상이 제일이다.' 에서 유래하였다.
하지만 단도제가 현재 전해지는 삼십육계를 모두 정리했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다.
당장 1장인 만천과해부터 훨씬 후대인 설인귀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는 단도제를 저자로 보기보다도 여러 중국의 이름모를 병법가들이
고금의 사례를 들어 집대성하면서 다듬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주된 이론이다.
이른바 중국 병법의 '집단지성'이 삼십육계인 것이다.
36이란 숫자도 그저 단도제가 가진 많고 많은 병법을 상징하는 숫자에서
어거지로 서른 여섯개를 끼워 맞춘 것이 아닐까 생각되곤 한다.
아마도 이런 저런 병법에 대한 저술들이 모이고,
단도제의 이름을 빌리며 원래 단도제가 썼다는 '삼십육계'를 덮어버린 것이 아닐까.
어찌되었든 삼십육계는 이러한 성격 탓에
중국 전쟁사에서 정수만 뽑은 핵심요약집의 성격이 강하다.
그리고 이제 삼십육계를 바탕으로 그 사례가 된 역사적 배경을 함께 살피고
이를 우리가 실무에서, 특히 영업에서 어떻게 활용해야하는 지에 생각하고자 한다.
그러면 영업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에서의 영업은 다음과 같다.
위에서 보듯 사전적 의미에서의 영업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모든 행위를 일컫는다.
달리 말하면 영리 목적으로 기업을 운영하는 제반 활동을 일컫는 것이다.
영어로는 'Business'다. 하지만 보통 영업하면 'Sales'만을 떠올린다.
정장을 입은 멀쑥한 직원이 자신들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기 위해
현란한 화술과 여러 협상을 진행하는 모습만을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보수적으로 좁혀보더라도 내가 생각하는 영업은 그것보다는 좀 더 광의의 의미를 가진다.
가령 위 사진과 같이 과일 가게를 하나 꾸려야 한다고 해두자.
과일 가게를 열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여러 행위가 동반된다.
먼저 가게의 간판부터 시작해서 인테리어를 꾸며야 하고,
어떤 과일을 어떤 시기에 얼마의 가격으로 제공할 지 고민해야하고
구매를 망설이는 고객을 향해 설득해야한다.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가장 간단한 경우의 수만 해도 저것과 같다.
이때 재고를 관리하거나 세금을 내는 것, 산지에서 과일을 조달하는 등의 행위는 여기에선 생략하도록 하자.
물론 원론적인 의미에서는 이도 모두 영업에 속하는 일이다.
제철 과일을 얼마큼 사서 얼마에 팔 지, 그리고 그 배치는 어떻게 할 지는 흔히 생각하는 기획에 해당한다.
간판과 인테리어, 가격을 할인하거나 깔끔히 청소를 해두는 작업은 마케팅에 해당된다.
마지막으로 거리의 지나는 사람을 대상으로 호객행위를 하거나 망설이는 고객에게 흥정을 통한 협상을 진행하여 구매하게 하는 것은 판매에 해당한다. 어찌보면 흔히 생각하는 좁은 의미의 영업이다.
다시 말해 영업은 기획력과 마케팅적 시각, 협상력을 모두 소화할 수 있어야 하는 직무인 것이다.
물론 이도 좁다면 좁은 의미의 영업이다.
현장을 돌아다니다보면
위 세 가지를 고루 갖춘 영업 직원은 승승장구한다.
저번에 보았을 땐 과장이었는데 오늘 보니 차장으로 승진해있는 경우도 많다.
회사에서 임원까지 오르는 중역을 비롯해, 소위 말해 촉망받는 에이스들의 경우에 해당한다.
반면 영업을 판매로만 생각하는 직원들은 만년과장에 머무른다.
나이를 먹어 겨우 차부장에 진입하는 경우도 있고
차부장에 오른다한들, 위의 에이스 직원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기 일쑤다.
영업은 이처럼 생각보다 만만찮은 직무다.
본인의 세치 혀만 가지고서는 길게 갈 수 없고 단기적인 매출에 이용되는 장기말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영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삼십육계를 보아야 한다.
삼십육계는 승전계, 적전계, 공전계, 혼전계, 병전계, 패전계의 6개 대분류로 나뉘고
그 하위에 6개씩 계책이 마련되어 36계로 정리된다.
이때 승전계는 전장에서 적을 압도하고 있을 때에, 적전계는 적군과 세력이 비슷할 때, 공전계는 적을 공격할 떄, 혼전계는 적이 혼란할 때, 병전계는 적을 밀어낼 때. 마지막으로 패전계는 내가 지고 있을 때 사용되는 계책이다.
전쟁이 벌어지는 전장의 상황은 조그만한 변수로도 늘 큰 승패가 갈리는 곳이다.
그를 위해 각각의 상황에 맞는 계책을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을 36가지 상황 속에 대입하기 위해선
순발력과 통찰력이 필요하다.
억지로 36계를 욱여넣어 사용하고 싶어도 현재 상황에 대한 통찰력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된다.
영업은 판매나 협상만을 두고 보더라도 전쟁과 같다.
특히나 하루하루 달라지는 지금의 환경 속에서도 더더욱 그렇다.
적시의 상황에 계책을 사용하기 위한 통찰력, 즉 객관화된 현재상황에 대한 분석은 직무를 막론하고 중요하다.
36계는 이러한 영업적 판단에 따른 선택을 도와줄 가장 쉬운 무기가 아닐까.
법인카드만 축내며 성과없이 떠도는 세일즈맨부터
조직 구조 개선으로 골머리를 썩는 인사팀, 새로운 전략을 고민하는 기획팀까지
우리 모두 이제 삼십육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