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먼지 한 톨

태산불사토양 고능성기대 하해불택세류 고능취기심

by 유영준
ChSZjGvZU5P-jEGmFOc6P_N8aT72qacDydcG2GOHItF5Wsc7nb406UVEDzUIvHsdqHcgB_FhGWUSkDjHwf7M8w.webp 중국의 태산. 태산이 높다 하되의 그 태산이다.

태산은 한 줌의 흙도 사양치 않아 그 높이를 이룰 수 있었다.

사기 이사열전에 나오는 말이다.

춘추전국시대 말,
중국은 진, 조, 위, 한, 연, 제, 초 등 7개로 쪼개져 생사를 다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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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는 각 국의 신하들이 각자 조국에서 자신의 재능을 펼쳤지만
점차 난세의 승자가 되기 위해 인재라면 국적을 따지지 않았다.
자신의 조국에서 쓰임받지 못한 이들도 스스럼없이 적국의 신하가 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은 서쪽 변방의 진나라였다.
진나라는 중원 왕조들에게 오랑캐 취급을 받고 있었고 영토도 좁고 척박했다.

진나라가 천하에 대하아기 위한 수단은 단 하나, 인재였다.
이미 진나라는 춘추시대에 우나라 출신의 백리해를 통해 국가의 기틀을 다진 경험도 있었다. 그 후 전국시대에 이르러 위나라 출신의 상앙이 변법을 통해 진나라를 강국의 반열에 이르게 하였고 주나라 출신(추정)의 장의는 연횡책을 구상해 진나라를 구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진나라 출신 귀족들에 의해 토사구팽당했는데 이는 진나라 귀족들이 외국인들에게 본인들의 권력을 빼앗길까 두려워해서였다.

이후 진시황이 왕위에 오르고 천하통일이 목전에 다가오자 진나라 출신 귀족들은 조바심이 났다. 천하통일의 공을 독차지 하고 싶었을까.

그러던 차에 사건이 하나 터진다. 진나라의 토목관리였던 정국(BTS 아님)이란인물이 대규모 관개 사업을 제안해 승인받았는데 이 것이 대규모 토목공사를 통해 진의 국력을 갉아먹기 위한 책략임이 밝혀진 것이다. 진나라 귀족들은 이를 명목으로 다른 6국 출신 신하들이 딴 마음을 먹고 있다고 모함하였고 결국 진시황은 진나라 사람이 아닌 관리를 추방하는 '축객령'을 내린다.

이때는 초나라 출신인 이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사는 별안간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간축객서 라는 상소를 올려 축객령에 반대한다.

SvqXyRFnm70PGoTjpf3rkSDGM_k.jpg 진시황과 이사


이때 '태산불사토양 고능성기대 하해불택세류 고능취기심' 이라는 명문장이 등장한다.

의미는 '태산은 흙 한줌도 사양하지 않아 그 높음을 이루고 황하와 바다는 가는 물줄기를 가리지 않아 그 깊음을 이루었다.' 라는 뜻이다.

그는 간축객서에서 앞서 말한 백리해와 상앙, 장의 외에도 범수와 비표, 공손지 등 다양한 외국출신 인재들이 중용되었음을 밝히며 외국출신 신하들을 물리치면 오히려 다른 6국을 돕는 일임을 역설했다.

결국 진시황은 축객령을 철회하는 한편, 이사를 중용한다.

그런데 이후 진시황이 또 다른 외국 출신의 인재에게 흠뻑 빠진다.

gtZC3XfQbYErzRX2pTFb1lPGUMgSvs_zFeVUmOmaCaca8sHRWZ6jgENzeRx7fvU8CbFwlpzdcWQEIwpFvVCQ8Q.webp 한비자는 사상가였지만 동시에 한나라의 왕족 출신이기도 했다.


그 유명한 순자 아래에서 이사와 동문수학했던 한비자이다.

그는 법가의 대표적인 학자로 법으로 백성을 다스려야 하고 군주의 영민함을 지적한 고대 중국의 마키아벨리였다. 진시황의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없었던 인물인데 이사 입장에서는 질투가 좀 났나보다.

그는 요가(인도와 관련없음)라는 인물과 함께 한비자는 한나라의 왕족 출신이니 그의 계책은 모두 한나라를 위한 계책이라고 설득해 한비자를 옥에 가두게 하였다. 그리고 이사는 동문수학했던 한비자에게 독약을 건네고 결국 한비자는 신세를 비관하며 음독자살한다.

그래서였을까. 훗날 이사는 진시황이 죽은 후 환관 조고와 그의 죽음을 은폐한 뒤 유언을 조작, 태자에게 자결을 명하게 해 진나라 멸망의 단초를 제공했다.

결국 그는 진승오광의 난이 벌어져 진나라가 대혼란에 빠지자 저자거리에서 허리가 베여 죽는다. 인과응보일까.

이사가 실제 간축객서에서 한 말은 모두 맞았다. 인재라면 뒷배경이 아닌 그 사람 본연만 보고 판단하는 것이 맞다. 다른 외적 요인에 현혹되면 인재를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다.

그런데 정작 이사는 본인이 위기에 빠졌을 땐 외적 요인은 보지 말고 그 자체를 존중해달라고 사정했으면서 총애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동문을 모함해 죽이게 했다. 심지어 자신을 몰락시킬 뻔한 그 이유로 똑같이.

처음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에는 인재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인재가 오년 뒤, 십년 뒤에도 똑같은 인재라 볼 수는 없다. 더 발전되었을 수도, 더 퇴보되었을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도 능력은 그대로인 인재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인재가 조직을 바라보는 시각이 같을 수는 없다. 어제는 조직을 위해 헌신했던 인재가 오늘은 자신을 위해, 내일은 자신이 만든 조직안의 조직을 위해 일종의 '권신'이 될 수 있다.

미세먼지가 가득하다고 여기저기서 빨간 불이 울려대는 오늘,
회사 안에 쌓이는 먼지 한 줌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고민이 되고 걱정이 앞서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