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만사人事萬史
계명구도(鷄鳴狗盜) 혹은 맹상군(孟嘗君)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맹상군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가. 어릴 적 『열국지』나 『사기열전』을 읽어본 이라면 낯익을 테지만, 대부분에게는 생소한 이름일 것이다.
맹상군은 전국시대의 ‘전국사군자(戰國四君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전국사군자란, 당시 강대국으로 꼽히던 전국칠웅(戰國七雄)의 왕족 중에서도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이들을 이른다. 제나라의 맹상군 전문, 조나라의 평원군 조승, 위나라의 신릉군 위무기, 초나라의 춘신군 황헐 등이 그 예다. 이들은 수많은 식객을 거느리며 나라의 부국강병을 도모했는데, 맹상군이나 평원군 같은 칭호는 우리나라로 치면 광해군이나 연산군처럼 왕족을 가리키는 의미다.
맹상군(전문)은 제나라의 전성기를 이끈 위왕의 손자다. 그의 아버지 전영은 명장 전기와 손빈을 천거한 인물이지만, 정작 아들 전문에게는 냉정했다. 전문은 첩의 아들인 데다, 단오(端午)인 5월 5일에 태어났다. 단오에 태어난 아이는 문설주만큼 자라면 부모에게 해가 된다는 당시의 미신 탓에, 전문이 더욱 소외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단오에 태어난 궁예가 죽을 뻔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맹상군에 얽힌 일화는 많으나, 오늘은 이 중 하나만 다루고자 한다. 맹상군은 식객이 많기로 유명해 적게는 천 명, 많게는 삼천 명이었다는 말까지 전한다. 특히 제나라는 국가 차원에서 학궁(學宮)을 세워 교육을 장려했으므로, 자연스레 인재가 모여들었다. 식객이 너무 많아지자 맹상군은 어느 날 무작위로 두세 사람을 불러 “그대들은 어떤 재주가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두 사람은 각각 “개 흉내를 잘 낸다”와 “닭 울음소리를 흉내 내는 재주가 있다”라고 답했다. 이를 들은 다른 식객들은 학문이 깊거나 무예에 능한 이가 아니니 비웃었으나, 맹상군은 “언젠가 쓸 날이 있을 것이다”라며 그들을 내치지 않았다. 그렇게 맹상군의 식객 수는 점차 늘어만 갔다.
당시 중국에서 가장 강성했던 나라는 진(秦)나라였다. 진나라 소양왕(昭襄王)은 맹상군과 그의 식객들이 훗날 제나라의 강력한 힘이 되어 진나라를 위협할 수 있다고 여겨, 그를 초청해 등용하려 했다. 그러나 진나라 신하들은 “맹상군은 제나라 왕족인데 과연 진나라를 위해 충심을 다하겠습니까?”라고 소양왕에게 충고했고, 결국 소양왕은 맹상군을 진나라로 불러들인 뒤 가둬버렸다.
맹상군에게는 사지에서 살아남을 방도가 없어 보였다. 이에 소양왕이 총애하는 후궁 연희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연희는 희귀한 흰 여우털로 만든 옷인 호백구(狐白裘)를 요구했다. 맹상군이 진나라에 올 때 호백구를 가져왔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호백구는 이미 맹상군이 진나라 소양왕에게 선물로 바친 뒤였다. 맹상군은 모든 희망이 끊어졌다고 여기고 체념했다.
그때 한 식객이 나서 “내가 호백구를 다시 가져오겠다”라고 말하더니, 다음날 실제로 호백구를 되찾아왔다. 놀란 맹상군이 “어떻게 가져왔느냐” 묻자, 그 식객은 “개 흉내를 잘 내어 들키지 않고 훔쳐왔다”라고 답했다. 바로 전에 모두가 비웃었던 ‘개 흉내 내는 식객’이었다.
연희의 도움 덕분이었는지, 맹상군은 연금에서 풀려났다. 그러나 소양왕의 마음이 언제 바뀔지 알 수 없으므로 맹상군은 서둘러 제나라로 돌아가고자 했다. 전국시대에는 관문을 지날 때마다 통행증이 필요했는데, 이를 지참하지 못하면 벌금이 아니라 목이 날아가는 시절이었다. 이번에도 식객의 재능이 빛났다. 공문서 작성과 위조에 능한 사기꾼 출신 식객이 가짜 통행증을 만들어냈다. 맹상군 일행이 진나라 국경 함곡관(函谷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경비가 삼엄한 함곡관은 해가 뜨기 전에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맹상군은 소양왕이 보낸 추격대가 따라오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미 두 번이나 식객들의 도움으로 살아났건만, 이번만큼은 죽음을 피하기 어렵다고 여긴 맹상군이 탄식하자마자, 어디선가 닭 울음소리가 세 번 울렸다. 그러자 인근 마을의 수탉들이 일제히 “꼬끼오”하고 울어대기 시작했다. 함곡관의 수문장은 날이 샌 줄 알고 성문을 열었다.
분명 한밤중이었는데도 닭 울음소리에 문이 열린 것이다. 맹상군이 달리는 말 위에서 뒤를 돌아보니, 그 개 흉내를 내던 식객 옆에 닭 울음소리를 흉내 냈던 식객이 함께 씩 웃으며 달아나고 있었다.
그들은 맹상군을 따라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진나라까지 갔고, 마침내 맹상군을 죽음 직전에서 구해냈다. 맹상군을 살려낸 것은 무예에 능한 식객도, 학문이 깊은 식객도 아니었다. 모두가 비웃었던,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는 보잘것없는 재주를 지닌 식객들이었다.
이름이 전하는 식객으로는 ‘풍환’이라는 인물이 있으나, 이는 다른 기회에 살펴보기로 한다. 만약 맹상군이 식객들과 같은 생각으로, 저 세 명을 그저 식충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해 내쫓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맹상군은 삼천이나 되는 식객을 거느리고도 먼 타국 땅에서 허망하게 최후를 맞았을 것이다. 그러나 맹상군은 그들의 작은 재주도 놓치지 않았고, 덕분에 진나라에서 탈출하며 목숨을 구했다.
조직을 운영하다 보면 이른바 ‘월급루팡’이라 불릴 만한 직원이 종종 보인다. 졸기도 하고 쇼핑만 하는 모습을 볼 때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 우리 팀에도 저런 이가 있지” 하고 짜증이 치밀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마다 저마다의 재주가 있다고 믿는다. 다만 그 재주를 펼칠 기회를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관리자가 지녀야 할 덕목 중 하나는, 함께 일하는 이들이 그 기회를 포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격려하며 돕는 일이다.
물론 조직원의 직무가 세일즈인데, 자신감도 화술도 부족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당신은 세일즈에 맞지 않으니 나가라”며 해고할 수는 없다. 적어도 그 직원이 가진 다른 재능은 무엇인지, 혹은 다른 부서에서 해당 재능을 살릴 수 있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 회사가 아니라 다른 회사나 다른 분야에서 그 재능이 꽃필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해주어야 한다.
너무 번거롭고 고된 일인가. 알고 있듯이, 사람을 관리하고 인사를 다루는 일은 가장 어렵고 괴로운 과업 중 하나다.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보아도 쓸모가 없어 보인다면, 지금이야말로 내 안목을 훈련해야 할 때다. 어쩌면 언젠가, 월급루팡이라 여기던 직원이 결정적인 순간에 “꼬끼오” 하고 새로운 새벽을 열어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