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에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오르다》-4화

4화 – 고로셉, 얼음과 바람의 마을

by 이승헌

4화 – 고로셉, 얼음과 바람의 마을


고로셉.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왠지 모르게 단단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발음 자체가 마치 부서진 바위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 같았고,

씹히는 얼음 조각처럼

차고 뾰족한 울림이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마주한 고로셉은

그 이름 그대로,

모든 것이 딱딱하고, 조용하고, 차가운 마을이었다.

해발 5,100미터.

이곳에선 이제

산소 부족은 농담이 아니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마치 가슴 한복판이 납덩이처럼 내려앉는 느낌.

폐는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지만,

공기는 자꾸만 허공 속으로 빠져나갔다.

몸은 분명 내 것이었지만,

낯설었다.

손끝은 얼었고,

다리는 무겁게 땅에 박혀 있었다.

내 몸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빌려온 것 같은 불완전한 감각.

걸음은 자주 멈췄다.

무릎이 아픈 것도 아니고,

근육이 지친 것도 아니었다.

숨이,

그저 숨이 가빠와서.

숨 하나 들이쉴 때마다

온몸이 다 비워지는 느낌.

그럴 때면 나는

눈을 감고 바람을 느꼈다.

고산의 바람은 날카로웠지만,

이상하게도 따뜻한 기억처럼 다가왔다.

나는 문득 상상했다.

수천 년 전,

이 바람이 누군가의 뺨을 스치고 갔을지도 모른다고.

그 누군가는 나처럼 길을 걷다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자,

불현듯 외롭지 않았다.

이름도, 얼굴도 알 수 없는

아득한 시간 속 누군가와

아주 잠깐 연결된 기분이었다.

고로셉의 마을은 작았다.

말수도 적었고,

사람들마저 침묵에 물든 듯 조용했다.

하늘은 가까웠고,

땅은 꽁꽁 얼어 있었다.

하지만 진짜 인상 깊었던 건

밤이었다.

고로셉에서의 밤은

‘조용함’이 아니었다.

그건 무언가 멈춰버린 듯한,

마치 감정들조차 얼어붙은 정적이었다.

침낭 속에 몸을 숨기고,

두 겹의 양말을 신었지만,

발끝은 여전히 싸늘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싸늘함은 더 이상 나를 위협하지 않았다.

차가운 바람도,

단단하게 굳은 얼음도,

더는 나에게 공포로 다가오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 속에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마치 내가

이 고요의 일부가 되어가는 것처럼.

혼자였다.

방 안엔 나 혼자뿐이었고,

밖에도 인기척은 없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외로움은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익숙했다.

마치 오래전 떠나보냈던 친구를

조용히 다시 만난 것처럼.

그 외로움은 나를 밀어내지 않고,

그저 내 옆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

말없이,

그러나 따뜻하게.

그날 밤,

나는 조용히 내게 말을 걸었다.

“생각보다,

너 괜찮은 사람일지도 몰라.”

내가 나에게 말을 건넨 건

그 순간이 처음이었다.

그 한마디가,

얼마나 오랫동안 내 안에 맴돌았는지 모른다.

그 밤,

고로셉이라는 얼음 마을의 침묵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조금 더 알아갔다.

그건 어떤 목적지보다 귀한 발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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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 예고 – [5화] 베이스캠프, 그곳에 닿았을 때

“나는 목적지에 도착한 순간, 오히려 묘한 허전함을 느꼈다.

그곳은 ‘끝’이 아니라, 나를 다시 세우는 ‘시작점’이었다.”


매주 수요일 10시에 연재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20대의 청춘 스토리 계속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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