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존재다. 다만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그 모든 면을 살피며 시간을 들여 그들을 이해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이해하는 대신, 사람을 처리하는 방식을 택한다. 빠르게 판단하고, 그 판단에 대한 책임은 최소화하며, 무엇보다 설명 가능하게 만드는 방식.
의외로 방법은 단순하다. 사람에게 몇 개의 태그만 붙이면 된다. 정확할 필요도 없다. 그럴듯하기만 하면 충분하다.
가장 쉬운 태그는 늘 출신 학교다.
“박 대리, 어디 나왔어?”
“아, 거기. 김 과장 나온 데.”
그 ‘아’ 안에는 놀람도 감탄도 없다. 대신 ‘분류 완료’라는 신호가 들어 있다. 이제 박 대리는 '김 과장 수준에서' 어느 정도 설명 가능한 사람이 된다.
며칠 지나면 전공으로 한 번 더 쪼갠다. 같은 학교여도 전공이 다르면 또 다르다.
“그 전공이야? 김 과장이랑은 다르네.”
“그래?”
그 순간, 박 대리는 김 과장과는 다른 분류체계로 옮겨진다. 당사자가 인식하기도 전에, 박 대리에 대한 프레임은 이미 상당 부분 형성된다.
다음은 MBTI다. 의외로, 다들 MBTI에 있어서 꽤 진지하다.
“박 대리, E야?”
“역시.”
‘역시’라는 말은 참 편리하다. 모든게 이해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회의에서 박 대리가 말을 조금만 많이 해도, 곧장 설명이 붙는다.
“역시, E라서 그래.”
사람은 그대로인데, 그에 대한 프레임만 점점 촘촘해진다. 그리고 기준은 서서히 일상으로 내려온다. 사는 동네, 결혼 여부, 자녀 유무.
“아, 아직 싱글이야? 그러면 생각이 다르지.”
“그 동네 살아? 어쩐지…”
몇몇은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까지의 정보만 놓고 보면, 우선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쪽으로 분류해도 되겠다는 판단이다.
그러다 어느 날, 박 대리가 다니던 전 회사 이야기가 나왔다.
“그 사람 경력직이야? 어디 출신이야?”
“아, 거기.”
이번 ‘아’는 조금 다르다. 이전까지만 해도 같은 편이던 사람들이 조용히 반대편으로 이동한다.
“우리는 공채 출신이잖아.”
“그치. 우리는 좀 다르지.”
그날 이후 깨달았다. 기준은 필요하면 얼마든지 더 쪼개질수 있다는 걸.
성별, 근속 연수, 전 소속 팀, 취미, 주량, 유학 여부 (어디였는지까지) 등등...
그리고 태그가 충분히 쌓였다 싶으면, 그 위에 프레임을 그럴듯하게 만들어주는 말들이 붙는다. 성향 분류나, 성격에 대한 짧은 평가들이다.
“해외에서 박사 했고, 경력직이라더라.”
“그래서 그런지 조직에 크게 묶일 생각은 없어 보이던데.”
“영업도 해봤고, 완전 E라던데.”
“어쩐지 말만 많아서 회의가 길어지더라.”
“결혼 안 했고, 애도 없다잖아.”
“그러니까 아직 본인 일 위주지.”
그 말들은 새로운 관찰의 결과라기보다, 이미 정해진 프레임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해주는 근거에 가깝다. 우리가 회사에서 갖게 되는 사람에 대한 이미지는, 대개 그런 방식으로 완성된다.
복잡하지 않고 예측 가능한 사람.
몇 개의 단어로 설명하기 쉬운 사람.
어쩌면 우리가 회사에서 원하는 건 사람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아니라, 굳이 시간을 들여 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 입체적으로 알 필요가 없어지는 상태,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느끼는 편리함.
나는 이런 현상을 어디선가 ‘마이크로 프레임’이라고 부르는 걸 본 적이 있다. 사람을 하나의 인물로 기억하기보다, 여러 개의 분류 기준 위에 나눠진 프레임으로 인식하는 방식.
그래서 가끔 나는 생각한다. 나는 회사에서 어떤 태그들을 달고 있을까. 그리고 나는, 어떤 프레임으로 사람들을 보고 있었을까.
나에게 그 프레임은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였을까, 아니면 사람을 굳이 보지 않아도 되게 만들어주는 핑계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