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을 이야기할 때, 가장 핵심적인 단어는 '비교'다.
내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고 불안할수록, 사람은 타인을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자신을 지키려 한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비교를 통해 상대를 낮추고 그 위에 서려는 이유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불안을 가장 많이 품고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있다.
좋은 학교, 좋은 회사.
많은 기대에 부응해왔고, 수많은 경쟁에서 이겨왔으며, ‘성공해야 할 이유’와 ‘성공해온 경로’가 비교적 '명확'하고 '유사'한 사람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공간에는, 항상 나보다 여러 면에서 나은 사람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경쟁 체제 속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들에게 어느 순간부터 ‘패배’의 감각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결국 이런 결론에 닿게 된다.
모두가 가고 싶은 학교에서 공부할 수록, 그런 회사에 다닐수록, 자존감이 낮은 사람을 만날 가능성은 오히려 높아진다.
잘 관찰해보면 그들의 언어에는 공통점이 있다. 비교에서 출발한 평가다. 직장 상사에게서, 동료에게서, 심지어는 연인과 같은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서조차 이런 말을 반복해서 듣게 된다.
“남들은 이 정도쯤은 다 해.”
“그 학교 나와서 그 선택은 좀 아쉽지 않아?”
“비슷한 사람들은 이미 더 앞에 가 있던데.”
“그걸 성과라고 말하긴 어렵지.”
문제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의 이런 말들이 종종 충고, 조언, 가르침처럼 들린다는 사실이다. 현실적인 이야기, 솔직한 피드백, 냉정한 팩트처럼 포장된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난 뒤의 감각을 잘 곱씹어본적이 있는가. 힘이 나기보다는 나를 방어하고 싶어지고, 나를 변호하고 싶어지고, 괜히 내 선택과 배경, 가족, 상황에 대해 변명하고 싶은 느낌.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내가 예민한 건가?’ 라는 생각, 내가 틀렸나라는 자기 의심, 어쩔 수 없잖아라는 자기 변명을 반복하게 되고 결국 이런 결정을 하게 된다.
'그래, 내가 부족한 것 같으니 숨기기 위해 가면을 쓰자.'
'나도 똑같이 남을 깎아내려서 나를 지켜야겠다.'
잘 모르지만 아는 척. 없지만 있는 척.
약하지만 강한 척. 부족하지만 충분한 척.
그리고 그 다음 단계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모르는 사람 타박하기. 없는 사람 무시하기. 약한 사람 묵살하기. 부족한 사람 지적하기.
누가 정했는지 알 수 없는 기준을 정답처럼 들이밀며 사람을 재단하고, 서열을 만들려고 애쓰게 된다. 그건 아마도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본질적으로 약해서라기보다는, 그 말이 누군가의 불안에서 출발해 '전이'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존감이 건강한 사람은 조언을 하더라도 상대를 작게 만들지 않는다. 그들의 말에는 비교가 없다. 배경을 재단하지 않고, 선택하지 않은 삶을 대신 평가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그들의 말을 듣고 나면 “그래도 나는 나로 괜찮다” 는 기분 좋은 감각이 남는다.
반대로, 이런 신호가 느껴질 때가 있다.
말 뒤에 항상 순위가 따라붙고,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계속 해명하고 있으며, 특정한 사람 앞에서만 유독 스스로가 작아진다. 감정보다 태도를 먼저 관리하고 있다.
이건 개인의 미성숙 때문이 아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 개인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고, 이미 관계 안에서 균형이 기울어지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변 곳곳에 숨어 있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을 분별할 필요가 있다. 그들을 무시하거나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의 말에 인생의 기준을 맡기지 않기 위해서다. 그 사람의 불안은 내 능력이 아니고, 내 가치도 아니다. 그들의 기준에 맞는 가면을 쓰기 시작하면, 그 관계는 이미 나에게서 너무 많은 것들을 소진시킨다.
그래서 누군가의 말이 마음을 흔들 때면 이 질문 하나를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이 말은 나를 드러내게 만드는가, 아니면 나를 숨기게 만드는가.”
숨기게 만든다면, 그건 고쳐야 할 나의 문제가 아니라 거리를 조절해야 할 관계의 신호다.
평가받기 위해 사는 삶은, 옳고 그름이 분명하지도 않은 타인의 기준에 맞추느라 불필요한 자기 변명만 늘어난다. 그 과정에서 소모되는 감정의 대부분은 사실이 아니라 누군가의 불안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럴 필요는 없다. 그 불안은 우리가 짊어질 몫이 아니다.
그들이 뭐라고 하든, 기준은 이미 내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