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클라쓰의 스토리 구도와 캐릭터
15회에서 박새로이는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왔다. 캐릭터가 이야기 안에서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시련 하나를 이겨낸 셈이다. 그런데 새로이에게 자기의 죽음만큼이나 힘겨운 시련이 또 닥쳤다. 이번엔 연인의 죽음을 막아야 하는 새로이. 연인을 위해서 죽음을 각오하긴 쉬운 게 아니다. 15회는 새로이의 부활을 섬세하게 다루며 마지막 장면의 임팩트를 키웠다. 15회는 그 어느 때보다 박새로이라는 캐릭터가 두드러진 회차가 아닌가 싶다.
'몇 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생이여, 다시'라는 니체의 말도 이서의 입에서 등장했는데, 이태원 클라쓰의 스토리 구도를 직설적으로 표현한 문장이다. 마지막 회 전까지 이태원 클라쓰는 무엇을 쌓아 올렸을까? 캐릭터성과 스토리 구도 분석을 통해 이를 알아보려 한다.
배우 박서준이 연기하는 박새로이는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다. 새로이의 원동력은 아버지의 복수다. 원초적이고 공감받기 쉬운 동기지만 이태원 클라쓰는 방영 첫 주차부터 확실하게 동기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배우 손현주의 호연과 함께 웹툰의 오토바이 대신 차량 교통사고로 각색하여 장면의 비극성을 더 극적으로 만들었다. 이야기를 처음 접한 시청자들의 분노 게이지가 더욱 올라간 것은 당연지사다. 14회 후반과 15회 초반엔 새로이가 차에 치이는 장면을 첫 주차의 내용과 오버랩하며 최종 국면 직전 캐릭터의 동기를 더욱 확고하게 만든다. 새로이의 목표는 국내 요식 업계 1위가 되어 장가를 박살 내는 것이다. 이때까진 둘의 사랑 이야기는 장가 박살이라는 목표와 융합되지 못했는데, 15회에 이르러 드디어 두 이야기가 하나가 된다. 장근원이 이서를 납치하는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구출하는 것이 곧 장가를 박살 내는 일과 상당히 근접해졌다.
새로이는 이것저것 재지 않고, 자기 사람을 확실히 챙기며, 함부로 사람을 의심하지 않는다. 정갈한 앞머리만큼이나 바른생활을 하고 있다. 새로이는 주변 사람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고, 동료가 바른 길을 살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게도 만든다. 이런 새로이의 성격은 한 대의 불도저로 비유할 수 있다. 더 자세히 비유하자면, 이것저것 덧대어 개조한 몬스터 트럭이 아니라 번듯하고 깨끗한 불도저. 캐릭터에 흠이 없으면 재미없는 캐릭터가 되기 쉬운데, 새로이의 약점은 고등학교도 제대로 졸업 못한 전과자 출신이라는 점이다. 이 흠을 극복하는 부분이 반전이 될 것이다. 이태원 클라쓰는 이 부분에 있어서 조력자와 함께 이미 재력을 갖췄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이 사실을 처음 접할 땐 반전의 효과를 얻을 수 있으나 극복 과정이 생략된 느낌이라 부족한 점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15회에서 끄떡없어 보이던 새로이가 내적으로 많이 힘들었다는 사실을 새로 시청자에게 알려준다. 강한 캐릭터의 눈물은 마음이 더 가는 법이다. 힘듦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새로이는 얼마나 멋진 캐릭터인가.
배우 김다미가 연기하는 조이서는 일반 상식으로는 행동을 예상하기 힘들어서 흥미를 유발하는 캐릭터의 좋은 예다. 극 중에서 이서는 상큼한 소시오패스로 묘사된다. 소시오패스 앞에 어울리지 않는 '상큼'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이 캐릭터가 얼마나 비전형적이지 잘 보여준다.
이태원 클라쓰는 시청자에게 직접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편이다. 스토리 구도부터 캐릭터의 목표까지 캐릭터의 대사로 표현하는데, 이서도 자신의 동기와 목표를 대사로 직접 말한다.
"나는 너무 잘났기에 사랑, 성공 모두 이뤄낼 수 있어. 그러니까 잠시만 슬퍼하고 있어 엄마. 그저 그런 사람이 아닌 대단한 남자로 만들 거야. 내가."
이렇게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은 시청자들에게 통쾌감을 준다는 드라마의 특성도 강화할 수 있고 시원한 캐릭터의 성격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드라마를 위한 좋은 선택이었다.
'상큼한 소시오패스'는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가하고,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이용해 먹는 '소시오패스지'만 새로이 앞에서는 수아의 대사처럼 '상큼이'가 되는 이서의 캐릭터성은 15회에서도 이어진다. 15회, 장근원에 의해 창고에 갇힌 이서가 우는 모습을 보고 '이러면 캐릭터 붕괴 아닌가'라고 생각했으나 장근원이 나가자마자 그것이 장근원이 원하는 표정을 보여준다는 계략임이 밝혀진다. 이서의 캐릭터는 조금씩 변화할 뿐 여전히 핵심 캐릭터성은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서의 캐릭터 변화의 핵심은 이서 캐릭터의 약점과도 관련이 깊다. 이서의 약점은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의 마음을 몰라준다는 것이다. 둘의 러브라인은 15회에 이르러 드디어 확정 짓게 되는데, 둘의 바람과는 다르게 둘은 다른 곳에 있는 상태다. 쌍방향의 마음을 확인한 둘이 만날 16회가 더욱 기다려진다.
이태원 클라쓰에서 박새로이와 조이서가 존재감을 뿜어낼 수 있던 건 스토리 구도가 확실했기 때문이다. 스토리 구도가 확실히 잡혀있으니 캐릭터는 엇나갈 염려 없이 자유롭게 매력을 발산할 수 있었다. 광진 작가와 제작진의 계획은 16화짜리였다.
새로이처럼 확고한 목표를 향해 불도저처럼 달리는 캐릭터가 주인공인 이야기는 주로 주인공에게 끊임없이 시련을 겪게 하는 플롯을 가지고 있다. '끄떡없다'는 캐릭터에게 얼마나 끄떡없을지 한 번 보는 일은 긴장감은 발생시킨다. 이는 초반부에 완벽했다. 다시 조이서의 대사를 가져와 보자.
"전학 간지 5분. 퇴학. 아버지 교통사고 사망. 가해자 은폐, 살인 미수, 2년 징역, 전과자, 7년 간 모아 차린 가게의 영업정지. 그럼에도 끄떡없다."
갓 전학 온 고등학생, 전과자 출신의 작은 가게 사장에게 요식업계 1위의 인간성 없는 재벌이 내리는 시련은 무자비하다. 하지만 시련이 크면 클수록 긴장감도 더 커지는 법. 마치 계란을 점점 더 큰 바위로 찍으면서 계란이 깨지는지 안 깨지는지 보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이 플롯은 중반부에 잠시 위기를 맞이한다. 앞서 언급한 새로이의 반전이 독이 되었다. 이미 상당한 재력을 보유한 새로이는 더 이상 계란이라고 부를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시련의 규모는 오히려 초반부보다 스케일이 크다. 단밤 영업 중단을 위해 장 회장은 서울 이태원의 건물을 사버리고, 다른 투자 회사를 통해 십억 단위의 투자 번복으로 새로이를 위기로 몰아넣는다. 그러나 새로이는 더 이상 작은 존재가 아니다. 건물에서 내쫓길 신세면 다른 건물을 사서 위기를 극복하는 캐릭터를 어떻게 악당이 곤란하게 할 수 있을까? 장근원도 이서의 녹음 파일 한 방에 아웃되면서 장근수가 장근원의 역할을 대신하지만 새로이에게는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 IC가 성장한 이후에는 더 심하다. 복수의 날만을 기다려 온 새로이인데 장 회장이 새로이와 대면하기도 전에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주인공의 대적자가 사라지면 안 되기에 새로이는 대적자에게 전화를 해서 그를 살린다. 내가 살려줘야만 살아있는 적이라면, 김이 좀 빠지지 않는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장 회장의 카리스마가 많이 떨어져서 보는 내내 걱정이었다. 새로이가 신경 쓰인다고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주주총회에서 노려보는 게 다고, 아들들은 자꾸 말을 안 듣는다. 캐릭터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죽음의 시련은 오히려 장근원이 새로이에게 부과한다. 이 추세면 최종 빌런 역도 아들에게 빼앗기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데 15화, 광진 작가와 제작진은 색다른 방법으로 장 회장이라는 노인 캐릭터의 카리스마를 되살렸다. 병든 노인은 예전만큼 힘을 과시할 순 없지만 더욱 치졸하고 잔꾀를 부리는 악마가 될 수는 있다. 15회 마지막 부분에서 장 회장은 새로이에게 최초의 질문으로, 가장 작은 몸집의 시련으로, 그러나 그의 본질을 담고 있는 것으로 맞선다. 배우 유재명의 연기도 매우 뛰어나다. 이 장면을 통해 이태원 클라쓰는 16화에서 클라이맥스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앞으로 단 한 회만이 남았다. 웹툰을 보지 않아서 아직 결말을 모르지만, 각성한 '끄떡없는' 캐릭터가 어떤 방법으로 연인의 죽음을 막아낼 수 있을지 기대가 정말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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