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중>, <블링크>, <우주인 조안>, 그리고 <만신>
1. 프로그램 소개
근미래 대한민국,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까요? 기술의 발전에 따라 사회가 어떻게 변화할까라는 질문에 저마다의 상상력으로 답하는 여덟 편의 이야기인 SF8은 한국에서 보기 힘든 SF물입니다. 해외 SF물은 우리가 쉽게 상상 가능하죠. 멀게는 영화 <매트릭스>, <터미네이터>부터, 가까이에는 넷플릭스의 <블랙미러> 시리즈까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최신 기술에 관심이 많은 대한민국에서 SF물 제작이 자주 이뤄지지 않았던 건 아쉬운 일입니다. 그런 와중에 MBC와 한국영화감독조합, 그리고 국산 OTT 웨이브가 힘을 합쳐 만들어낸 SF8은 눈길을 사로잡는 프로젝트입니다. SF8의 여덟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한국형 SF의 시작점이 될 수 있을까요? SF8 작품 가이드 리뷰를 통해 여덟 단편 중 네 편을 여러분께 소개도 하고, 개인적인 감상도 짧게 나눠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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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추천과 감상의 기준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SF8을 보며 주된 감상의 기준으로 삼았던 건 ‘과학 기술이라는 소재가 작품의 주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지’, ‘인상적인 비주얼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는지’였습니다. SF를 표방하면서 과학기술이 수박 겉핥기처럼 지나가는 작품이라면 굳이 SF로 만들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고, 기발한 상상력을 무기로 하는 SF에서 상상력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풀어냈는가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작품 하나하나를 살펴볼까요?
첫 번째_ 간호중
요양병원에 10년째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엄마와 엄마를 간병하다 지쳐버린 딸이 있습니다. 둘 모두를 보살피던 간병 로봇 ‘간호중’은 두 사람 중 누구를 살려야할지 고민합니다. 민규동 감독, 이유영, 예수정 주연의 <간호중>은 김혜진 작가의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를 원작으로 합니다. 간병인의 부담을 덜기 위해 간병 로봇이 발명되었지만 여전히 이어지는 간병인의 심적 고통, 빈부격차에 의해 달라지는 간병 로봇의 기능, 신이 사랑으로 인간을 만들었으면 인간은 사랑으로 로봇을 만들었나에 대한 질문. SF8 시리즈의 기획을 맡은 간판답게 민규동 감독은 시리즈의 시작을 잘 끊었습니다. 프로그래밍 된 로봇이 자의식을 가지고 예측하지 못한 행동을 한다는 이야기는 완전히 새로운 소재는 아니지만 이 단편은 관객이 끝까지 몰입할 수 있도록 합니다. 주조연의 연기도 준수합니다. 특히 이유영과 염혜란 배우는 간병인과 간병 로봇 1인 2역을 맡았는데, 인간과 로봇의 차이가 명확하지만 보는 사람이 거북하지 않게 표현해냈습니다. 스포 없이 개인적인 베스트 장면 두 개를 꼽자면 염혜란 배우가 마지막으로 나오는 장면과 이유영 배우가 연기하는 간병인과 로봇이 한 씬에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입니다. 모든 걸 고려한 만타 별점은 3.5점입니다.
두 번째_ 블링크
어린 시절 자율 주행자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이후 인공지능보다 자신의 판단을 더 신뢰하는 형사 ‘지우’가 뇌 속으로 인공지능 신입 형사 ‘서낭’을 받아 한 사건을 해결해 갑니다. 한가람 감독, 이시영, 하준 주연의 <블링크>는 김창규 작가의 <우리가 추방된 세계> ‘백중’을 원작으로 합니다. 내 머릿속의 인공지능 형사이기 때문에 자기만 볼 수 있다는 점, 그러다보니 인공지능하고 대화하다보면 귀신하고 대화하는 사람처럼 보인다는 점이 소소하게 귀여운 단편이었습니다. 살인자와 대적한다는 메인 플롯의 구성이 그렇게 촘촘하지는 않지만 인공지능 형사의 데이터망 잠입 등의 장면이 꽤 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단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액션입니다. 이시영 배우와 하준 배우는 액션 연기를 잘 소화해냈는데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는 건 살인자와의 액션 씬입니다. 몰입도 높은 액션 연기는 스토리 상 액션의 합이 정말 잘 짜여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인물이 싸움을 잘하는 설정이면 상대 가드가 풀렸을 때 제대로 펀치를 날릴 수 있어야 하고, 인물이 킬러라면 목표물을 정확히 공략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야 한 것처럼요. 하지만 살인자와의 액션 씬은 유독 액션의 합이 어긋나 있는 부분이 많았어요. 살인자의 인공지능과 싸우는 인공지능 형사, 현실에서 살인자와 싸우는 형사의 연계 플레이가 정말 중요한 장면인데 잘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비주얼적으로 살인자의 뇌 속에서 살인자의 인공지능과 싸우는 하준 배우는 <매트릭스>의 네오와 스미스 요원의 싸움, <나루토>의 카카시와 오비토의 싸움을 생각나게 해 인상 깊었습니다. 모든 걸 고려한 만타 별점은 3점입니다.
세 번째_ 우주인 조안
미세먼지로 뒤덮인 세상, 인류는 C와 N 두 등급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태어날 때 고가의 항체 주사를 맞은 C들은 100살까지 살고, 그렇지 못한 N들은 30살까지 살게 되었습니다. C와 N은 사는 거주 구역도, 입는 청정복도 다릅니다. 스물여섯 살이 되도록 자신이 C인줄 알았던 이오는 태어날 때 병원 측의 착오로 항체 주사를 맞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되고, 예전과는 다른 행동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윤정 감독, 김보라, 최성은 주연의 <우주인 조안>은 김효인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하루아침에 C에서 N이 되어버린 이오가 학교 유일의 N, 조안을 만나 자유분방한 N의 방식을 알아가는 모습이 낭만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저도 생각했던 거지만, 반응 중에 <라라랜드>가 생각난다고 하는 분들이 있어서 괜히 반가웠습니다. 아예 수명이 정해져있다 보니 화려한 색의 옷을 입으며 자유롭게 원하는 것을 하며 사는 조안의 모습은 LA의 미아와 세바스찬을 생각나게 합니다. <우주인 조안>에는 반전이 하나 있는데요, 예상하기 쉬워서 큰 충격을 가져다주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까지 나아가는 감정선이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어서 시청이 즐거웠던 단편이었습니다. jtbc 드라마 <스카이 캐슬>로 인지도를 얻은 김보라 배우 못지않은 최성은 배우의 호연을 보니 최성은 배우의 다음 작품도 살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이오와 조안이 천문대에서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는 장면입니다. <라라랜드>의 천문대에 비하면 <우주인 조안>의 천문대는 턱없이 좁고 작지만, 그 공간에서 감정은 오히려 더 몽글몽글 피어오릅니다. 모든 걸 고려한 만타 별점은 4점입니다.
네 번째_ 만신
인공지능 운세 서비스 ‘만신’의 적중률이 백 퍼센트에 근접하게 되면서 한국엔 ‘만신’이 예언을 해준다며 신격화하고 맹신하는 종교까지 생겼습니다. ‘만신’ 때문에 동생이 목숨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선호와 ‘만신’ 때문에 자신이 목숨을 건졌다고 생각하는 가람은 ‘만신’의 개발자를 직접 찾아 나서게 됩니다. 노덕 감독, 이연희, 이동휘 주연의 <만신>은 앞선 단편과 달리 원작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노덕 감독과 함께 한분외 작가가 쓴 극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소리겠죠. 백 퍼센트에 근접한 적중률의 운세 서비스, 정말 미래에 이런 어플리케이션이 한국에 나온다면 많은 사람들이 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신’이 정말 실생활에 깊숙이 스며들었다는 걸 알 수 있었던 좋은 장면이 초반 오프닝 시퀀스부터 나옵니다. 한 아나운서가 오늘의 운세 안 좋다고 출근하지 않아 다른 아나운서가 자연스럽게 라디오를 진행하는데요, 운세 안 좋다고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회사가 있을 정도라는 게 실감이 빡 났습니다. ‘만신’이 하나의 종교가 되어 ‘만신’을 믿는 교회가 있다는 점도 정말 사실적으로 묘사되었고요. <만신>을 보면서 극본이 정말 정석적으로 짜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신>은 확연히 대비되는 두 주인공의 교차를 적극적으로, 또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단편이죠. 이연희 배우와 이동휘 배우는 자신의 장기를 이 단편에서도 충분히 활용합니다. 어딘가 화난 이연희와 능청스러운 이동휘는 우리가 많이 본 이연희와 이동휘의 모습이지만 <만신>의 미술과 만나 캐릭터가 제 배우를 만난 것처럼 느껴집니다. 켜켜이 쌓아올린 추적에 비해 밝혀지는 ‘만신’의 정체가 급작스럽게 설명되고 마는 아쉬운 점이 있지만 ‘추적’과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시청자들이 좋아할 요소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인물과 배경이 잘 융화된 인상적인 SF만의 비주얼은 개인적으로 없었어요. 그렇지만 현실 밀착형 소재와 정말 이럴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만신>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만타 별점은 3.5점입니다.
SF8의 여덟 작품 중 네 작품을 저와 함께 살펴보셨는데요, 다음 네 작품은 다음 게시물에서 이어 소개하고 감상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SF8은 8월 14일 MBC 방영 예정이지만 먼저 보고 싶으신 분들은 웨이브에서 미리 모든 편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앞으로 웨이브가 이런 도전적이고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계속해줘서 얼어붙은 문화 시장의 쇄빙선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