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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타 Aug 02. 2020

한국형 SF 프로젝트 SF8 단편 가이드 리뷰 2부

<하얀 까마귀>, <증강 콩깍지>, <일.사.없>, 그리고 <인간 증명>

1. 프로그램 소개

웨이브, MBC, 그리고 한국영화감독조합이 합작한 대한민국 SF물 모음집 SF8은 MBC 방영 이전 웨이브에서 독점 공개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SF8 단편 가이드 리뷰 1부에 이어 1부에서 소개하지 못했던 네 편의 작품도 여러분께 소개하고 개인적인 감상을 짧게 나눠보겠습니다. 2부를 시작하기에 앞서 저의 SF8 감상 기준은 ‘소재가 작품의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 ‘인상적인 비주얼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는지’였음을 이전과 마찬가지로 알려드리면서 본격적으로 단편을 소개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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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_<하얀 까마귀>

과거 조작 논란에 휩싸인 인기 게임 BJ 주노는 신작 트라우마 게임 생방송을 통해 명예 회복을 노립니다. 본인의 트라우마를 바탕으로 가상세계를 구현해낸 게임 플레이 중 주노는 가상세계에 갇히게 되고, 생명의 위협까지 받습니다. 주노가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게임을 클리어하는 것입니다. 장철수 감독, 안희연, 신소율 주연의 <하얀 까마귀>는 박지안(박지혜) 작가의 <코로니스를 구해줘>를 원작으로 합니다. 게임 BJ와 라이브 게임 방송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평소 라이브 게임 방송을 즐기는 젊은 시청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는데요, 라이브 게임 방송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대목이 많아 큰 기대가 큰 실망으로 다가오는 이야기였습니다. 원작 각색을 게임 방송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 했다면 좋았을 겁니다. 그랬다면 미래의 게임이라는 소재가 대충 주인공의 학창 시절 문제를 편리하게 이야기하기 위한 트리거로만 소비되지 않았겠죠.

그럼에도 ‘하얀 까마귀’에서 볼 만한 장면들은 몇 개 있습니다. 주노가 게임 속에서 학교 복도를 뛰어다니는 씬, 학생들의 얼굴이 죄다 까마귀로 바뀌는 씬은 현재 주인공이 게임 플레이 중이라는 느낌을 잘 나게 해주었죠. 하지만 소재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한 납득 안 가는 이야기 전개가 그 장면들까지도 가려버리며 아쉽게도 시청자의 몰입을 방해합니다. 모든 걸 고려한 만타 별점은 2점입니다.     


여섯 번째_<증강 콩깍지>

자신의 외모를 마음대로 설정해 가상공간에서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증강 콩깍지’라는 앱이 있습니다. 실제로는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앱에서 알콩달콩 사랑을 키워나갔던 주인공 커플은 시스템 오류로 인해 오래도록 가상공간에서 만나지 못하는데요, 두 사람은 보고 싶은 사랑을 찾아 어떤 선택을 할까요? 오기환 감독, 유이, 최시원 주연의 <증강 콩깍지>는 황모과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가상공간에서 원하는 외모를 고르면 잘생기거나 예쁜 외모를 선택할 것 같은데, 현실에서 잘생기고 예쁜 주인공들은 성형 수술 전, 못 생겼던 자신의 외모를 선택한다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성형 수술로 똑같이 잘생기고 예쁘게 생긴 사람들이 넘쳐나게 돼 오히려 오프라인을 피한다는 게 꽤 그럴듯한 로맨틱 코미디였습니다.

가상공간 데이트 앱을 통해 사랑과 외모에 대해 생각해보는 <증강 콩깍지>는 로맨틱 코미디의 문법을 충실히 따라 SF8의 어느 작품보다 TV 시청자에게 친숙하게 다가올 작품으로 예상됩니다. 전개 과정 중 ‘어? 이게 가능하면 그냥 이렇게 살면 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도 있는데요, 장르적 특성이 어느 정도 이런 생각을 덮으면서 끝까지 극을 이끌고 가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모든 걸 고려한 만타 별점은 3점입니다.

     

일곱 번째_<일주일 만에 사랑할 순 없다>

지구 종말까지 일주일, 숨어 살던 초능력자들이 나와 지구 종말을 막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지구 종말의 순간에도 외롭기만 한 남우, 초능력자들을 모아 종말을 막으려는 혜화를 알게 되고 좋아하는 마음을 키워갑니다. 남우와 혜화는 종말도 막고 사랑도 할 수 있을까요? 안국진 감독, 이다윗, 신은수 주연의 <일주일 만에 사랑할 순 없다>는 김동식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종말 상황에서도 한결같은 세상살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초능력을 알게 되었다고 해도 거창할 것 없이 소소한 일상, 나른하고 아름답게 다가오는 종말까지. <일주일 만에 사랑할 순 없다>는 제 개인 취향을 저격한 단편입니다. 지구로 다가오는 운석 때문에 지구는 곧 종말을 맞이하게 되지만 하늘은 색색의 빛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종말’이 한편으로는 <너의 이름은>을 생각나게도 합니다. 남우와 혜화가 처한 특수한 상황은 <너의 이름은> 속 타키와 미츠하의 상황과 유사한 점도 있고요. 하지만 분명 <너의 이름은>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는 전개되고 <일주일 만에 사랑할 순 없다>만의 인상적인 비주얼을 보여줍니다.

재기 넘치는 비주얼을 통해 감상의 재미를 주는 <일주일 만에 사랑할 순 없다>지만 모든 비주얼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이건 단연 워스트다’라고 생각하는 장면도 있었어요. 보시면 알겠지만 그 한 컷이 갑자기 분위기 공포영화를 만들면서 얼굴 찌푸리게도 했습니다. 그 컷을 기점으로 이야기의 단계가 바뀌긴 하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유지된다는 점에서 그렇게 전환용 컷을 사용했어야 하는지는 의문입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씬은 제가 이 작품에서 베스트라고 생각하는 장면입니다. 곧 세상을 끝낼 아름다운 하늘을 배경으로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산 위에서 서로의 마음을 고백하는 이 장면이... 정말 보셔야 알 정도로 위트 있고 육성으로 웃음이 터지게 만들었습니다. 모든 걸 고려한 만타 별점은 3.5점입니다.

     

여덟 번째. 인간증명

사고로 아들을 잃은 혜라는 아들의 뇌를 인공지능과 결합하여 아들의 몸 전체를 사이보그화하는 방식으로 아들을 소생시킵니다. 시간이 지나 혜라는 인공지능이 일부러 아들의 뇌가 몸에 접속하는 길을 차단하고(죽이고) 아들인척 연기하며 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혜라는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김의석 감독, 문소리, 장유상 주연의 <인간증명>은 이루카 작가의 ‘독립의 오단계’를 원작으로 합니다. <인간증명>은 김의석 감독의 연출 방식을 잘 살펴볼 수 있었던 작품으로 이 방식을 받아들이느냐 못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많이 갈릴 작품인 것 같습니다. 김의석 감독은 <죄 많은 소녀>를 통해서도 인물 간의 대화를 통해 인간 마음의 밑바닥을 건져 올리는데요, <인간증명>에서도 존재에 대한 고민을 인물 간 대화를 통해 드러냅니다. 스타일적으로는 영화 <퍼스널 쇼퍼>도 생각났어요.

작품에서 아쉬운 점은 인공지능의 첫 번째 대화 씬과 두 번째 대화 씬에서 인공지능의 상황 대처 방식이 180도 바뀐 점입니다. 변호사의 대사 한 마디에 자신의 주장을 180도 뒤바꾸는 인공지능을 보며 맨 처음 인공지능의 주장은 단순히 혜라와 혜라에 이입한 관객이 인공지능과 인간의 경계에 의문을 품게 하는 장치로만 기능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품의 주제는 진정한 인간이란 무엇인가인데, 이를 위해 존재 가치를 자문하는 인공지능을 등장시켜 놓고는 인공지능을 마치 이야기를 위한 부품처럼 소비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렇게 시청 후 복잡한 생각이 들게 만들고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싶게 만드는 건 감독의 능력이라면 능력입니다. 모든 걸 고려한 만타 별점은 2.5점입니다.


저와 함께 두 게시물을 통해 여덟 편의 작품을 살펴보셨는데요, 저는 얼른 MBC를 통해 작품이 TV로 공개되는 순간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OTT가 아닌 TV를 통해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여덟 작품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요. 어떻게든 SF8이 화제성을 만들어서 다양한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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