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름대로 멋있는 것 같아
나는 눈이 나쁘다.
얼마나 나쁘냐면 안경을 벗으면 당장 5cm 앞의 글자도 보기가 힘들 정도다. 실제로 재보니 대략 6cm 이내의 글자가 보인다. 사물은 그저 흐리멍덩한 형체로만 보이고 색은 그저 단색으로 보일 뿐이다.
어릴 때는 눈이 나쁘지 않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는 괜찮았는데 당시에 안경을 낀 친구들이 뭔가 멋있어 보여서 "나도 한번 써볼래" 하는 멍청한 생각이 지금까지 이끌고 온 것 같아 과거의 어린 내가 밉기도 하다. 부모님이 시력이 안 좋아 유전의 영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가 생각할 땐 학창 시절 자기 전에 핸드폰 보는 습관이 이렇게 만든 것 같다. 결국 6학년 때부터 눈이 점점 나빠지더니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24살 지금의 시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시력이 차츰차츰 나빠지던 탓에 안경도 자주 바꾸고는 했다. 물론 시력뿐만 아니라 운동하느라 부러지고 안 보여서 깔고 앉는 등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근데 단순히 안경을 쓰고 마는 게 아니라 눈이 많이 나쁘게 되면 썼을 때 모습이 안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고도근시로 가면 갈수록 안경렌즈의 두께도 두꺼워지고 사람들이 봤을 때 얼굴 부분이 굴절되는 일명 '파워링'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안경을 쓴다는 건 사람들을 상대할 때 지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자칫 가까이에서 마주 보는 상대에겐 눈이 작아 보이고 파워링 현상으로 얼굴이 왜곡되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나를 포함해 고도근시를 가진 사람들은 은근 스트레스를 받는다.
중학생 때 한 여자아이가 안경을 벗어보라고 했었다. 그러고는 훨씬 나은 것 같다며 칭찬해줬는데 그 말 한마디 때문에 그날 점심시간에는 보이지도 않으면서 안경 벗고 식당에 갔었다. 밥이 입으로는 제대로 들어가는 건지 헷갈릴 만큼 어지럽기도 하고 내 앞에 앉은 친구의 얼굴도 안 보였는데 마치 그 여자아이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나를 쳐다보지는 않을까 설렜던 기억이 난다.
렌즈를 껴보는 건 어떻냐고? 안 그래도 그 얘기도 해보려고 한다.
처음 렌즈를 끼게 된 건 고등학생 때 수능을 끝마치고 나서였다. 어릴 때 엄마가 렌즈를 끼는 모습을 보며 되게 불편하겠다고 생각했었는데 5년 정도 안경을 쓰다 보니 너무 답답해서 나도 렌즈를 끼고 싶었다. 친구들은 잘 보일 사람 있냐며 놀리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6개월짜리 소프트렌즈를 샀었다.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하고, 소프트렌즈라 오래 끼면 안 좋다고 했는데 사실 이런 얘기를 들을 필요도 없었다. 거의 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친구들의 말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실제로 생활하면서 렌즈를 자주 끼지 않았다. 한 며칠 동안 혼자서 여행 갈 때만 끼고 그 외에는 항상 안경을 꼈었다. 불편하다는 이유로 샀었는데 실제로 내 몸은 그만큼 안경에 적응됐었던 것 같다. 놀라웠던 건 세척액을 그대로 넣고 몇 달 지나니까 세척액 채로 렌즈통 안에서 얼어버렸다. 당시에 겨울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쓰지 못하는 렌즈를 보며 어이없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동그란 안경이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래서 대학에 입학하면서 아빠를 졸라 조금 비싼 동그란 안경을 맞췄다. 위 사진에서 밑에서 세 번째 안경인데 한 2년 반 정도 쓰다가 군 복무 도중 의자에 놓고 깔고 앉아 더 이상 쓰기는 힘들어졌다. 이전에도 종종 휘게 만들어서 안경점에 가서 수리만 열댓 번 한 것 같은데 말이지. 심지어 한 달 정도 해외여행을 갔을 때 테니스를 치다가 내가 휘두른 라켓에 그대로 맞아 반파 상태도 됐었는데 그때 렌즈를 챙겨간 건 신의 한 수였다. 아 그래, 대학생 때는 이전보다는 많이 렌즈를 썼다. 친구들과 스키장에 가거나 과제 발표를 하거나 하는 등 안경을 끼기 힘든 경우가 있었기에 이전과는 다르게 '원데이 렌즈'로 종종 썼다. 한 번은 발표 내용이 렌즈를 소개하는 일이 있어서 직접 해당 제품을 착용해 보였던 적도 있다.
아무튼 안경과 렌즈를 번갈아 끼면서 당시에는 큰 불편함을 못 느꼈고 그렇게 입대를 하게 되었다. 운동선수들이 안경을 끼고 시합을 하지 않듯, 복무를 하는 동안도 안경을 끼는 건 정말이지 불편함의 연속이었다. 방독면을 써야 하는데 안경을 벗었다가 쓰고, 구보를 하는데 안경 끼고 뛰면 답답해서 안 보이는데도 벗고 뛰고. 여분의 렌즈도 없는데 깔고 앉아 부러져버려 난감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다 같이 풋살을 하다가도 안경에 맞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 그러던 중 친한 후임이 나한테 라섹수술을 해보는 건 어떻냐고 물어봤다. 라섹이라. 솔직히 스마일라식을 한 친구를 보며 부럽기는 했는데 위험한 건 아닐까 걱정도 됐었다. 하지만 후임이 건넨 한 마디로 전역을 하기 전까지 대략 4달 정도 공부를 시작했고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
사실 많은 군인들이 전역 전 휴가 때 시력교정 수술을 받고는 한다. 나랑 같이 근무를 한 선임도 이른바 말출(마지막 출타) 때 라섹수술을 받고 와서 선글라스를 끼고 있기도 하고 같이 근무한 간부님들도 수술 이후에 너무 편하다면서 추천해주셨다. 그래서 더욱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에 대한 공부와, 눈에 대한 공부를 한 뒤 전역을 하면서 검사를 받으러 갔다. 나는 강남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안과 두 군데에서 검사를 받았다. 두 병원 모두 지인이 추천해주기도 해서 들렀는데 살면서 눈에 대해 이렇게 자세하게 검사를 한 적은 처음이었다.
두 병원에서 모두 수술은 가능하다는 의견을 들었다. 하지만 퇴행의 가능성이 높은 고도근시이기에 나중에 얇은 안경을 쓸 각오는 해두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과 생각보다 스트레스가 많다는 안구건조증은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하고는 싶은데, 내가 부작용을 감내할 수 있을까?
단지 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못 보고 지나친 부분은 없을까?'
원래는 대학교 동기 두 명과 같이 수술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한 친구는 그냥 생긴 대로 살겠다며 취소했고 한 친구는 검사 결과가 좋지 못해 일 년 뒤에 다시 검사를 한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다 보니 일종의 마루타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고 수술을 한 다른 친구들의 의견을 듣다 보니 불편함도 꽤나 많다고 느껴졌다.
무엇보다 아무리 내가 무모해 보이는 일을 한다고 해도, 눈을 다치게 되는 일까지 상상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하지 말자. '
무서운 게 가장 컸다. 편한 부분만 보기엔 혹시 모를 부작용에 감내할 만큼 도전하고 싶지는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생동성 알바에서 멀쩡하다고 내 몸이 멀쩡하리라는 보장은 없으니 말이다. 대신 수술하려고 생각했던 비용을 나를 위해서 쓰기로 했다. 지금까지 써보지 못했던 좋은 안경도 써보고 주기적으로 눈에 좋은 약을 먹으며 관리해주기로 했다. 좋은 옷도 사입고 좋은 전시라도 보러 가면서 말이다.
대학교 신입생 때 10cm의 <스토커>라는 노래를 친구들 앞에서 자주 부르고는 했는데 가사에 나오는 '나는 안경 쓴 샌님이니까'라는 부분을 부를 때마다 마치 내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한 친구는 그런 나를 일본 애니메이션 <도라에몽>에서 등장하는 안경 쓴 노진구 같다고 하기도 하는데...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하하.
엊그저께 집에서 멀리 떨어진 안경점에 갔다. 되게 비싼 안경을 맞추고 왔는데 안경테뿐만 아니라 안경렌즈도 조금 좋게 해서 엄청 깨졌다. 사장님께서는 내가 학생이라 선뜻 더 비싼 걸 권유하기가 힘드시다고 했는데, 그 정도면 최근 소비 중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할 거다. 다음 주에 피팅을 받고 올 텐데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내게 지금까지 새로운 안경은 일종의 새로운 시작이기도 했기 때문에.
10년을 안경을 끼고 살아왔다. 얼마나 살지는 모르겠으나 앞으로도 그럴 거다. 때론 코를 덮는 안경 때문에 불편함이 있을 것이고 안경을 쓰면서 생기는 여러 문제도 있을 것이다. 안경 쓴 샌님으로 취급받을 수도 있고 안경잡이라며 놀림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경을 쓰면서 살아온 시간과 그 속에서 내가 스스로 고민한 일련의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안경을 쓴 나도 나름대로 멋있는 것 같다. 누군가에겐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나만의 고민이기도 했고 비슷한 고민을 한 사람들에겐 그 나름대로 공감이 되지 않을까. 겉모습을 바꾸는 것만큼이나 그 겉모습을 바꾸기 위해 수 없이 고민하고 고민하며 살아온 내가 참 멋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