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은 날개다

태양으로 다가갈 수 있는

by 묵작가

보통 인간이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3 요건으로 의(衣), 식(食), 주(住)를 뽑는다. 요즘은 이 외에도 문화적인 요소나 더 이성적인 판단을 위해 배움(學)을 들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먹고, 입고, 자는 문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리고 이 중 나는 옷에 대한 관심이 많다. 어릴 때는 보통 부모님이 사주신 옷을 입고는 한다. 본인의 기호와는 상관없게 부모님이 입혀주시는 옷이 많고 그렇지 않더라도 나의 의지보다는 타인의 의지나 상황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때로는 형이나 언니가 입던 옷을 물려 입는 동생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받은 옷을 입기도 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내가 첫째이기에 형보다는 아빠가 입던 옷을 접어서 입기도 하고 사촌 형이 작아졌다며 물려준 옷을 입기도 했다. 종종 부모님 손을 잡고 아웃렛에 가면 매대에 쌓여있는 저렴한 옷을 사서 입고는 했다. 부모님 말씀으로는 좋은 옷 많이 사주셨다고 하는데 크게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아마 기억하기 더 전이려나.


그래도 그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다들 그랬으니까. 나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서로 비슷한 옷을 입고 왔고 옷에 대해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하지만 점점 자라면서 옷을 향한 생각은 점점 커져갔다. 중, 고등학생 때는 교복을 주로 입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밖에 나갈 때면 나도 멋진 옷을 입고 싶었고 빨리 다 자라기를 소망했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부모님은 교복을 큰 사이즈로 사주셨다. 앞으로 크기 때문에 딱 맞춰서 입으면 또 사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확실히 성장하는 중에 옷을 입기란 많이 힘들다. 조금만 지나도 몸이 크기 때문에 딱 맞춰서 사게 되면 버리게 되는 옷이 그만큼 늘어난다는 걸 의미했다. 그래도 그렇지 처음부터 너무 큰 옷을 입은 나는 괜히 더 남들이 하는 것처럼 줄여 입고 싶었다. 당시 유행하던 웹툰에서 3통(인치) 바지가 등장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남학생들이 바지통을 줄여 입다 보니 그 정도가 심해져 3인치로 줄여 자신의 개성을 표현한다나 뭐라나. 피도 통하지 않을 정도로 답답한 조임에 얼굴은 하얗게 창백해지지만 그것 또한 패션이라고 말한다.


아무래도 나는 내가 직접 사는 옷이 아니기에 내 옷에 애착이 있지 않았다. 그저 오늘은 이게 있으니 입어야지 하는 느낌이었고 커서 돈을 벌면 사고 싶은 옷을 사서 입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면서 돈을 벌게 되었고 점점 옷장에 옷은 늘어났다. 기숙사 생활을 했던 게 더 크게 작용되기도 했다. 부모님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 없이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직접 사보고 입어봤다. 물론 처음에는 그저 누군가를 따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면 점차 나만의 색과 스타일을 만들어갔다. 나는 조금 체형이 어려서부터 일반적이지는 않았다. 허리는 얇은데 엉덩이는 크다. 일명 '오리궁둥이'로 자주 불리고는 했는데 여자라면 몰라도 남자한테 이런 신체적인 특징은 옷을 입기에 불편하다. 또한 허벅지도 살이 많았는데 바지 선택을 하기에 최악이었다. 허리 사이즈에 맞추면 밑위 부분이나 허벅지 부분이 답답하고, 반대로 하자니 허리가 남아 벨트를 매고는 했다. 또한 그렇게 사이즈가 커지면 기장도 길어져서 접어 입거나 잘라서 입어야 했다. 그러다 보면 조금은 어색한 바지가 만들어지고는 했다.


그런 내가 운동을 꾸준히 하면서 체형이 점차 바뀌어나갔다. 상의는 원래도 크게 입는 편이었지만 이제는 원래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러워졌다. 이전에는 크게 입나 보다 라고 생각이 들었다면 이제는 체형이 커져 더욱 잘 어울린다. 바지는 여전히 문제다. 하지만 이전과 조금 달라지기는 했다. 하체 운동을 하는 게 단순히 하체가 커지는 게 아니라 군살이 빠지면서 탄탄해졌다. 그래서 오히려 같은 바지를 입더라도 살로 차있는 느낌이 아니라 그런지 더 넉넉한 느낌이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종종 옷을 잘 입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했다. 연예인처럼 감각적으로 소화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저 한 두 개씩 사다 보니 어울리는 세트를 찾아나갔다. 색상이나 무늬를 보면서 '아 이렇게 입으면 예쁘겠다' 하고 생각하고는 하는데 그게 남들 눈에도 나쁘지 않게 보였나 보다. 나를 따라서 비슷한 옷을 사는 친구도 있고 아예 같은 모델의 신발을 구하는 친구도 있었다. 물론 사람마다 체형도 다르고 이미지도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의 패션을 따라서 하는 건 좋지만은 않다. 나도 처음 어색함 가득한 모습으로 밖을 돌아다녔으니 더더욱 그 기분을 안다. 뭐랄까 꾸며 입기는 했는데 내 옷이 아닌 느낌? 괜히 어른인 척해보려고 나온 중, 고등학생이 아빠 옷 입고 나온 것 같은 그런 느낌 말이야.


SNS의 발달로 옷에 대한 관심과 시장은 굉장히 많이 커졌다. 이전에는 백화점이나 쇼핑몰 등의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 구매를 했다면 인터넷의 발달은 온라인 쇼핑몰을 확대시켰다. 그리고 요즘 인스타그램 등의 개인 SNS의 활성화는 기업적인 온라인 쇼핑몰을 탈피하고 개인 쇼핑몰을 런칭하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하루에도 수 십, 수백 명이 본인의 오늘 착장을 업로드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 이미지를 본인에게 투영시키며 옷을 구매한다. 그러다 보니 잘 나가는 쇼핑몰 사장은 나이가 어린데도 유명해지고는 한다. 내 군대 후임 중 한 명도 옷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한다. 혼자서 옷감이나 뭐 관련 내용을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는 했는데 잘 됐으면 좋겠다. 아 물론 처음 나온 옷을 공짜로 하나 준다고 해서 그러는 건 아니다.


종종 범접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존재라고 여겨지던 모델을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도 만들어내고 옷을 잘 입는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닌 직접 본인에게 맞춰보기도 한다. 이 시대에는 정말 옷을 입는다는 게 단순히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생존 수단을 넘어 본인의 개성과 철학을 보여주는 표현 수단이 되어가고 있다. 본인이 평소 관심이 전혀 없더라도 본인을 바라보는 상대편 사람에게 의상은 하나의 예절이자 본인을 평가하는 하나의 잣대가 될 수 있다. 그러니 너무 특별히 꾸미지는 않더라도 상황에 맞는, 그리고 본인에게 어울리는 의상 세트 한 벌 정도는 머릿속에 그려봐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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