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양이를 영물로 생각하는 이유

by 묵작가

'영물'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대개 사람들은 신화적인 믿음, 성스러운 것들을 떠올린다. 그중에는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이도 있을 것이고 악의 기운을 한껏 뽐내는 뱀도 있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영물 가운데 고양이를 내게 있어서 가장 가까운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있어서 고양이라는 생명체는 참 놀라울 정도로 가깝다. 물론 가깝다는 게 단순히 집에서 반려동물로 함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그렇지 않기 때문에, 내가 경험한 고양이에 관한 일화는 더욱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처음 고양이라는 생명체를 알게 된 건 벌써 15년이 지난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일 때였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당시에 초등학생들은 되게 순진무구했던 것 같다. 지금처럼 모두가 손에 스마트폰을 쥐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게임에 빠져 살지도 않았다. 그저 친구들과 뛰어놀고 학교 앞 분식집에서 피카추 돈가스를 사 먹는 아이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친구들 몇 명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쉬는 시간에 탐험을 하러 나갔다. 당시 우리 학교에는 어린 학생들이 교통질서를 직접 실습할 수 있도록 학교 건물 밖에 횡단보도가 있는 공간이 있었다. 나무도 많고 덤불도 우거져서 가끔 다람쥐 같은 게 어디선가 기어 나오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 날 따라 덤불 속에서 무언가 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지나칠법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친구들과 손을 뻗어 나뭇가지를 헤치고 들여다보니 그 안에는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울고 있었다. 어디가 아프기라도 한 걸까? 다리를 잘 가누지 못하는 작은 고양이는 마찬가지로 어린 우리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우와 고양이다!"

친구 하나가 귀엽다며 다가갔고 이내 번쩍 들어 올렸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굉장히 바보 같은 행동임이 틀림없다. 길고양이는 사람 냄새를 잘 구별한다고 한다. 그래서 어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인간의 손에 들린 새끼 고양이는 그대로 버려진다고 한다.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어린 고양이가 인간의 단순한 호기심에 자기 어미마저 잃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린 우리가 뭘 알았겠는가. 번갈아가며 쳐다보고 있자 학교에서 수업시간 종이 울렸다. 나는 고양이를 교실로 들고 갔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손에 들린 고양이를 잊기라도 한 듯 재빨리 교실로 뛰어들어갔다.


교실에 들어가니 선생님이 난리가 나셨다. 소리를 치시며 갖다 놓으라고 말하신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걸 알았지만 원래 수풀로 돌려놓는 순간까지 이 생명체랑 떨어지고 싶지가 않았다. 또 하나의 친구가 되어준 것만 같아서 마지막으로 그 얼굴을 볼 때 슬펐다. 그 날 집에 돌아와서 울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괜스레 동정심이라도 생긴 걸까. 어린 내게 새로운 감정을 일깨워준 친구로서 말이다.


두 번째는 내가 재수를 할 때의 이야기다.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 늦게 돌아오는 삶을 1년 365일 하던 내게 친구는 없었다. 그저 학원에서 만나는 같은 반 학생들과 가끔 이야기를 나눌 뿐이었다. 반복되는 삶에 지쳐가던 여름 즈음, 고양이 한 마리를 집에 돌아오던 길에 만났다. 처음에는 당황했었다. 나도 그 녀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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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는 들어오는 길이 이런 식으로 나있다. 그리고 내가 만난 고양이는 저 난간 위에 아무 생각 없이 누워있었다. 나도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눈 오른쪽에 뭔가 묵직한 게 있어서 고개를 돌렸다. 시간은 저녁 10시 반 정도였고 가로등이 있다고 해도 어두운 밤이었다. 순간 나와 그 녀석의 눈이 마주쳤다. 나도 놀랐고 그 녀석도 화들짝 놀라며 일어났다. 그게 내가 녀석을 만난 처음이었다.


다음 날 저녁에도 그 녀석은 있었다. 그다음 날에도. 그렇게 자꾸 만나다 보니 친근감이라도 생긴 건지 내가 지나갈 때마다 인사를 해줬다. 사실은 지나갈 때마다 먹을걸 챙겨줬더니 오늘도 밥 달라고 부르는 건 안 비밀. 공부를 하다가도 그 녀석이 잘 있는지 궁금했고 그렇게 몇 주 지나자 먹을 거로 유인해서 같이 산책도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처음 만난 난간도. 같이 가끔 돌아다닌 단지 안의 산책로도 찾아봤으나 아무 데도 없었다. 다른 사람이 주워갔거나 다른 곳으로 갔나 보다 하며 그렇게 또다시 친구를 잃었다.


시간은 지났고 수능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녀석을 다시 만났다. 안녕하며 인사를 하자 그 녀석은 나를 보고 인사하며 자신을 따라오라고 이끌었다. 쭉 계속 걷다 보니 한 수풀 같은 게 있었는데 그 안에서 울고 있는 작은 새끼 고양이를 보게 됐다.

'너 아기를 가진 거였구나?'

자신의 새끼한테로 다가간 그 녀석은 자신이 잘 지내고 있었다고, 아기를 가져서 만나지 못한 거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자신에게 먹을 것을 준 내게 고마움을 담아 자신의 새끼를 자랑하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그 녀석을 마지막으로 만났다.


이웃한테 받은 고양이 사료를 건네주니 엄청 잘 먹는다.


며칠 전에도 고양이를 만났다. 그저께 문득 성수동 블루보틀에 가고 싶어서 무작정 나갔었다. 날씨는 굉장히 흐렸고 비가 온다는 소식에 우산도 챙겨갔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밖으로 나오니까 흐린 날씨가 마치 내 기분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성수동에 가볼 만한 곳을 찾다가 서울숲에 가기로 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랑 몇 번 갔었는데 이렇게 커피 마시며 차가운 도시 남자처럼 걸어가니 감회가 새로웠다.


웃기는 게 입구 쪽으로 해서 들어가는데 동상도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너희들도 답답하겠다. 나처럼 말이야.

조금 걷다가 습한 탓에 일찍 지쳐버렸다. 그래서 근처에 벤치를 찾아 앉으며 커피를 마셨다. 한두 모금 마시자 내 옆쪽으로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안녕 고양아." "야옹"

내 무릎 옆에 달라붙은 이 녀석은 내가 몇 번 쓰다듬어주자 기분이 좋아졌는지 골골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오늘도 아무에게도 연락이 없었지만, 멋있게 차려입고 나간 나를 마치 비웃기라도 하는 건지 아니면 그런 나를 위로해주기라도 하는 건지 이 녀석은 하염없이 붙어 있었다. 내 기분을 아는 것만 같았다. 옛날에도 지금도 고양이라는 생명체는 내 마음을 꿰뚫어 보고 옆으로 다가와주는 것 같았다.


서울숲에서 만난 고양이. 싸우기라도 했는지 귀가 잘려있어 마음이 아팠다.


쥐를 잡기 위해 풀어놨다는 이야기로 많이 알려진 고양이. 하지만 내게 있어서 이 신기로운 생명은 힘들고 지칠 때면 항상 어김없이 나타나 내 마음 한편을 위로해준다. 말하지 않아도 그저 마음으로, 느낌으로 다가와주는 고양이는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영물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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