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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묵작가 Aug 20. 2020

제02화. 대학생이 되어가는 과정

대학생활 일기

학원에서의 수험생활은 학교에서와는 사뭇 다르다. 좁디좁은 공간에 여러 명의 학생이 들어가 '강사'의 수업을 듣는다. 고등학생 때는 교실 안에 흘러 들어오던 따스한 봄바람에 때로는 엎드려 자고는 했지만, 이 곳에서는 졸지 않으려 애를 쓴다. 졸음을 이기려 입 안에 무언가를 계속 넣다 보면 자연스럽게 몸은 불어나고 이 곳에서 몸에 걸치는 건 예쁜 옷이 아닌 그저 오랫동안 입을 무릎 나온 편한 추리닝뿐이다. 물론 혈기왕성한 20대 초반의 청춘들에게 있어서 자신의 매력을 뽐내기 위해 차려입고 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내가 다닌 학원은 무슨 남녀 간에 얘기만 해도 벌점을 때려 쫓아냈기 때문에 누군가와 교제를 하기 위해서는 들키지 않거나, 잘릴 각오를 해야 했다.


내가 다닌 학원에서는 이외에도 굉장히 비인도적이면서 구시대적인 일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바로 성적을 공개한다는 것. 물론 모든 학생들의 성적을 공개하는 건 아니었지만 매번 모의고사를 볼 때마다 학원 석차 1등부터 50등까지 나열해서 복도에 각자의 점수를 붙여두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30명이었는지 50명이었는지 그건 분명하지 않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 있을까. 모두가 보는 명단에 없다면 왠지 모르게 위축되는 건 마찬가지일 텐데 말이다. 그리고 나는 명단 밖에서 떠돌던 학생 중 하나였다.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고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현실을 마주하고 보니 고작 이 좁은 강의실에서조차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괜히 분했고 아무것도 아닌 저 종이 쪼가리를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다들 한 번쯤은 오르락내리락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내 이름도 볼 수 있었다. 가장 아래에서부터 조금씩 올라갔다. 빠르지는 않았지만 꾸준하게 오르기 시작했고 나는 ‘열심히’ 하는 학생에서 ‘잘’ 하는 학생으로 되어갔다. 정말 매일 같이 해뜨기 전에 집을 나가서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야 돌아오는 삶.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그만큼이나 내가 치열하게도 살아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해 준 시간이었다.

물론 단순히 치열하다고만 할 수는 없었다. 그때의 나는 마치 자연 속에서 수행을 하는 도사 같았다. 좋고, 싫음이라는 감정을 버렸고 그 누구도 옆에 두지 않은 채 홀로 싸워갔다. 마치 만화 ‘원피스’에서 조로가 “아무 일도 없었다”라고 말하며 아픔을 홀로 짊어지고 가는 것처럼 당시의 나는 강한 척이라도 하며 홀로 시간을 보내갔다.


그렇게 나의 두 번째 수험생활은 끝이 났고 다가올 미래를 기다렸다. 물론 이전과 다른 게 있다면 이번에는 결과에 상관없이 수긍하기로 했다. 결과가 어떠하든 내가 보내온 과정을 인정하기로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스터디플래너 쓰는 재미에 공부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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