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닮아가야겠다.
내리쬐는 햇볕에 아스팔트가 달궈져 아지랑이가 살랑살랑 피어오르는 뜨거운 한여름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하루종일 돌아가는 에어컨 탓인지, 아니면 다른 아이들보다 면역력이 유독 약한 것인지 여름에도 감기를 달고 산다. 그날도 어쩔 수 없이 콜록거리는 첫째 아들을 차에 태우고 단 둘이 병원에 가는 길.
사거리를 지나가려던 찰나 빨갛게 변해버려 내 차를 멈춰 세운 신호등을 노려보고 있을 때였다.
"경찰서다! 아빠. 경찰서예요!"
"어디? 아 저기 있구나. 날씨가 너무 뜨거워 경찰관아저씨들도 고생이 많으시겠네."
아이의 말에 주변을 둘러보니 도로 왼편에 조그마한 파출소가 자리해 있었다. 파출소 앞엔 버스도 여러 대 주차할 법한 큰 공터가 있어 제법 도로가에서 거리가 떨어져 있었다.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아마 앞에 서있는 순찰차를 쳐다보다 눈에 띄었나 보다.
'경찰관이 도둑 잡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만 해주면 혹시 아이들이 무서워할 수 있어. 혹시나 무서워서 길 잃거나 했을 때 울기만 하고 도움 요청도 안 할 수 있으니까, 나중에 기회 된다면 잘 얘기해야 돼'
얼마 전 아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파출소가 눈앞에 있는 지금이 바로 그 기회다 싶어 잘 말해줘야겠다 마음먹었다.
"경찰관 아저씨들이 무슨 일을 하시는지 알아?"
"응! 나쁜 도둑들 잡아!"
한치의 망설임 없이 도둑 얘기만 하는 아이에게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맞아. 그런데 경찰관 아저씨들이 도둑만 잡는 건 아니야."
"응? 그럼?"
"나중에 길 잃어버리고 엄마, 아빠랑 떨어지게 됐을 때 경찰관 아저씨한테 '우리 엄마, 아빠 좀 찾아주세요'라고 얘기하면 돼."
"좀 무서운데."
"무서운 분 아니야. 경찰관 아저씨께서 엄마랑 아빠를 꼭 다시 만날 수 있게 찾아주실 거야. 할 수 있지?"
바로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알겠다며 끄덕거리는 모습을 보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어느새 빨간색에서 초록색으로 바뀐 신호에 다시금 운전을 하고 있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곁에는 아직 건강한 부모님이 계신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기력이 떨어져 은퇴를 하시고, 그리고 또 한 세월이 지나게 되어 내 곁을 떠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가 되어 힘든 날이 찾아온다면 나도 누군가를 붙잡고 엄마, 아빠 좀 찾아달라고 얘기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그게 가능하다면 누가 됐든 무슨 대가를 치르든 간에 말이다.
그날은 싱숭생숭한 마음을 묻어두고 저녁 무렵 집에 전화를 드렸다. 저녁은 드셨는지, 별 다른 일은 없으신지 안부를 물어보고 전화를 끊었다. 다소 안정된 마음을 느끼며, 우리 아이들도 아빠인 내가 곁에 있음에 안정감을 느끼겠다 싶었다. 그래서 아이들 곁에서 최대한 오래도록 흔들리지 않는, 지금보다 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자고 다짐했다.
지난 세월 동안 우리 부모님은 내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셨다. 인생을 살아오며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애써 흔들리는 마음을 내색하지 않고, 곁에서 버팀목이 되어주고자 노력하셨을 것이다. 쉽지않으셨겠지만 말이다.
나도 그런 부모님을 닮아가야겠다.